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김만섭이 신을 만난 얘기
고인덕 지음 / 하나문화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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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와 신의 만남이라고 해서 굉장히 독특한 이야기가 되겠구나, 기대했었다. 어디까지나 내 기대감은 책 표지를 꼼꼼히 읽었을 때까지만 살아있었다. 페이지의 무게가 왼쪽으로 치우쳐갈수록 내 고개는 갸우뚱하고 있었다. 왜? 대체 왜 이렇게 소모성인 대화만 계속 되는 거지? 신에 대한 정체성이 결론 날 때까지 한 번 가보자, 이건가?!

 

문득, 예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이 떠올랐다. 앙드레 지드가 쓴 미발표작이라는 광고로 한껏, 그것도 양껏 내 마음을 붙잡았던 책, <코리동>. 이 작품에 견주어서는 좀 더 담대하고, 격언과 명사들의 언급이 난무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책 한 권이 끝날 때까지 오직 소모적인 대화만 이어진다는 점에서 동일시 할 수 있었다. 그 때에도 <좁은 문>을 쓴 저자니까, 뭔가 다를 거다, 이런 식의 기대에 가득 찼고, 곧 실망감을 가득 안고, 마지막 대화까지 읽으며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책이 그 때의 감정을 다시 떠오르게 만들다니, 그 점이 놀라웠다. <코리동>과 이 작품이 다른 점이 있다면 <코리동>은 동성애에 대해, <물리학자 김만섭이...>는 신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덧붙이자면, 격이 다른 것을 들 수 있다. 독자로 하여금 다소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코리동>이지만, 고품격 대화라고 봐줄만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격분하고 말았다. 살짝 본문을 봤을 때 이 책이 이 정도로 실망스러울 거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오히려 마음에 드는 부분을 본 것 같다. 선뜻 특이한 제목과 소재로 마음이 끌렸던 책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책을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실망감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뿐...

 

이해하기 힘든 꼬리물기 잡념과 잡담이 가득 공감을 메우는 낙서장이었다. 여기서 이해하기 힘든, 이라고 표현한 것은, 깔끔하게 문체를 다듬고 또 다듬는 것이 소설가들의 일이라고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말하는 것이다. 너무나 다듬어지지 않고, 홀로 무한 생각들을 나열한다. 절대로 문장을 깎고 다듬었다고 보기 힘들다. 했던 말과 질문을 몇 장이 지나도록 진전은 드물고, 심하게는 네 번 이상 반복하는 것이 화가 날 정도였다. 어떤 꼬리물기 생각은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것도 모자라 넘기기까지 시도한다.

 

서평을 쓰면서 스스로 이렇게 놀라기는 처음이다. 태어나 이렇게 혹평을 하는 것도 처음이다. 작가가 이 책을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딸에게 받친다는 구절이 무색할 정도로, 심한 충격을 받은 나는 그 글귀를 읽으면서도 미안하다기보단 왜? 라는 생각이 앞선다. 도대체 저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썼을까 하는 꼬리물기를 이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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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굴 독깨비 (책콩 어린이) 3
아이반 사우스올 지음, 손영욱 그림, 유슬기 옮김 / 책과콩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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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인생은 상대평가의 연속 아니던가. '황금'이라는 물질 앞에선 인간은 '생명'이라는 존재를 우선으로 여길수 있을까. 인간은 얼마만큼 도덕적일 수 있을까. 하나의 선택으로 풍요로운 인생은 펼쳐질 수 있다. 기회가 눈 앞에 다가왔고, 그 것을 잡을 것인가, 놓을 것인가만을 고민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선택이 옳은 걸까? 내안에 잠재된 선과악을 끄집어 내기 위해선 '여우굴 사건'만한 것이 없다고 본다. 적어도 이 사건을 읽는 독자가 적절한 감정이입이 된다면, 선택의 기로에서 반드시 갈등하게 될 것이다. 적절한 결말이 있는 이야기라 할 지라도 말이다.

