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론도 스토리콜렉터 7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넬레 노이하우스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작가,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네 번째 슈나이더 시리즈이다.
앞선 세 작품들 모두 유럽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에서도 역시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전의 작품들은 인연이 닿지 않아 읽지 못하고 이번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됐는데 네 번째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는데 무리없이 재밌게 읽었다.
물론 중간중간 이전 시리즈에서 슈나이더와 자비네 간에 얽힌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사건에 큰 지장을 주지않고 맥락상 충분히 이해 가능한 수준이었다.

6개의 챕터로 구성된 대장정의 이야기는 역주행하며 무섭게 질주하는 차를 막아내기 위해 도로를 막아선 트럭 기사들의 긴박한 상황에서부터 시작한다. 헤드라이트까지 끄고 역주행으로 맹렬하게 돌진한 사람은 슈나이더의 전 동료이자 범죄 수사국 소속의 로어벡 경정.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홀로 두고 어째서 역주행까지 하며 자살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핸드폰에는 사망 직전 슈나이더에게 보낸 문자가 남아 있었다.  

" 당신 말이 맞았소.
과거가 우리의 발목을 잡을 거라는.
6월 1일은 우리 모두를 파멸시킬 거요.
잘 지내시오! "

 

이 때부터 독자들은 과연 로어벡의 문자에 등장한 6월 1일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우리 모두를 파멸시킬 거라는 것인지, 그리고 왜 하필 슈나이더에게 이런 문자를 보낸 것인지 궁금증에 휩싸인다.
책의 제목에 나오는 '론도'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 찾아보니 '주제가 같은 상태로 여러번 되풀이되는 음악의 형식'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제목 그대로 로어벡을 시작으로 사망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로어벡 자살사건을 맡게된 슈나이더의 옛 제자 티나는 슈나이더를 찾아가 문자의 의미를 물었지만 이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경고만 듣게 되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슈나이더의 동료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며 죽음의 론도가 이어진다.

책은 총 553페이지로 장편 중에서도 꽤나 긴 편에 속한다. 아무래도 분량이 길어지다 보면 중간 중간 이야기가 늘어져 집중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을 법도 한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화자를 변경하고 챕터별로 사건을 번갈아가며 배치해 놓았기 때문에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가 잘 짜여져 있었다. 그렇다고 사건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이해하기 힘든 것이 아니라 지루해질 수 있을 만한 때 적절히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정도로 알맞게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는 이전 시리즈에 계속해서 등장했던 슈나이더와 자비네, 그리고 이번 편에 새롭게 등장한 인물인 하디, 이렇게 세 사람의 시점에서 주로 진행된다. "하디"는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이어주면서 동시에 모든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는 인물로 이번 편에서만큼은 슈나이더를 제치고 주인공이라도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의 분량을 차지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래서 이야기 속 과거의 대부분은 하디의 시점을 통해 보여진다. 

대부분의 미스터리 소설은 과연 범인이 누구인가, 그리고 왜 그런일을 저질렀는가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이야기가 절정에 다다른 후반부에나 가야 범인의 윤곽이 드러난다. 만일 범인이 중반부부터 등장할 경우 십중팔구는 실제 범인은 따로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역시 범인은 마지막에나 드러날 거라고 예상했지만 작가는 예상을 뛰어넘어 중반부에서부터 일찌감치 범인의 정체를 밝힌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짜 묘미는 범인이 드러난 이후라고 볼 수 있다. 과연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범인이 그토록 끔찍한 일을 벌이게 된 것인지는 책을 끝까지 읽어야지만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하드코어한(?) 묘사에 거부감이 없지만 잔인한 살인사건이 나오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도 있다. 아무래도 미스터리 소설에서는 살인사건없이 이야기가 진행되기는 어려운만큼 범죄현장과 혈흔이 낭자한 사건에 대한 묘사가 빠지기 어렵지만 이 책에서는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사망자가 얼마나 처참하게 죽었는지, 범인이 얼마나 잔인하게 살인을 했는지 묘사하는데 치중하기 보다는 철저히 객관적으로 사건을 수사하고 조사해가는 과정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이나 묘사가 없었다. 그래서 잔인한 장면이 꺼려저 미스터리 소설을 읽지 않는 독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 좋았다. 

프로파일러 슈나이더 시리즈는 벌써 네 번째 편을 맞이했을 정도로 잘 구축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돋보인다. 정의감 넘치는 젊고 유능한 형사 자비네와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형사 티나, 그리고 천재이지만 까칠하고 냉소적인 프로파일러 슈나이더가 투닥 거리며 보여주는 케미가 좋았다. 또 인간미라곤 눈꼽만큼도 없을 것 같은 슈나이더가 보여준 의외의 따뜻한(?) 면모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연방 범죄수사국에서 쫓겨났던 슈나이더가 새로운 수사팀을 꾸려 복귀할 것이라는 여운을 남기고 끝을 맺어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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