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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전 - 제3회 이화글빛문학상 수상작
정시은 지음 / 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8년 9월
평점 :
풍속을 어지럽히고 사람을 해한 죄로 청운계라는 아녀자 집단을 잡아들여 참수형에 처한다. 소설 <연화전>은 세상의 질서에 맞지 않아 왕명으로 수거하여 모조리 소각한다.
영조 42년(1767년)
제3회 이화글빛문학상 수상작답게 <연화전>은 뚜렷한 문제를 다루며, 그러나 지루하지 않게 마지막까지 탄탄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작가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여성의 억눌린 성적 욕망, 정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소재에 가장 잘 맞는 대표적 인물은 당연히 과부였다. 주인공 연화도 과부요, 풍속을 어지럽혔다던 청운계 여인들도 대외적으론 수절하는 과부였다. 과부하면, 또는 아녀자하면 역시 은장도는 뗄래야 뗄수 없는 필수 아이템이 아닌가 싶다. 주인공 연화도 역시 은장도를 가슴에 품고 몇번인가 죽음을 택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 쉽게 죽을 수는 없는 운명인가보다. 자의에 의해, 타의에 의해 은장도를 목에 대었지만 매번 누군가에 의해 무산되곤 했다.
혼담이 오갔다는 이유로 이미 죽은 몸과 혼례를 치른 그녀, 연화. 시댁에선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기는지 꺼림칙하게 여기는지 많은 여인네들이 살고 있지만, 그녀에게 한 마디 말도 섞지 않은채 울타리 밖으로 밀어낸다. 상황을 받아들인 그녀 역시 혼령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았지만 아무렴 사람인지라 소설이라도 읽고 살아야 숨통이 트이는가 보다. 계집 종이 구해서 반분대 아래 숨겨둔 책을 달밤에 몰래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데 결혼 10주년이 되는 날. 시어머니 손에 등떠밀려 남편의 위패를 모셨다는 서황사로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한바탕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다. 그녀의 자결로 열녀상을 받아 연균을 출세시키겠다는 최 씨 가문의 일념은 그녀를 사지로 몰았지만, 연균이 그것을 막기 위해 고군부투 했다. 모두들 출세에 관심 없는 한량이라 욕하지만, 유일하게 그녀에게 귀뜸해주고 서황사로 쫓아와 자결을 막은 것도 연균이었다.
연화의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서황사 사건이었다. 우연한 만남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으나 그곳에서 심간지당을 만나고, 새 삶을 살게 되는 연화. 하지만 조금 아쉽다. 이야기가 좀 더 전개된다면 그녀의 팜므파탈과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연화는 그냥 연화였다. 다만 손에 붓이 쥐어지니 그 마음을 종이에 담은 것이리라. 청운계에서 행하는 소동 등을 봤을 때 분명 여성에게 금기된 소설, 납치, 강간 등으로 부도덕하고 부정한 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나 어찌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작가는 두 가지 이야기를 교체해가며 진행시키지만 플롯도 정교하고 이질감없이 매끄러웠다. 분명 주인공은 연화지만, 모든 과부를 대표하는 하나의 이야기였다. 결혼 전 남편이 살해당했지만 그녀는 죽은이와 혼례를 치르게 된다. 지금 같으면 이런 섬뜩한 상황이 이해되지 않겠지만, 당시엔 가능하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혼담이 오갔다는 이유만으로 부정탔다며 다른 집에서 혼인을 원치 않는다는 몹쓸 미신 말이다.
사실, 소설이 결말로 치닫을수록 앞으로 전개될 것이 뻔하겠다 싶었지만 결말은 좀 의외였다.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플롯때문인지 아니면 예상을 뒤엎으려는 작가의 발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론 살짝 여운이 남는다. 맨 처음엔 그녀의 인생이 가장 기구하지 않나 싶었지만. 모임의 주축인 심간지당은 물론이고, 심복인 춘삼과 주막을 운영하는 퇴기,매월. 그리고 그외 청운계 여인들까지 한스런 세월을 다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연화전에서 주목할 것은 플롯이었다. 신기하게도 '살해된 연화의 남편'이야기는 처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신선하게 이어진다. 혼인한 그녀의 이야기에서 시작되고, 다른이의 인생에서 실마리가 풀리며 그 이야기가 끝이 난다. 연화의 남편에 대한 미스터리는 다른 이의 인생을 엿보는 식으로 하나씩 벗겨나간다. 그것이 연화전의 결말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신문에서 발췌한 '우리 역사 다시 보기'를 실어 이야기의 힘을 얻는 등 작가의 노력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앞에 당당히 남녀는 평등하다 말할 수 있을까? 시대가 바뀌며 여성이 주도하는 회사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남성우월주의는 만연하다. 여성도 당당하게 성적 욕망을 표출할 권리가 있다! 라고 말하는 듯한 작품, <연화전>. 이 소설은 자칫 <음란서생>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을 떠오르게도 하지만, 그만큼 트랜디한 욕구도 충족시켜주며 그 나름의 매력을 발산한다. 처녀작이라하면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문체로 단숨에 읽혀지는 책, <연화전>은 색다른 시도가 빛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