 

이 사건은 실제 이야기라고 한다. 책에서 등장하는 지명은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며, 여우굴을 경험한 실화를 토대로 어린이들을 고려해 알맞게 재구성한 작품이다. 저자가 다수의 작품을 출간하며, 어린이 전문, 그것도 재난 이야기를 실감나게 묘사했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개인적으로 다른 작품에서 만난 적이 있기에 반가움도 더했다.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여우굴에 빠져 구조되기까지의 이야기라고 보면 문안하겠다. 주인공 '켄'이 외삼촌 댁으로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다. 가는 길에 지갑을 잃어버려서 기차에서 내릴 때는 곤혹을 치르면서 도착한 그 곳에서 사촌 '휴'와 야영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낯설은 사촌동생들과 외삼촌, 외숙모와 함께한 1박 2일은 켄에겐 너무 긴 시간이었다. 시끄럽고 부산스러운 그 집 분위기에 놀러 온 것을 후회하기에 이르렀는데 안타깝게도 켄에게는 더 큰 재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켄과 휴는 우연히 여우굴을 발견하지만 불행하게도 켄만이 깊고 어두운 여우굴에 빠지고 만다. 구덩이가 여우굴인지, 중국인이 파놓은 갱도인지, 그 구덩이를 둘러싼 외삼촌 식구들은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기 바빴지만, 그들의 수다스런 의견은 켄에게 중요치 않았다. 사실,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남의 이목을 피해 켄을 구하려는 외삼촌의 의지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켄은 말하지 말았어야 할 사실을 입밖에 뱉어 버린다. 그가 발견한 금의 존재를 말이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좋지만, 그 순간엔 걸상매듭을 한 밧줄에 몸을 맡기는 게 가장 현명한 처사였을 것이다. 상황이 바뀌고, 이젠 그의 목숨보단 황금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 돌변한 외삼촌과 외숙모는 어떤 그 무엇보다 냉정하고 무서운 존재로 변하게 된다.

 

여우굴 그 아래에 황금이든 뭐든지간에 굉장한 것이 존재할진 몰라도, 사람 목숨만 할까. 눈으로 직접 금을 보고 눈이 뒤집힐 수 있겠단 생각은 하지만, 순식간에 변한 인간을 마주 보기가 참으로 불편했다. 이런 것이 진정 인간의 내면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켄이 되어, 홀로 구덩이 안에 빠져서 구조만을 기다린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상상만 해도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여우굴에 빠져 구출되기까지의 이야기. 어떤 상황이 전개되며, 어떤 이유로 무사히 구출될 수 있는지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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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희망이다
제프 헨더슨 지음, 나선숙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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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프라 윈프리 쇼>,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화 확정!

이것이 <나는 희망이다>의 주인공 제프의 흔적이다. 이 책 한 권은 그의 자서전이기에 앞서, 뒷골목 흑인들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었다. 보통 자서전. 그것도 인생 성공기를 쓴다고 하면 지금까지 자신의 '오른 손'이 한 일만 추려서 부각시키고, 그것들을 낱낱이 적는 기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는 단박에 내 선입견을 깨주었다. 적어도 이 책만큼은 가식이란 단어는 취급불가인양, 너무나 솔직하다. 예를 들자면, 친할아버지의 도벽을 이어받아 지갑을 훔친 이야기가 그렇다. 가문의 치부라 여기고 언급조차 꺼릴 주제가 아니던가. 그런데 왠걸. 이건 그 중에서도 약과에 속한다. 그럼 이건 어떤가? 훔친 신형 자전거를 끌고 가다가 경찰에게 들킨 일이 있다. 소식이 어머니에게까지 전해지자 제프는 거짓으로 뉘우친 척 둘러댄다. 사실, 마음 속에선 앞으로 다신 '흑인이 갖으면 의심받을 만한 물건'은 위험하니 안전한 것으로 훔쳐야지, 라고 자기합리화한 교훈을 되새기고 있었다.

