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가장 자리에서

우리는 그럴듯한 자기 동일성이 무너지지 않는 범위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하시디 이야기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제자가 랍비에게 묻습니다. "토라는 왜 우리에게 ‘이 말씀을 네 마음 위에 두라‘고 말하나요? 왜 이 거룩한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두라고 말하지않나요?" 랍비는 우리 마음이 닫혀 있기에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둘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우리 마음 꼭대기에 둔다. 그리고 말씀은 거기에 머물러 있다가 어느 날 마음이 부서지면 그 속으로 떨어진다" (파커J. 파머, 『모든 것의 가장 자리에서』, 글항아리, p. 217). 파커 파머는 마음이 부서져 조각나는 이들도 있지만 부서져서 열리는 이들도 있다고 말합니다. 신앙의 신비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에 대해 절망해 보지 않은 이가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철저한 절망이야말로 은총으로의 입구일 때가 많습니다. - P214

그러나 고백을 삶으로 번역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살기 어려운 이유가 백 가지도 더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길이라 고백하면서도 정작 그 길을 걷지는 않습니다. 그 길을 걷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개 그 길을 걷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교인으로 평가받고 싶어 합니다. 교회 출석도 열심히 하고, 헌금 생활도 잘 하고, 전도 혹은 선교도 게을리 하지 않고, 가급적 봉사활동에도 빠지지 않으려 합니다. 이만하면 좋은신자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이런 이들을 일러
"명목상의 그리스도인"(almost Christian)이라 말합니다. 명목상‘ 이라고 번역된 ‘almost‘는 사실 거의, 대체로‘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보면 꽤 긍정적 평가처럼 들리지만,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곧 ‘거의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웨슬리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에 대비되는 참 그리스도인(altogether Christian)의 징표가 있다고 말합니다. 전심전력을 기울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일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를 초월합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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