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5. 바울은 남성우월주의자였다

p.16

달리 말해 초창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바울은 어느 지점에서 모든 사람을 신경질나게 만든 수상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모든 사람을 동시에 성질나게 만들었다. 박해는 신실한 모습이 낳은 결과일 수 있으나, 또한 고약한 성질을 보여 주는 증거일 수도 있다.

p.21

구체적으로, 우리는 바울이 하는 말을 듣고 본래의 청중에게 무슨 뜻을 전달하려 했는지 해석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바울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캘 생각이다.

p.27-28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글은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킬 뿐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the words of God)을 기록했지만 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유념하라.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다. 바울은 죽은 상태다(생물학적으로 말해서). 그런데 바울을 예수님보다 아주 조금 낮은 명예로운 자리에 앉힐 때가 너무 많다. 우리는 바울의 글이 영감을 받았다고 믿지 바울의 인격이 영감을 받았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바울을 인간화하는 일이다. 바울도 우리 모두가 지닌 결점과 잠재력을 지닌 인간이었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p.146 (딤전2:11)

바울이 여자들은 조용히 배우기를 원한다는 세부 사항에만 우리가 매달려 있으면, 그보다 더 급진적인 취지, 곧 바울은 여자들이 배우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놓치고 만다. 그러니까 교육을 남성의 전유물로 여기던 문화에서 바울은 여성의 교육을 옹호했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바울이 여자는 조용히 그리고 순종하는 자세로 배우기를 원했던 까닭은 그들이 여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고대에는 그렇게 배우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p.150-151 (딤전2:13)

바울은 하와가 애초의 계시 이후에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바울의 관심사는 젠더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순서에 관심이 있다.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그렇다고 모든 여성이 모든 남성 다음이란 뜻은 아니다. 단지 하와만 아담 다음일 뿐이다. 에덴동산 이후에는 우리 모두 남자와 여자-하와와 나란히 서 있다. 우리는 흙에서 직접 창조되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 못했다. 오히려 하와처럼 또 다른 인간, 곧 우리 어머니들에게서 났다(고전 11:12).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성경으로부터 듣는다. 우리는 모두 하와의 자손이다.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하나님이 참으로 ~라고 말씀하셨는가?"라고 물은 것은 (창 3:1) 하와가 하나님과 아담 둘 모두에게 의문을 던지도록 부추기는 질문이었다. 창세기 이야기에서, 만일 사탄이 아담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라고 말씀하셨는가?"라고 물었더라면, 아담은 "그분이 분명히 말씀하셨어. 내가 그분의 말씀을 들었지" 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아담은 독특한 직책을 맡았다. 이 때문에 하와가 아담보다 더 연약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는 하와의 약점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참으로 ~라고 말씀하셨는가? 당신은 정말로 성경을 믿을 수 있는가?"라는 유혹의 속삭임을 마음으로 듣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하와는 젠더가 아니라 순서에서 아담 다음이다. 당신과 나 역시 아담 다음이다.

p.155 seed text (갈3:28)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접근을 제한했던 세상적인 구별이 모두 깨어진 전혀 새로운 세계 질서를 내다보고 있었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 바울은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는 성적 불평등도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바울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표준이다.

p.159-160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본래 평등하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우리는 여성이 남성보다 본래 못한 존재인지의 여부에 대해 심각한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그 대신 어떤 역할이 남성과 여성에게 적절한지에 관해 논쟁하는데, 그중 다수의 역할은 바울 당시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라 그림케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지능은 성과 무관하다. ... 지성의 힘은 성과 무관하다. 그리고 ... 남성의 의무와 여성의 의무, 남자의 영역과 여자의 영역에 관한 우리 견해는 시대와 숙가에 따라 달라지고, 오로지 실수투성이인 인간의 뜻과 판단에 달려 있는 자의적인 의견일 뿐이다."
- Sarah Grimke, Letters on the Equality of the Sexes,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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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스트 교회 언니로 산다는 것

