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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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선희 작가의 소설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는 한 가지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이었다.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얼굴을 훔쳐가는 소리나무를 불러오는 놀이의 존재는 오컬트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었지만 소리나무의 비밀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이성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요소가 느껴졌다.

정확히 어떤 장르라고 규정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흡입력과 가독성이 좋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택시 운전사의 미스터리한 실종으로 시작된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그것'으로부터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한 택시운전사는 혀가 뽑히고 목뼈가 부러진 채 어디론가 끌려간다. 도입부부터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위협을 받는 택시 운전사와 그에게 가해지는 무차별적이고 잔혹한 폭행은 독자로 하여금 첫 장을 피자마자 이야기에 빨려들게 만든다. 
 
이후 택시 운전사의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을 맡게된 '차강효' 형사와 장난감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다 억울하게 잘못을 뒤집어쓰고 퇴사하게 된 주인공 '박태이' 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실종된 택시 운전사는 박태이의 어린시절 친구인데 이 사건을 계기로 박태이는 15년만에 고향을 방문하게 된다. 택시 운전사의 실종 이후 박태이의 또 다른 고향 친구인 연극 배우가 연이어 실종되고 차강효 형사는 계속되는 실종사건과 박태이의 연관성을 의심한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소리나무의 비밀을 찾아가는 현재와 소리나무를 불러내는 놀이를 벌였던 어린시절의 과거를 번갈아 보여주며 진행된다. 주인공이 왜 소리나무를 불러내는 놀이를 하게된 것인지, 그리고 소리나무를 불러내는 놀이라는게 과연 어떤 것인지 비밀을 하나 하나씩 풀어놓는데 알고 보면 이 놀이를 주인공만 했던 것이 아니라 훨씬 이전 세대에서부터 내려오던 놀이이며, 그 놀이의 대가를 어떤 식으로 치러야만 하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들이 자신의 얼굴과 똑같은 얼굴을 한 존재인 '그것' 이 방문할 때 느끼는 공포와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나, 둘씩 사라져 갈 때는 그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문장에서도 전해져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리고 이 저주와 같은 놀이를 끝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갈 때는 그 비밀이 과연 무엇일지 예상해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래서 일단 읽기 시작하면 뒷 이야기가 궁금해져 중간에 책을 놓을 수가 없다.
 
다만 약간의 아쉬운 점은 소리나무와 얽힌 비밀을 주인공이 여러가지 단서들을 통해 어렵게 밝혀낸다기 보다는 남들의 입을 통해 혹은 기록된 정보를 통해 찾아낸다는 것이었다. 초반에는 엄청나 보였던 비밀이 약간은 싱겁게 해소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리나무의 비밀을 알고 있던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일기장에 관련된 내용을 기록해 놓았고 그 일기장을 주인공이 보게 된다거나 오래 전부터 소리나무를 연구하던 교수로부터 놀이가 시작된 유래에 대해 듣게 된다거나 하는 식이다. 
미스터리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이렇게 비밀을 알고 있던 사람으로부터 툭 치면 나오는 식이라 일이 해결되는 과정이 스릴 넘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반 이후 소리나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그림이 등장하는데 그 그림에 대한 묘사만으로는 정확히 어떤 그림인지 머리속으로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또 첫 번째부터 아홉번째 나무까지 각각의 나무에 해당하는 비밀과 주인공 이전 세대와 얽힌 사연까지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또 결말에 이르러서 주인공의 태도가 바뀌는데 주인공의 이런 일관성 없는 캐릭터와 열린 결말에 대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독자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은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현실에 존재하는 박태이도, '그것'도 아닌 중간계의 존재가 되버린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캐릭터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결말을 선택했다면 개운하기는 했겠지만 소설 전반의 분위기를 해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 박태이의 동창생인 '종목'을 찾으러 온다고 경고한 또 다른 친구와 자신을 찾아온다는 간만의 동창생에게 오히려 반가움을 느꼈다는, 살짝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은 종목의 이야기까지. 2편이 나올 것만 같은 뉘앙스와 뭔가 끝이 끝이 아닌 것만 같은 찜찜한(?) 분위기가 꽤 마음에 드는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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