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역사 소설, 페미니즘 소설. 그 어떤 수식도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p.370 이런 사람들이 30세기 초반 이곳에 살았다. 혁명이 직업이고 역사가 직장이었던 사람들.
p.14세 여자를 감싸고 있는 경성의 공기가 여름 햇볕과 젊은 혈기에 이스트처럼 부풀어 올랐던 나이 스물, 두려움도 비겁함도 없었던 그 시절을.
p.21열여덟 나이에 강연을 다니며 여성계몽운동도 해봤지만 정숙의 야심은 그 이상이었다. 정숙은 세상의 모든 언어로 말하고 싶었고 이 세상 모든 항구에 정박하고 싶었다.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모든 것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장 맹수 이빨 사이에 끼어 있는 조선 민족을 구할 사상과 이론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p.23정숙은 꾹 다문 입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녀는 처음 아버지에게 도전했고 첫 회전에서 승리했음이 분명했다. 그해는 기미년이었고 그것도 일종의 만세운동이었다. 거리에서 여럿이 부르는 만세보다 집 안에서 혼자 부르는 만세가 더 어려운 법이다.
p.270실제로 이 남자는 깊은 사랑을 모르는 것이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다는 건 어느 순간에도 손을 놓지 않는 그런 것이다. 앞에 놓인 것이 낭떠러지일지라도. 적어도 헌영과 세죽은 그러했다. 처음에도 지금도. 세죽은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단야가 과연 명자를 사랑했던 걸까.
마음이 힘들 때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읽게 만드는 책.
p.13통화현에서 가장 고운 게 무엇이겠니?당장 떠오르는 것은 토끼의 새끼.
p.141또?또 무어.토끼 얘기 또 해주어.글쎄 무어가 있으려나. 기래, 옥이 늬 거 아니?무얼 말이오?토끼는 외로워서 죽기도 하는 짐승이란다.거짓말. 참말.거짓말!참말이다.외로워서 죽는다니 순 거짓말이다. 사람도 아니면서.옥이의 말에 주룡은 픽 웃는다.사람이 외로워 죽는 것은 되는 말이구?
p.197 주룡을 처음 만나고 돌아온 날 달헌은 제 일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싸우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 주룡을 만나면 만날수록, 첫인상이 옳았다는 달헌의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총파업 후 첫 출근 날, 세 번째로 주룡을 찾아갔던 때가 특히 그랬다.
p.242지붕 위에서 잠든 그 여자를 향해 누군가가 외친다.저기 사람이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