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너무 바쁘면 심신이 지쳐 진정한 소명을 놓칠 수 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최대 경쟁자는 바로 그분에 대한 섬김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유일한 이유는 그분을 위해 뭔가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분 안에서 만족을 누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하는 일조차도 그것에만 매달리면 우리를 부르시는 그분의 음성을 놓칠 수 있는 것이다. - P51

나를 부르신 분의 관점에서 자신을 정의할 때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 시편 17편 8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라고 간구한다. 여기서 "눈동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내 눈의 작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 누군가의 눈 속을 가까이에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로 자기 자신이 보인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분을 뚫어져라 보다 보면 자신의 정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세상의 거짓말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나의 모습, 진짜 자신이 보이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닫고 성경이 나에 대해 말하는 진리를 중심으로 삶의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 P65

부르심에 관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하나님은 자격 있는 자들을 부르지 않고 부르신 자들에게 자격을 주신다."

전도자이자 기독교 교육가인 D. L. 무디도 비슷한 말을 했다. "모세는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40년을 보냈다. 그리고 자신이 하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40년이 걸렸다. 그다음 40년은 하나님이 하찮은 사람을 통해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 P122

우리는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하나님의 투자 대상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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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 비유)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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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의 청년편지
김기석 지음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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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연식과 지식의 깊이를 알 수 있는 글이었다. 수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읽은 에세이 중 가장 마음에 든다. 주제는 무겁지만 필체는 가볍고 제목부터 마무리까지 한번에 정리되는 그런 글. 목사님의 다른 글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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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가장 자리에서

우리는 그럴듯한 자기 동일성이 무너지지 않는 범위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하시디 이야기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제자가 랍비에게 묻습니다. "토라는 왜 우리에게 ‘이 말씀을 네 마음 위에 두라‘고 말하나요? 왜 이 거룩한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두라고 말하지않나요?" 랍비는 우리 마음이 닫혀 있기에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둘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우리 마음 꼭대기에 둔다. 그리고 말씀은 거기에 머물러 있다가 어느 날 마음이 부서지면 그 속으로 떨어진다" (파커J. 파머, 『모든 것의 가장 자리에서』, 글항아리, p. 217). 파커 파머는 마음이 부서져 조각나는 이들도 있지만 부서져서 열리는 이들도 있다고 말합니다. 신앙의 신비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에 대해 절망해 보지 않은 이가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철저한 절망이야말로 은총으로의 입구일 때가 많습니다. - P214

그러나 고백을 삶으로 번역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살기 어려운 이유가 백 가지도 더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길이라 고백하면서도 정작 그 길을 걷지는 않습니다. 그 길을 걷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개 그 길을 걷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교인으로 평가받고 싶어 합니다. 교회 출석도 열심히 하고, 헌금 생활도 잘 하고, 전도 혹은 선교도 게을리 하지 않고, 가급적 봉사활동에도 빠지지 않으려 합니다. 이만하면 좋은신자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이런 이들을 일러
"명목상의 그리스도인"(almost Christian)이라 말합니다. 명목상‘ 이라고 번역된 ‘almost‘는 사실 거의, 대체로‘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보면 꽤 긍정적 평가처럼 들리지만,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곧 ‘거의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웨슬리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에 대비되는 참 그리스도인(altogether Christian)의 징표가 있다고 말합니다. 전심전력을 기울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일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를 초월합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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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시대의 신앙 고백"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다고 믿기에, 인종적 편협함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잔혹한 부인이라고 고백합니다. 따라서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믿는 이들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는 인종, 성, 정체성, 계급에 따른 어떤 억압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성 혐오, 학대, 성폭행, 성추행과 모욕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입니다. 가정과 교회 공동체, 일터와 정치 무대에서 여성이 존중받는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굶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헐벗은 사람, 낯선 사람, 병든 사람, 갇힌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곧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하는 방식입니다. 이민자들과 난민들을 함부로 대하고, 병든 이들의 치유받을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 정치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정치입니다. ••• 그리스도적인 리더십은 지배가 아니라 섬김이기에 선출된 공직자들은 그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특정한 나라의 경계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미국 우선‘이라는 구호는 신학적 이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 P205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이 불편한 교회, 예수님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교회는 이미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어렵다고 느끼기에 예수님을 저만치 밀어 올린 후 경배합니다. 경배하는 일은 쉽습니다. 삶을 바꾸지 않아도 되니 말입니다. 이래저래 예수님이 외로운 시대입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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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룰을 어기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젊은이들의 분노는 정당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분노에 집중할 때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관용의 마음이 스러진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경쟁하려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힘있는 이들의 지배는 더욱 공고해질 것입니다. 경쟁을 내면화하고 사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의 연대에 무관심해지고, 공동체 의식으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 차가운 공정함에 대한 집착은 결국 차가운 세상을 낳게 마련입니다. - P178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의 기초가 정의와 공의라고 말합니다. 정의는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는 것 (juridical justice)과관련됩니다.
•••
성경에서 공의는 사법적 정의가 아니라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율법은 빚을 삭쳐 주는 해인 면제년이 다가온다고 하여 궁핍에 처한 이들을 냉대하거나 꾸어 주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합니다(신 15:11). 희년이되면 빚에 몰려 땅을 남에게 넘긴 이들은 자신이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고, 종으로 팔렸던 이들도 가족에게로 돌아가야했습니다(레 25:10).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요구한 삶이었습니다. 그러한 요구는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합니다. 우리는 잠시 동안 하나님의 땅에 머물다 가는 존재일 뿐입니다. - P179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지만 세상에는 공평함이 없습니다. ••• 차이를 차별로 바꾸어 온 게 인류의 역사입니다. 차이가 전혀 없을 수는 없지만, 차별은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차별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늘 짓눌린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어느 분은 율법의 특색을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관심‘
이라고 말했습니다. 율법이 주어진 것은 세상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놓은 간극을 가급적 좁히기 위해서입니다. - P179

솔로몬은 나라를 다스릴 지혜를 구합니다. 사실 솔로몬이 구한 것을 지혜라는 말로 요약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왕상 3:9, 개역개정)

‘듣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크게 와 닿습니다. 잘 듣는다는 말은 외이도를 따라 들어온 외부의 소리가 고막에 잘 전달된다는 뜻만이 아닐 것입니다. 누가 잘 듣는 사람입니까? 발화된 말을 잘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숨겨진 말까지 듣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듣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로 거기서 지혜가 발생합니다. - P181

예언자들의 두 가지 직무는 불의한 세상과 권력자들을 고발하는 것과 상처 입은 백성들을 위로하고 하늘의 꿈을 심어 주는 일입니다. 참 예언자들이 고발하는 직무에 치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그 고발과 탄핵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언자들은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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