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룰을 어기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젊은이들의 분노는 정당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분노에 집중할 때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관용의 마음이 스러진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경쟁하려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힘있는 이들의 지배는 더욱 공고해질 것입니다. 경쟁을 내면화하고 사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의 연대에 무관심해지고, 공동체 의식으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 차가운 공정함에 대한 집착은 결국 차가운 세상을 낳게 마련입니다. - P178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의 기초가 정의와 공의라고 말합니다. 정의는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는 것 (juridical justice)과관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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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공의는 사법적 정의가 아니라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율법은 빚을 삭쳐 주는 해인 면제년이 다가온다고 하여 궁핍에 처한 이들을 냉대하거나 꾸어 주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합니다(신 15:11). 희년이되면 빚에 몰려 땅을 남에게 넘긴 이들은 자신이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고, 종으로 팔렸던 이들도 가족에게로 돌아가야했습니다(레 25:10).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요구한 삶이었습니다. 그러한 요구는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합니다. 우리는 잠시 동안 하나님의 땅에 머물다 가는 존재일 뿐입니다. - P179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지만 세상에는 공평함이 없습니다. ••• 차이를 차별로 바꾸어 온 게 인류의 역사입니다. 차이가 전혀 없을 수는 없지만, 차별은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차별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늘 짓눌린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어느 분은 율법의 특색을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관심‘
이라고 말했습니다. 율법이 주어진 것은 세상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놓은 간극을 가급적 좁히기 위해서입니다. - P179

솔로몬은 나라를 다스릴 지혜를 구합니다. 사실 솔로몬이 구한 것을 지혜라는 말로 요약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왕상 3:9, 개역개정)

‘듣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크게 와 닿습니다. 잘 듣는다는 말은 외이도를 따라 들어온 외부의 소리가 고막에 잘 전달된다는 뜻만이 아닐 것입니다. 누가 잘 듣는 사람입니까? 발화된 말을 잘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숨겨진 말까지 듣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듣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로 거기서 지혜가 발생합니다. - P181

예언자들의 두 가지 직무는 불의한 세상과 권력자들을 고발하는 것과 상처 입은 백성들을 위로하고 하늘의 꿈을 심어 주는 일입니다. 참 예언자들이 고발하는 직무에 치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그 고발과 탄핵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언자들은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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