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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난 죽을 수도 없고, 당신 앞에서 사라질 수도 없다. 내가 사라진다면, 나는 당신을 용서한 게 돼버리니까”
우리는 행복해지려고 함께하는 게 아니에요.
헉! 충격 그 자체의 사랑이야기.
아니. 이게 무슨 얘기지? 왜 계속 땀이 흐르고 뜨뜨미지근한 공기를 강조하는 거지? 이런 저런 생각들로 꼬리 물기 연상 퀴즈를 하면서 책을 봤다. 완독을 하고 다시 첫장을 펼쳐보니 중요 인물들이 한 장에 전부 등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이 책을 대했을 땐, 정말이지. 시작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뭔가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점점 오기가 발동했다. 결국, 5시간 만에 앉은 자리에서 홀라당 다 읽어버렸다. 보통 어떤 책일까, 탐독하면서 느긋하게 읽어버릇 했는데... 굉장한 집중력을 쏟아부으며 본 이 책은 아름답지 않았다. 물론 어딘가 허술하다거나 졸작이라는 평은 아니다. 단지, 작가와의 신선한 첫만남을 기대한 내게 찬물을 확 끼얹은 듯한 느낌 정도로 표현하면 알맞겠다.
이 책은 화사한 노란색. 아니, 레몬의 이미지를 쓰고 찾아와 날 후미진 골목으로 이끌어준 책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계속 무더운 날씨, 뭐 하나 부러울 게 없는 불우한 인생 이야기가 진행된다. 저자 요시다슈이치의 <악인>에 대한 명성으로 이 책을 손에 들었는데, 조금은 날 갑갑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이런 삶이 있겠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리얼리즘은 있었다. 슬픈 이야기라니까 밝지만은 않겠지. 각오는 했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책을 부여잡고 설마, 설마 하면서 읽었는데... 그 설마였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 하지만 절대 아름답지 않은, 원죄 속에 후회의 꽃이 활짝 핀, 사랑이야기였다.
범인은 누구인가? 사실, 소설에선 중요하지 않다.
처음 시작은,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
아들 '메구무'가 죽고 언론의 먹이감이 된 사토미. 그러나 아들이 죽고도 짙은 화장으로 치장하기 일색인 그녀였기에 비난하는 눈길이 가득하다. 결국 살인자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정사실인 듯 떠드는 가운데. 바로 옆집에 사는 슈ㄴ스케 부부는 그들에게 닥쳐올 위기를 모른 채, 남얘기 하듯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글의 흐름대로라면, 부부는 지켜보는 자로서 사건을 풀어가야 마땅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할 뻔 했다. 처음부터 집중 조명된 것은 옆집 여자 '사토미'였으니까. 이렇게 살인사건을 미끼로 부부의 '과거'가 주가 될 줄은 몰랐다. 사실, 오자키는(슈ㄴ스케) 운동하던 시절, 끓어오르는 성욕을 감당하지 못한 벌을 받는 중이었다. 집단 성폭행으로 피해 여자뿐 아니라 자신의 삶까지 엉망으로 만들었고, 하루도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런 과거를 지닌 남자가 옆집에 산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용의자에 오르는 건 당연할 터.
비밀리에 그의 뒷조사가 시작되고 기자인 와타나베는 (고바야시를 뺀다면) 유일하게 수사를 풀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눈엔 살인자로 지목당한 당사자도, 관계된 주변인들도 와타나베 만큼은 심각해보이지 않았다. 내 멋대로의 생각이지만 사실은, 사실을 밝힐 의지가 없어보인다고 해야 할까?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그냥 몇 번의 질문에서 혹시 가나코가 범인이 아닐까, 막연한 추측을 할 뿐. 작가는 애시당초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군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그저 이 사건은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깔아놓은 밑밥인 듯.
'가나코'란 이름의 비밀. 이 부부가 불행하게 사는 법. 숨겨진 엄청난 과거로 인해 이번 사건에 배후로 얽히게 되기까지. 또, 마지막 '시냇물 고향 온천'에서 목욕을 마치고 떠나는 가나코.
작가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들의 비뚫어진 시선. 그리고 나만큼은 피해자가 되지 않을 거라는 자만을 꼬집고 싶은 것 아니었을까? 그런 사건. 편파적인 시각. 남자들만 한 가득인 운동부에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성적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저지른 실수라며 옹호할 수 있는 문제라면, 여자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습격당한 사냥감 아닌가?! 아마도, 작가는 이기적인 우리 사회를 꼬집고 싶었던 거 같다.
그리고 작별.
메모 속 메세지, 사요나라.
책 제목의 이유를 알것 같다. 일본에서 보통 연인이나 친구사이에는 잘 쓰지 않는 인사, 사요나라. 오랫동안 못 볼 이별을 예고하는 인사말이다. 함께 하면 불행하기에 함께 사는 부부. 놓아주는 것이 행복을 빌어주는 걸까? 그건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처럼 느껴졌다.
독자를 향한 그녀의 질문이 이어진다.
그런 일을 당한 여자와 마주 할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용서해줄 사람이 필요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