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농부란다 - 농부 ㅣ 일과 사람 9
이윤엽 글.그림 / 사계절 / 2012년 7월
평점 :
초등 교과 과정에서 다루는 일과 직업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담긴 지식책이자 우리 동네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서로 돕고,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중국집 주방장, 우편집배원, 소방관 등 우리 이웃들의 다양한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어린이 인문교양 그림책. 사계절 '일과사람' 은 몇가지 직업에 편중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직업의 공간과 도구, 일하는 과정을 꼼꼼히 관찰하며 자칫 지나치기 쉬운 값진 노력과 희생이 어떤 감동과 보람으로 다가오는지 세상을 움직이는 숨은 능력자, 우리 이웃들의 다양한 직업을 소개해요.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묵묵히 그 일을 해내는 농부의 땀과 노력이 잘 묻어나는 <나는 농부란다>는 목판화 특유의 투박하면서도 강렬함이 인상적이죠. 작가는 처음으로 목판화 나무에 새긴 그림또한 농부였다고. 우연히 길을 가다가도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를 보면 흙을 밟고 곡식과 채소에 둘러싸여 땀 흘려 일하는 농부가 멋있어 보였다고 하네요. 저역시 집에서 기르는 작은 화분의 식물 하나도 잎은 금방 시들고 뿌리는 말라 죽곤 하는데 그 넓은 땅에서 씨 뿌리고 곧게 자란 온갖 곡식이며 채소가 그리도 풍성한 열매를 맺는지 감탄이 절로 나오죠. 만약 우리의 풍성한 밥상에 농부란 직업이 없다면 매일같이 사람들은 힘들게 열매를 따고 사냥하러 다녀야 했을지 모르니까요.
그도 그럴것이 아주아주 옛날에는 사람들이 들에 산에 저절로 자란 풀이나 열매를 찾아서 따먹지 직접 농사를 지을 생각을 못했을 땐,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농사짓는 법을 터득했을 터. 영어나 수학처럼 학원이 있는 게 아니니깐 바로 부모의 어깨너머로 배운 경험에 스스로 깨우친 지혜가 더해져 제대로 된 농사꾼이 되었겠죠. 그러니 매일 우리 밥상에 오르는 싱싱한 먹을거리는 어느 것하나 거저 얻어진 게 아니에요. 대부분 땅에서 나고 부지런한 농부의 손에 모두 길러지는 것들이기에 농부가 콩을 심으면 콩이 나오고, 벼를 심으면 벼가 나오고, 고추를 심으면 고추가 나오듯 땅은 농부의 마음을 잘 읽어서 모든 걸 받아주고 모든 걸 키워내요. 그렇다고 고추 심고, 가지 심고, 벼 심은 땅에 아무거나 막 심었다간 혼나겠죠. 특히 순하디 순한 멍멍이는 그렇다고 새끼 줄줄이 낳는 거 아니니깐 제발 참아주세요. 그럼 지금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농사일을 가르쳐 주실 농부 아저씨를 만나러 가 볼까요.
먼저 모름지기 농부라면 땅을 알고, 때를 잘 알아야 하는 법. 땅이라고 다 같은 땅이 절대 아니래요. 물을 가두어 벼를 기를 수 있는 땅이 논, 물이 잘 빠져서 배추, 딸기, 옥수수, 고추를 심을 수 있는 땅이 밭. 어떤 땅에 뭘 심어야 하는 지부터 차근차근 일러줘요. 심지어 밭에 따라서도 참깨가 잘 되는 밭이 따로 있고 콩이 잘 자라는 밭이 따로 있고, 어느 밭은 땅 힘이 좋아서 참깨, 콩보다 고구마를 심어야 맛있는 고구마를 수확할 수 있다는 것도 훤히 알아요. 그런 다음에 헛간에서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고 고장 난 경운기도 고치면서 농사 준비를 하는데요. 꽁꽁 얼었던 땅이 녹아 쑥이며 냉이가 얼굴을 속 내밀면, 드디어 논밭에 거름을 뿌리고 농사를 시작하죠. 이때 씨앗을 심기 전 풀과 똥, 음식 찌꺼기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모으고 썩혀서 만든 거름을 밭에 뿌리면 나중에 거름을 먹고 곡식들이 무럭무럭 자라 다시 그걸 우리가 먹고 남은 음식 찌꺼기와 똥이 거름이 되는 순환의 연속.
