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콜하스 중, 칠레의 지진

"자신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참변이 세상에 닥쳐야 했는지 생각하자 가슴이 느꺼웠다!"(p. 191) - P167

내가 무탈하다고 해서 다른 이들의 불행 앞에서 함부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지, 무분별한 열정을 하나님의 뜻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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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작품들 앞에 설 때마다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움찔거리며 낙담하는 나의 버릇이 떠올라 부끄러웠습니다. 절망도 견디고, 허망함도 견디고, 권태도 견디고, 전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함도 견디며 살아야 합니다. 지레 두려워할 것도 없고, 남들과 자기를 비교하면서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면 됩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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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삶의 목표를 행복으로 정하는 것보다는, 일상의 삶을 견디며 그 속에서 더러 만나는 행복감에 만족하는 게 더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요? - P140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지어진 세상을 보며 즐거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연 세계가 아름답게 유지되고 번성하도록 돕는 역할을 인간에게 위임하셨습니다. 노동은 인간을 골탕 먹이기 위해 하나님이 고안하신 형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일에 동참하라는 기쁜 초대입니다. 히브리어로 노동을 뜻하는 ‘아보다‘ (avoda)가 ‘예배‘를 뜻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합니다. 소외되지 않은 노동, 기쁨과 감사로 수행하는 노동은 하나님께 바치는 예배라는 뜻일까요? 생육하고 번성하고, 피조물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을 성경은 하나님이 베푸신 복이라 말합니다. 그 복을 한껏 누리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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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거기 서 있다, 박노해

교회를 가리켜 흔히 공동체라 말합니다. 공동체를 뜻하는 ‘community‘는 ‘함께‘를 뜻하는 ‘com‘과 ‘선물‘을 뜻하는 ‘munus‘가 결합된 말이라 합니다. 공동체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이들의 모임이라는 뜻일 겁니다. 누군가의 선물이 되려는 사람은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의 취향과 형편을 존중해야합니다. - P130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라
아픈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 된다
총구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양심과 정의와 아이들이 학살되는 곳
이 순간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나 거기 서 있다」 중에서)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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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창조의 영성

미국의 교사라 칭함을 받는 파커 파머는 우리가 부름을 받은 위대한 일은 ‘실적‘을 쌓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일, 불의에 대항하는 일, 슬픈 자를 위로하는 일, 전쟁을 끝내는 일과 같은 것" 말입니다. 이런 일에는 ‘실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하겠다는 헌신의 마음뿐입니다(일과 창조의 영성』, 아바서원, p. 140 참조). 하나님은 그 마음을 받으시어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그렇기에 내 공로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이 있다면 다만 그분의 은총 앞에 마음을 여는 일입니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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