 

이쯤 되면 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킨거냐며 성난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올 만하다. 그런데 밥벌이 하기도 힘든 흑인 어머니의 밑에서 자랐고, 아버지의 새어머니가 받아들이지 않아 출가를 하게 되는 삶을 살게 되었는데, 오로지 그만을 탓할 수 있을까?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하지만 여락한 환경에 처했다고 해서 모두가 불량 청소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저자인 제프 핸더슨이 긴 시간동안 탈선의 길을 걸었지만, 훗날 자신의 꿈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온 케이스 중 하나라고 본다. 그러니까 그는 정말 희망이다. 적어도 과거의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극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청소년기의 무분별한 성관계, 불량 청소년을 롤 모델로 삼으며 동경하던 마음, 장성할 때 까지 마약 거래를 하며 배를 채운 세월은 돌이킬 수 없다. 모두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과거의 흔적들이다. 하지만 그런 과거가 있기에 그는 희망으로 존재할 수 있다. 다른 어떤 성공 신화보다 따끈따끈하지 않은가. 가난과 범죄에 찌들은 LA 뒷골목의 똘마니가 라스베이거스 최고의 호텔 벨라지오에 진출한 것이다. 전과가 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총주방장의 위치에서 건재하는 거물이 되었다. 또한, 2001년 최고의 요리사 상까지 수상한 이력이 있다.

 

나는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당당하게 그를 욕하지 못했다. 고백하건데, 초반에는 욕지기가 올라올 뻔 했었다. 뭐 이런 X가 다 있나.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라고 인상을 쓰면서 말이다. 하지만 점점 책장의 무게가 왼쪽으로 쏠리면서 내 생각의 무게도 바뀌어 갔다. 양파 껍질의 핵심부분까지 까서 들여다 본다면 기분이 이럴까? 그는 욕을 먹고 싶어서 알몸이 된 것이 아니다. 가식을 벗고 진심으로 진실을 전하고 싶어서.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은... 그러니까 같은 상황을 겪지 않은 사람의 말은 듣지 않는 그들을 위해서. 수십 년 전의 또 다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미치자 오히려 처음에 욱하던 내 마음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현재의 지위는 어두운 과거가 있기에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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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랄라
안니 M.G. 슈미트 지음, 아카보시 료에이 그림, 위정훈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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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랄라 위플랄라 숲 속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춥지요. 설탕, 커피, 겨자에 후추. 위플랄라 위플랄라 숲 속."

 

'커다란 새를 타고 창공을 날고 있네. 발 아래로 보이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집들도 엄청 작아보이겠다.' 표지를 보고 기대감에 부픈 내 환상은 책을 펼치기도 전에 환상 세계 저편으로 들어서고 있는 듯 했다. 일러스트를 한층 편안하게 느껴지도록 배려한 크림빛(또는 상아색) 컬러는 긍정적인 느낌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시작부터 나는 그렇게 색다른 모험담을 기대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큰 새는 큰 새가 아니었다. 단지, 줄어든 브롬 가족을 태운 평범한 비둘기였다. 그러니까 넬라 델라, 요하네스, 브롬 선생이 사람의 크기일 땐 할 수 없었던 모험을 검지만하게 작아졌단 얘기다. 아무렴 어떤가. 이야기는 속도감있게 바로 시작되어 흥미를 잃을 틈이 없었다. 그들이 작아진 건 모두 '위플랄라'라는 요술을 부리는 난쟁이 때문이었다. 녀석은 신기하게도 사람을 돌로 만들기도 하고 원래대로 돌리기도 하는 요술을 부렸다. 하지만 언제나 요술이 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또래 위플랄라 친구들에게 무시를 당했고, 사람들이 사는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였다. 이 곳에서도 항상 일에 쫓기는 브롬 선생에게 환영받지 못했지만 말이다. 