도시에서는 마트에 포장된 하얀 쌀이 맨들맨들 윤기나는 그 모습 그대로 사과나 바나나 같이 쌀나무에서 열리는 가 싶어도 그야말로 꽃피고 새 우는 오월이 되면 농가에선 그동안 씨앗을 틔워서 고이고이 키운 고추, 옥수수, 가지, 호박 모종을 밭에다 옮겨 심는 일손이 분주해요. 그중 쌀의 씨앗인 볍씨를 틔워 모를 기르는 일이 가장 복잡하고 힘들어서 이웃 농부들과 같이 하는 편. 역시나 건강한 모를 심어야 튼실한 벼가 되고, 무럭무럭 잘 자란 벼에서 알찬 쌀이 여물기때문에 잘자란 모를 논에 옮기는 날은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첫 걸음인 셈. 겨우내 비어 있던 논에 어린모를 콕콕 심어 놓으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고. 그리고 옛날에는 누런 황소가 논을 같고, 마을 사람들이 줄 맞추어 모를 심었지만 그에 비해 요즘에는 이앙기가 있어서 혼자서도 금방 갈고 금방 심는데요. 그렇지만 자식 다루듯 애지중지 키우는 농부의 마음은 한결 같을 거라 생각들어요.
향긋한 아까시나무 꽃 내음이 물씬, 온 마을이 연둣빛으로 물드는 유월엔 논밭에 벼와 콩, 고추, 옥수수, 고구마가 무럭무럭 자랄 시기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때에 일을 마쳐야 해요. 주로 새벽같이 논에 나가 무너진 논두렁도 손보고, 밭에 가서 고추나 가지 곁순도 따고, 김매기도 서둘러 끝네요. 아니면 잎 뒤에 다닥다닥 붙은 진딧물도 생기고 잎을 갉아먹는 작은 벌레가 농작물을 망쳐놔요. 그러니 매일매일 날마다 농부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먹음직스런 방울토마토의 새빨간 토마토도, 자주빛 가지도 다닥다닥 콩도 주렁주렁 고추도 열리지 못하겠죠. 그레서 외갓집이 시골이면 아이들 여름방학 체험 학습장소로 이만한 곳이 없어요. 요즘은 친환경, 유기농, 이동거리 계산 등의 인식변화로 내집부터 옥상, 베란다를 활용한 나만의 텃밭 가꾸기도 아이들에게는 자연과 가까이 마주하는 교육이잖아요. 자고로 부지런히 논두렁 밭두렁을 오간 농부의 딴딴한 장딴지에서, 날마다 풀을 뽑느라 호미처럼 휘어진 허리에서 풍성한 먹을거리가 나오는 건 틀림없네요.
그런데 자세히 알고보면 농부가 혼자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에요. 바로 자연에서 얻은 햇빛과 물과 바람과 흙,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물들이 함께 농사를 짓는 거예요. 요즘처럼 장마철에는 비가 너무 오랫동안 내려도 비로 인한 병충해를 입거나 집채한 한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 강한 비바람에 벼와 고추, 토마토와 옥수수가 한순간에 물에 잠기고 흙더미에 파묻혀 줄기는 부러지고 어린 열매가 다 떨어져 버리면 농부 아저씨의 마음도 같이 무너져 내려요. 무엇보다 강한 비바람에 힘없이 쓰러진 벼와 고춧대를 힘겹게 일으켜 세우면서도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절대 보살피고 가꾼 것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농부의 정신력이 대단하게 느껴져요. 반대로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아도 걱정,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도 기온과 강수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농작물은 큰 피해를 입기 마련. 농부는 날마다 일기예보를 보고 미리미리 큰비나 바람을 대비해야 하죠.
