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기담
전건우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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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철거 직전의 고시원이 있다. 원래 이름은 '공부의 문'이라는 뜻의 공문고시원이었지만 낡은 간판의 ㅇ자가 떨어져 어느날부턴가 고문 고시원이 되었다.
어디나 그렇듯 오래되고 음침한 장소에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소문들이 따라다니기 마련인데 이 고시원 또한 그랬다
오래 전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시장통 위에 지어져 그 때 불에 타 죽은 사람들이 아직도 밤만 되면 목격되고 고시원을 거쳐간 주인들 중 누구 하나도 좋은 결말을 맞은 사람이 없었다는 그런 전설같은 소문이었다.

이런 고시원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북적대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정말로 오갈데 없는 8명만이 남아 죽은 듯이 고시원을 지키고 있었다.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이 곳에 남은 사람들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303호에 사는 씩씩하고 활달한 추리소설 매니아이자 고시생 의 이야기에서부터 사고를 겪은 후 갑작스럽게 초능력을 얻게된 306호 외국인 노동자 , 뛰어나고 의로운 무림인이나 서울에서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313’, 빚에 쫒겨 위장자살을 하고 알바로 생계를 연명하는 311최씨’, 나쁜 놈들만 골라 살해하는 여고생 킬러 317’,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뱀 같은 사나이 310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살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마치 없는 사람들인양 유령처럼 흔적을 숨기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집인 고시원과 그 곳의 사람들이 위기에 처하자 다같이 힘을 합쳐 그 위기를 헤쳐나간다.

고시원 괴담이 아니라 고시원 기담이라는 제목답게 고시원을 둘러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공포를 자아내기 보다는 기이하고 일반적이지 않지만 사람사는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상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흔히 세상에서 패배자, 혹은 루저라고 부를만큼 주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지만 그들도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또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각자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철저히 없는 사람처럼 살기를 바라지만 이들의 이런 태도는 인근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계기로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자칫 스포가 될 수 있어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평소 사회에서 인간취급조차 받지 못하던 고시원 사람들이 누군가를 구해내고 악을 물리치는 장면에서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도 한다.

이야기는 다 망해나가는 한 평짜리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각자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들이 있고, 이번 생은 망했다(?)고 할만한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그들도 충분히 인간으로 대우받을만한 자격이 있다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다.
개인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단편으로 이어지다가 마지막에는 큰 사건을 정점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모여지는데 그 전에 펼쳐지는 각 개인들의 사정이 내 지인의 지인 중에 한 명 씩은 있을 법한 고시생, 빚쟁이, 외국인 노동자, 시골에서 올라온 취업준비생의 이야기라 많은 부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재밌게 읽었던 편은 취업무림패도기였는데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취업시장에서 가장 강한 기술은 지인소개와 낙하신공이라는 웃픈 이야기였다.

 

혹시 제목만 보고 고시원에서 벌어지는 오싹하고 미스터리한 공포를 기대한 독자가 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각 단편마다 각기 다른 장르, 다른 분위기로 진행되어 뷔페식(?)의 골라먹는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 혹시 첫 편이 기대와 다르다고 실망하진 말았으면 한다 둘러보다 보면 많은 음식들 중 내 취향에 딱 맞는 음식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
아, 그리고 고시원에는 밤에 길에서 마주쳤을 때 귀신보다 더 무섭다는 사람이 산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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