 

위플랄라는 도깨비도, 요정도 아닌 '위플랄라'라는 새로운 종족으로 한 명의 위플랄라는 작품의 세계관 전체를 앞도한다. 듣도 보도 못한 이 녀석은 독특한 캐릭터였다. 삐죽삐죽 고슴도치같이 삐친 머리에 생쥐만큼 작은 신장. 거기다 금새 밝아졌다 눈물을 흘렸다 하며 조울 증세(?)도 살짝 보이기도 하고. 멀쩡한 사람과 고양이 등을 돌로 바꿔버리고도 큰 잘못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기가 온 세계에선 '재미있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어 버리던 '마이다스의 손'도 딸을 황금으로 만들고는 후회했다는데. 비록 연고가 없다고는 하나 사람을 돌로 만들고 그런 생각을 안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녀석은 좀처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다행히 위플랄라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사람의 문화를 몰랐고, 동화이기에 유하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다. '위플랄라의 요술실력이 일취월장해지면 모두 원래대로 돌아 올수 있다. 돌로 생활하는 동안은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라는 설정이 있으니 말이다.

 

쉽사리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또 다른 사건이 벌어졌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브롬 가족들이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돈을 내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그들 모두를 자신만한 크기로 만들어 버린다. 작아진 그들은 인간이 두려워져 여기 저기 도피처를 찾아 떠나게 된다. 역경 속에서 만난 사람은 소중해지는 법. 그들은 핑크 선생과 로티와 친구가 된다.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잡으려 한다면 그만한 공포가 또 없을 것이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상황. 그러니까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또 다른 희망이 피어나고,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동화를 통해서지만 사람의 본능, 이기심 또한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대체 이 녀석은 언제 능수능란하게 요술을 쓸 수 있을까. 격려하며 조금은 답답해하며 본 기억이 난다. 훈훈한 해피엔딩을 예상하면서도 위기의 순간엔 나도 모르게 움츠려 드는 걸 발견하곤 했다. 언제까지고 접시를 든 석상인 채로 벼락스타가 된 시인을 보면 잘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참 아리송한 순간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 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역경을 딛고 이겨내면 반드시 보상이 따라온다. 위험한 순간일 수록 가족들은 더 뭉쳐야 산다. 

 

개인적으로는 참 유사한 상황전개로 궁금증을 자아내던 영화가 한 편 떠오른다. 영화 <요술쟁이 아나벨>. 위플라라는 신참 수호요정(남자)와 같고, 블롬 가족은 아나벨 가족과 같은 처지라고 볼 수 있다. 정말 생각할수록 비슷한 에피소드를 가득 담은 것 같다. 하지만 그 영화와 비교해서, 무엇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위플랄라>는 일러스트에서 개성이 넘친다. 서양인의 특징인 오뚝한 코에 다소 시크한 표정의 눈매가 아주 인상적이다. 지금껏 어디서도 이런 일러스트는 못 본 것 같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다른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개성이 있어서 새로운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일조한 것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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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전 - 제3회 이화글빛문학상 수상작
정시은 지음 / 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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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을 어지럽히고 사람을 해한 죄로 청운계라는 아녀자 집단을 잡아들여 참수형에 처한다. 소설 <연화전>은 세상의 질서에 맞지 않아 왕명으로 수거하여 모조리 소각한다.

영조 42년(1767년)

 

제3회 이화글빛문학상 수상작답게 <연화전>은 뚜렷한 문제를 다루며, 그러나 지루하지 않게 마지막까지 탄탄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작가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여성의 억눌린 성적 욕망, 정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소재에 가장 잘 맞는 대표적 인물은 당연히 과부였다. 주인공 연화도 과부요, 풍속을 어지럽혔다던 청운계 여인들도 대외적으론 수절하는 과부였다. 과부하면, 또는 아녀자하면 역시 은장도는 뗄래야 뗄수 없는 필수 아이템이 아닌가 싶다. 주인공 연화도 역시 은장도를 가슴에 품고 몇번인가 죽음을 택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 쉽게 죽을 수는 없는 운명인가보다. 자의에 의해, 타의에 의해 은장도를 목에 대었지만 매번 누군가에 의해 무산되곤 했다.