마침내 논에는 벼 이삭이 나오고, 밭에는 호박이 큼지막하게 자라고 모든 것이 알차게 여무는 시기가 되면 농부아저씨 볕 좋은 앞마당에 빨갛게 잘 익은 고추를 따서 널어요. 농부는 고추를 기르는 것뿐만 아니라 잘 익은 고추를 말리고 빻아서 고춧가루를 만드는 것도 농부의 일이에요. 그리고 들깨, 콩도 털어 햇볕에 말기고 겨우내 두고두고 먹을 호박이며 가지며 토란대도 모두 말려서 보관해요. 물론 그 전에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인 벼의 낟알을 수확하는 가을걷이가 중요하죠. 처음에 모를 심을 때와 같이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낫으로 그 많은 벼를 다 베고 탈곡기에 벼를 넣어 낟알을 털었지만 지금은 콤바인으로 한번에 일꾼 몇 사람의 몫을 해내는 지 몰라요. 비록 농사일을 돕는 기술의 발달로 예전에 비해 수월하게 농사일을 해도 주름진 농부의 굵은 밭고랑사이 활짝 핀 웃음꽃에서 벼를 거두는 기쁨이 그때나 변한 게 없어요.
이제 남은 일도 힘들게 농사한 것들을 가족과 이웃과 나누는 것. 일단 추석때 멀리서 오는 식두들한테 나누어 줄 참기름도 짜놓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게 호박, 가지 같은 채소도 일일이 썰어 말려 놓고요. 도리깨나 막대로 두드려서 탁탁 알맹이들이 속쏙 빠져나오게 콩깍지에 든 콩이나 깨도 깨끗이 손질해 놓은 걸 곳간에 차곡차곡 쌓아두면 이보다 마음이 흐뭇할 수가 없어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곡식 한 알, 한 알이 얼마나 예쁜지 커다란 포대 자루마다 인천 큰아들네로, 서울 막내 아들네로 바리바리 퍼주는 부모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여요. 이 모든 게 좋은 거름으로 기른 곡식들이라 맛도 좋고 몸에도 좋아 시장이나 가게에 내놓으면 너도나도 사 갈테지만 그보다 자식들 먹을 거 먼저 챙기는 자식사랑도 넘쳐나요.
거기에 열매 가운데 가장 튼튼한 놈을 골라 내년 봄에 씨앗으로 쓸 걸 남겨 두고요. 깊은 밤 반달곰이 겨울잠 자는 추운 겨울에는 한동안 쓰지 않을 호미며 경운기도 깨끗이 정리. 이른 봄에 쓸 거름도 쉬엄쉬엄 마련해두면 그동안 애쓴 땅이 하얀 눈 덮고 쉴 시간에 농부 아저씨도 따뜻한 아랫목에서 두 다리 쭉 뻗고 좀 편히 쉬어요. 그래도 내년 농사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 되니깐 문제없어요. 해마다 봄, 여름, 가을,겨울 계절이 되풀이되듯이 농부가 하는 일도 계속 되풀이되니깐 더 궁금한 농사일에 대해서는 '농사일 더 알아보기' 코너를 참고해요. 농부한테 손이나 마찬가지인 여러 농기구부터 본문 내용을 보충 설명하는 알찬 정보가 가득해요. 끝으로 앞서 농부 아저씨가 정확히 일할 때를 알고 열심히 일을 하듯 여름방학을 맞은 우리 친구들도 열심히 공부할 때, 조용히 책을 읽을 때, 신나게 뛰어 놀 때를 잘 알아서 알차고 보람있는 방학을 보내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