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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후회남
둥시 지음, 홍순도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말에 신중을 더하라. 교훈을 주는 책.
"입으로 망했다." 란 말은 주인공인 광셴의 일화였다.
미스터 후회남 표지를 보고 있으면, 참 암울하다는 생각이 들며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책을 펼쳐보니 첫 장부터 책의 이미지 만큼이나 후회스러운 삶이 그려진다.
주인공 쩡광셴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부정'이라 여기는 것을 자오완녠에게 고해 받친다.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인데도 어쩜 저럴까? 당시의 사상 탓도 있으니 한 번은 실수로 몰라서 그랬다 치더라도 두 번, 세 번 반복될 때는 아버지가 고문 받아 만신창이가 될 텐데. 뭐 저런 자식이 있을까 화도 나고,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저러나 걱정도 되고 착잡하기 그지 없었다.
사실, 스스로 비판 투쟁의 씨앗을 뿌린 셈. 그의 회한어린 삶은 자기 스스로 만들었다는데 이의는 없었지만, 광셴이 고지식하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었다. 광셴의 후회스러운 삶을 들여다보면, 그의 아버지 창펑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데 내 눈에 창펑은 (광센보다 더) 사상의 가장 큰 피해자로 보였다. 부자집 고귀한 도련님에서 몸 하나 제대로 못 가누는 비판 투쟁의 먹이가 되기까지. 온전히 세상이 바뀌어서 도련님에서 평민으로 변화된 흐름에 동참하는 것으로 보여졌지만, 아들의 고자질로 인해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사람을 기피하게 되고 부정을 끊는 순간이 오기까지 그래도 그는 멀쩡한 남자임이 틀림없었다. 가정파탄에 이르기까지 발단은 두 마리 개에게서 시작되었다.
창펑의 부인은 합방하는 것을 더러운 것이라 여겨 표백제를 다 들이붓고는 자신의 몸이 깨끗해졌다고 여긴 뒤부터 일체 관계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10년 넘는 기나긴 독수공방을 잘 버티던 그는 우연히 개들의 교미를 보고는 끓어오르는 욕정을 감출 길이 없었다.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되는 창고의 다세대 주택.
다세대 주택이라고 하니 웃기지만 사실 여러 가구가 살았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붉은 벽돌로 나뉜 세구역의 창고. 방음이 허술한 그곳에서 다른 부인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밖에서 열기를 식혀야 하고, 부인에게 잠자리를 요구하지만 거절 당하고, 끝내 친구에게 어이없는(?) 요구까지 하더니만 맨정신으론 저지를 수 없는 행동까지 실천하게 된다. 바로, 처녀인 자오산허와 잠자리에 드는 것. 물론 해방되기 전, 그 옛날 쩡씨 가문 덕분에 굶어죽지 않았다고 여기던 자오할아버지(자오산허의 아버지)가 은혜를 갚겠다고 허락하며 벌어진 일이였지만, 우연히 목격한 어린 광셴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시대가 바뀌자, 자본주의의 승자였던 부자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며 재산을 헌납하고 노동계급으로 전락하게 되며, 예전엔 노비 정도로 살았을 제 5중학의 교장인 자오완녠의 눈치나 보는 꼴이 되어버렸다. 성에 민감하고 자칫 잘못하면 욕망이 독이 되는 당시의 상황을 엽기적으로 잘 이용한 것 같았다. 쩡광셴. 그의 성장기를 들여다보면, 그처럼 파란만장하기도 힘들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 동생의 행방불명, 망가진 아버지의 무게에 짖눌려 50살이 넘도록 한 번도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고, 그럴 기회가 찾아와도 무거운 것이 짖눌린 듯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의 입 때문에 빚어진 일화가 그를 억누를 때마다 그의 입을 때리는 행동하며, 그럼에도 반복하는 행동들.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지는 모습들.
마지막에 후회록을 보며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소설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 같은 후회스런 삶이 대부분이 아닐까 하는.
개와 사랑을 나누다가 비판 투쟁에 서게 될까 두려워 자살한 자오징둥, 과격한 운동으로 인해 처녀막이 찢어진 걸 모른 채 두려워 거짓 무고를 한 장나오, 자신의 마누라와 통정한 바이자, 함께 비판투쟁을 받으며 견뎠던 사랑이 바람을 피자 미쳐버린 샤오츠, 늙은 아버지의 긴 병 끝에 아들에게 유혹을 하는 자오산허의 모습까지. 마지막까지 익살스러운 이 소설은 누군가의 삶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