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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리고 꽃들의 자살 - 동심으로의 초대 어른을 위한 동화
이세벽 지음, 홍원표 그림 / 굿북(GoodBook)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 그리고 꽃들의 자살
제목: 꽃앓이를 하는 모든 등나무를 위한 책.
이세벽 씨와의 두 번째 만남. 이번에는 한 몸이 된 등나무 이야기였다. 저자는 실제로 ‘한 몸이 된 등나무'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한 몸이 된 등나무를 보고 사랑을 말하고 아픔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 과연 존재할까? 실제론 죽음이 갈라놓은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절절한 사랑은 본 적이 없다. 하물며 결혼한 후 시들해지는 부부사이는 멀리 내다보지 않아도 가까이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었다. 영원의 사랑이라. 의문을 숨기지 못하며 글을 읽어 내려갔다.
초반에는 아주 작고 여린 풀잎이 등나무로 자라기까지의 여정이 전개된다. 자신의 존재가 나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까지 자아 찾기에 나서야 했고, 햇볕을 마주 보는 것이 아무리 두렵더라도 조금씩 다가가야 하는 ‘성장통’을 겪는다. 등나무로 성장하기까지는 적과 아군이 존재한다. 현실에서처럼 햇볕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는 진리의 소리. 시기와 질투로 점철되어 비난과 조롱을 일삼는 주변의 풀잎들.
여기서 햇볕은 사회이며, '햇볕 쬐기'는 세상을 사는 방법이 아닐까? 후반부에 등장하는 서쪽과 남쪽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자살한 꽃의 이야기는 정말 참담했다. 꽃들은 모두 다 햇볕을 향해 고개를 뻗는다. 각자 동서남북으로. 그런데 대부분의 꽃들은 아침에만 잠깐 햇볕을 향하고 만다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자신도 그렇게 한다는 꽃의 말이 이어졌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한다. 힘들게 햇볕을 쬐고 벌과 나비에게 시달리기 싫다. 이 말들은 마치 궂은일을 하지 않고 편하게 먹고 살겠다는 인간을 비유한 것 같았다. 남쪽을 향한 꽃은 튼튼한 열매(자식)를 맺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북쪽을 향한 꽃은 햇볕을 쬐지 못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음지에서 핀 꽃의 최후처럼, 반사회적인 인간이 끝내 선택하는 죽음 말이다.
사회성. 그리고 일터에 바치는 값진 노동이 ‘햇볕 쬐기’라면, 등나무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또 다른 등나무는 사랑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사랑과 자살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의 힘으로 하늘높이 자라는 등나무가 되고자 도시로 떠나던 중 만난 소중한 연인. 그들은 서로를 갈망하지만 손이 닿지 않자,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마침내 서로의 손이 닿았을 때 그들은 기쁨에 젖어 서로를 끌어안았고, 몸이 짓물러도 인내하며 견뎌낸다. 아무리 몸부림 쳐도 옆으로만 자라던 몸. 혼자서는 그토록 멀게만 느껴졌던 하늘이 둘이 함께 하니 손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연인 등나무와의 결합. 그것은 결혼한 부부와 같았으며, 둘의 사랑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한 나머지 결국 만났고, 하늘로 자라는 꿈도 이루고, 꽃도 피우게 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그들은 서로를 헐뜯고 미워하게 되는 말다툼만을 반복하며 남은여생을 보내게 된다.
그로 인해 피해를 본 것은 그들 자신은 물론이고, 꽃들이었다. 자식이라고 해도 좋을 꽃들의 자살이 이어졌다. 부모의 근심과 불화로 자식들이 겪는 고통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사랑은 봉사정신으로 하는 게 아니다. 이런 말로 반론할 수는 있겠지만, 왜 자식인 꽃들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져야만 할까. 마침내 자식으로 인해 깨달은 것은 서로 헤어질 수 없이 완전한 하나가 되었다는 것. A와 B가 만나 A도 B도 아닌 AB가 된 것과 같았다. 등나무의 눈물은 현실에 못 이겨 이혼하지 못하는 부부를 보는 것 같았다. 꽃들의 자살. 제목에서 느꼈던 의아함이 싹 가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등나무는 속으로 말한다. 영원히 당신을 사랑한다고. 배우자가 자신과 헤어지길 원하고, 상처 주는 말을 쏟아내도 그를 내치지 못하는 것이 사랑인 걸까? 연애할 때는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날마다 몸부림치고 그리워하고 눈물을 흘리는 등 서로를 애틋하게 원하다가 부부가 된 그들은 왜 변한 걸까. 배척하고, 무시하고, 아픔만 주는 부부의 모습. 서로를 떼어낼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 등나무 부부의 모습은 보통 가정과 매우 흡사했다.
영원한 사랑을 믿느냐고? 등나무를 통해 무정한 세상을 비추던 현실감에 쉽사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작가는, 응원하고 있었다. 이제는 빛바랜 외사랑을 견뎌내는 이에게는 힘내라고, 차가워진 상대방에게는 혹시 간과한 것은 없었는지. 상대가 소중했던 추억을 회상해보라고 일깨워 주는 것만 같았다. 만약 등나무를 통해 사랑을 그리는 감성이 존재한다면 이 책을 읽고 꽃앓이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