[1기 근대화]
전도부인
나혜석(1896-1948)
최용신(1909-1935) - 농촌교육
최덕지(1901-1956) - 한국 첫 여성목사

[2기 산업화]
농촌여성 도시빈민 여성노동자

[3기 21세기]
믿는페미 갓페미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p.264

••• ‘전업주부’는 근대사회가 만든 직업군이면서 동시에 근현대적 업적을 평가받지 못하는 유일한 영역이라는 점이에요. 사실 근대적 인간은 ‘개인‘ (individual)이죠. 더 나뉠(divide)게 없을 만큼 자신 의 단독 영역을 가지는 주체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형으로 평가받을 수 없는 근대인이 ‘전업주부‘예요. ••• 아무개의 아내 아무개의 어머니로 평가받죠. 하지만 관계 안에서만 내 자리가 평가되는 것은 전근대적 방식이에요. 적어도 근대적 주체는 자기로서 평가받아야 하니까요. 그런 기회를 신적 질서라는 이름으로 아예 박탈해 버린 것이 개신교 가정의 담론이었습니다.

p.286 갓페미

교회는 ‘영적 권위’의 위계가 확고한 집단이라서, 공동체의 답과 다른 것을 질문하는 것은 두려움이 생기는 법이죠. 그래서 많은 경우 신앙심이 깊은 오늘날의 자매들은 마치 ‘21세기와 19세기를 번갈아 살아가는 것‘처럼 살아요. 밖에서는 ‘탈성적 전문가 개인‘으로서 경쟁력을 가진 주체로 살다가, 교회나 선교 단체에 오면 개신교가 ‘정통‘이라고 담론화한 여성의 역할을 요구받죠. ••• 그런데 신앙 공동체 안에서 머물기를 선택하면서 그 안의 전제들을 바꾸겠다는 제3의 결정을 했다는 것이 멋집니다. 응원해요.

p.286-287 페미니시트 시각

페미니스트는 권위를 독점하면 안 돼요. 페미니스트 ‘시각‘이 제대로 페미니스트적이려면 수평적 관계성이 확보되어야 하죠. 어쩌면 페미니즘보다 중요한 것이 페미니스트 시각일지도 몰라요. ‘이즘‘은 여전히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죠. 상황에 따라 과제가 다르고 보는 입장에 따라 주장하는 바가 다르니까요. 콘텐츠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시각’은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모두 동의해야 해요. ‘절대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각이면 안 돼요. ••• 남근 중심적인, 높이 올려 쌓는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리 페미니스트들의 공통 과제니까요.

p.292

제가 이해하는 페미니즘은, 여성 주체로서 내가 가장 잘하고, 하면 기쁨 일을 하면서 사는 거예요.

p.296

스스로 결정하지 않은 사회적 배치에서 남성들에게 ‘타자‘로 응시되었던 여성의 경험은 공적으로 발화되어야 할 사명이 있어요. "힝, 나는 가부장제 5천 년에 책임이 없는데. 그냥 태어나 보니 지금인데…억울해요." 젊은 남성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할 수 없어요. 늘 말하기를 훈련받은 남성이 한 명이라도 끼게 되면 여성 경험의 공적발화는 그만큼 지연되기 쉽거든요.

p.297

아직도 남아서 작동하는 가부장적 전제에 대해서는 여성 연대로 저항해야 하지만, 적어도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청년들이 연대를 해야 해요. 그때 청년 남성들은 여러분의 동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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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선 현희
소요리모임

p.29 푸블리우스

"이제 예배가 시작되는 건가?" 글레멘드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집으로 들어오면서 실제로 예배는 시작 되었지."

p.36

내가 판단하기로는 모든 일이 바로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졌고, 또 평범한 목소리로 진행되었다.

