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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관객 - 미디어 속의 기술문명과 우리의 시선
이충웅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미디어 속의 기술문명과 우리의 시선, 문명의 관객!
반짝이는 표지가 처음 날 반겼고, '관객'이라는 글자가 여러 번 눈에 띄게 내게 물음을 던졌다. 정말 '관객'이 될 수 있겠어? 라고 묻는 듯 했다.
네 개의 장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장에선 몸을 향한 욕망의 시선. 두 번째 장에선 편견과 열등감과 열광의 추억. 세 번째 장에선 위기와 공포의 재생산. 네 번째 장에선 불완전한 연희에서 희망을 찾다.
몸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에선, 미용성형. 비만과 다이어트로 함축할 수 있다. 이거야 뭐 이미 다 아는 얘기니까 길게 말할 필요도 없겠다. 미모가 곧 능력이 되는 사회이니까, 자신을 가꾸는 쇼핑의 일부분이 된 것을 비판하긴 이미 힘들어진 상황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도 성형을 하면서 남이 하는 것은 못 봐주는 놀부 심보를 들어내곤 한다. 생면부지의 스타를 향해 아무 이유 없이 욕을 늘어놓는다. 어디를 했고, 어디가 이상하다. 쟤는 고치지 말지. 쟤는 좀 고쳤으면 좋겠다. 등등. 이래도 밉상 저래도 밉상 아닌가? 결국은 자기 마음에 안 들거나 질투의 이유 때문이겠지만. 경쟁력으로 자리하는 미모를 가꾸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가끔은 요요현상이나 부작용 등의 리스크를 겪기도 한다. 아파하는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이 상황에 어울릴 진 모르지만 적어도 아픔이 없인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불완전한 연희에서 희망을 찾다 편. 그 중에서 블로그에 대해 말하려 한다. 블로그는 이미 싸이월드 다음으로 많이 쓰는 매체다. 싸이월드는 사진 중심이라면 블로그는 글 중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싸이월드는 친한 친구들의 동창회처럼 사용된다면, 블로그는 내 생각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나는 그런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온전히 그 사람을 모른 채 게재된 글 만으로 그를 만나고 교감할 수 있는 공간. 그것이 블로그라고!
그런데 불경스러운 사람도 간혹 만날 수 있다. 남이 쓴 글에 어찌 반말로, 그것도 무시하는 투로 흔적을 남길 수가 있을까?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러니까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정정하길 원하는 것이 있다면 존댓말로 비꼬지 말고 예의를 지켜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온라인상에서는 댓글이 곧 말이다. 초면에 야자 하는 거랑 같은 이치 아닌가.
지은이도 첫 블로그를 없애 버린 이유를 말하길, 함부로 글을 '퍼가는' 사람들의 태도에 적잖이 놀랐고 거기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탓도 있다고 했다. 귀찮은 이유와 스크랩 후 마구잡이라 편집해서 자기가 쓴 글인 양 올리는 것 중 어떤 이유가 더 컸을까? 굳이 말 안해도 알 테지만, 끼워 넣기의 불쾌함은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건 작게 보면, 이기심이지만, 크게 보면 범죄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 거기다 악플러들의 기승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줄지 않고 뉴스에 언급되곤 하는 시대니까.
제발 선플러가 못될지언정 악플러는 되지 않았으면 한다. 진심으로. 화가 나서 감정을 풀어놓는 거라면, 상대방이 자신이라고 이입해보면 그럴 수 있을까? 순간의 실수로 인생 망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