 

혼담이 오갔다는 이유로 이미 죽은 몸과 혼례를 치른 그녀, 연화. 시댁에선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기는지 꺼림칙하게 여기는지 많은 여인네들이 살고 있지만, 그녀에게 한 마디 말도 섞지 않은채 울타리 밖으로 밀어낸다. 상황을 받아들인 그녀 역시 혼령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았지만 아무렴 사람인지라 소설이라도 읽고 살아야 숨통이 트이는가 보다. 계집 종이 구해서 반분대 아래 숨겨둔 책을 달밤에 몰래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데 결혼 10주년이 되는 날. 시어머니 손에 등떠밀려 남편의 위패를 모셨다는 서황사로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한바탕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다. 그녀의 자결로 열녀상을 받아 연균을 출세시키겠다는 최 씨 가문의 일념은 그녀를 사지로 몰았지만, 연균이 그것을 막기 위해 고군부투 했다. 모두들 출세에 관심 없는 한량이라 욕하지만, 유일하게 그녀에게 귀뜸해주고 서황사로 쫓아와 자결을 막은 것도 연균이었다.

 

연화의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서황사 사건이었다. 우연한 만남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으나 그곳에서 심간지당을 만나고, 새 삶을 살게 되는 연화. 하지만 조금 아쉽다. 이야기가 좀 더 전개된다면 그녀의 팜므파탈과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연화는 그냥 연화였다. 다만 손에 붓이 쥐어지니 그 마음을 종이에 담은 것이리라. 청운계에서 행하는 소동 등을 봤을 때 분명 여성에게 금기된 소설, 납치, 강간 등으로 부도덕하고 부정한 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나 어찌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작가는 두 가지 이야기를 교체해가며 진행시키지만 플롯도 정교하고 이질감없이 매끄러웠다. 분명 주인공은 연화지만, 모든 과부를 대표하는 하나의 이야기였다. 결혼 전 남편이 살해당했지만 그녀는 죽은이와 혼례를 치르게 된다. 지금 같으면 이런 섬뜩한 상황이 이해되지 않겠지만, 당시엔 가능하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혼담이 오갔다는 이유만으로 부정탔다며 다른 집에서 혼인을 원치 않는다는 몹쓸 미신 말이다.

 

사실, 소설이 결말로 치닫을수록 앞으로 전개될 것이 뻔하겠다 싶었지만 결말은 좀 의외였다.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플롯때문인지 아니면 예상을 뒤엎으려는 작가의 발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론 살짝 여운이 남는다. 맨 처음엔 그녀의 인생이 가장 기구하지 않나 싶었지만. 모임의 주축인 심간지당은 물론이고, 심복인 춘삼과 주막을 운영하는 퇴기,매월. 그리고 그외 청운계 여인들까지 한스런 세월을 다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연화전에서 주목할 것은 플롯이었다. 신기하게도 '살해된 연화의 남편'이야기는 처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신선하게 이어진다. 혼인한 그녀의 이야기에서 시작되고, 다른이의 인생에서 실마리가 풀리며 그 이야기가 끝이 난다. 연화의 남편에 대한 미스터리는 다른 이의 인생을 엿보는 식으로 하나씩 벗겨나간다. 그것이 연화전의 결말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신문에서 발췌한 '우리 역사 다시 보기'를 실어 이야기의 힘을 얻는 등 작가의 노력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앞에 당당히 남녀는 평등하다 말할 수 있을까? 시대가 바뀌며 여성이 주도하는 회사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남성우월주의는 만연하다. 여성도 당당하게 성적 욕망을 표출할 권리가 있다! 라고 말하는 듯한 작품, <연화전>. 이 소설은 자칫 <음란서생>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을 떠오르게도 하지만, 그만큼 트랜디한 욕구도 충족시켜주며 그 나름의 매력을 발산한다. 처녀작이라하면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문체로 단숨에 읽혀지는 책, <연화전>은 색다른 시도가 빛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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