p.49-50

바울은 대체로 현 상태에 만족하고 그것을 바꾸지 말라고 조언했다. 종으로 있는 사람은 자신의 종 됨을 남을 섬길 기회로 여기라는 것이다. 우리의 위치가 어떠하든,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기본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를 얻을 기회가 생기거든, 다른 사람들처럼 자유인 되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했다. 새로운 상황에 바르게 접근한다면, 실제로는 남들을 도울 새로운 방법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주인들 자신도 실제로는 그리스도에게 종이며, 종들도 본질적인 면에서는 실제로 자유인임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p.54 아리스도불로

자기 종에게는 모임에 나오도록 설득했으면서도, 자기 아내에게는 이 모임이 뭔가 다르다는 확신을 주지 못했다.

p.61 새로운 손님 두로

••• 두로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가 그들의 공동체에 온 것을 환영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돌보겠다는 서약을 했다.

p.63-64 아굴라가 은사에 대해 말하다

이 모두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지 이기적으로 숨겨두거나 자기 혼자만 누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모든 은사가 합력하여 삶의 모든 면에서 참석자 각각은 물론 모임 전체의 성장을 위한 자원을 제공한다고 했다. 바로 이것이 모든 사람이 어떤 능력을 받았는지를 발견하고, 그 능력을 언제 어떻게 행사하는 지를 분별하며, 다른 사람의 은사를 받아들일 때 그것이 얼마나 참인지 아니면 단순히 개인의 의견인지를 신중하게 재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했다.
아굴라는 역설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모든 은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은사를 발휘하기를 열망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적실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또 서로를 참 사랑으로 돌보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자질을 드러내도록 합시다."

p.67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나눌 것을 더 많이 주시리라는 것과,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것들을 더 유용하게 하시리라는 것을 알기 원하십니다. 이런 일은 우리가 은사 그 자체를 구하기보다는 서로를 섬기는 일에 집중할 때 일어날 것입니다. 만일 기꺼이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모임 바깥에서 그리고 우리가 주를 위해 영향을 미치고 싶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의 은사를 사용할 영역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p.75 역자 후기

우리는 교회를 믿는다. 교회는 나가거나 안 나가는 곳이 아니라 매 순간 갱신하며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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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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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양들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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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정리/인물정리/서평

p.156-157

마리아는 반박하지 못했다.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죄를 범한 것이 사실이니까. 지금껏 그녀는 죄를 고백할 수 있을 때까지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 기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도했다. 그녀는 신의 용서를 받았다고 믿게 되었지만 스스로를 용서하지는 못했다.

p.162 말 이름이 요나라니 작가님 요나라는 이름 쓰고 싶었나보다

사물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덩치 큰 사내 하나가 태연하게 다가와 말 목을 쓰다듬었다.
"요나! 이 말썽꾸러기 녀석! 다른 애들은 벌써 돌아왔는데 농땡이를 피웠구나."

p.174 마티아스와 피슈카르

그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죄를 짓는 건 인간이지만 그 죄를 용서하는 건 인간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p.211

마티아스는 두려움과 증오가 불러온 소문과 억측에 가린 예수의 면모를 지켜보았다. 그는 살인자가 아니라 죽음에 몰린 여인을 구한 보호자였다. 사기꾼이 아니라 자신을 공격하던 회당장의 딸을 살린 치유자였다. 그리고 살인 집단의 수괴가 아니라 자신을 불신하는 제자들의 지친 발을 씻어주는 스승이었다.

p.211-212 죽음을 선택한 마티아스

"그래요. 난 죽을 수밖에 없고 다시 살아날 수도 없는 사람의 아들이에요. 하지만 적어도 제가 믿는 진실을 위해 죽을 수는 있어요. 그를 증언하려는 건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예요. 제가 찾아낸 진실이 제 죽음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면 구차했던 제 삶도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을 테니까요."

p.255 유월절 날 마리아

"두려워하는 것도 인간이지만 두려움을 이기는 것도 인간이에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셨지만 두려움을 이길 힘도 주셨어요."

p.248-249

그래 이곳은 지옥이야. 하지만 천국을 꿈꾸는 지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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