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길들이기 - 번역편
안정효 / 현암사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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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낯선언어를 낯익은 언어로로 바꾸는 일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낯선언어에 중심을 두는냐 아니면 낯익은 언어에 중심을 두느냐의 중심설정에 관한 가치판단이다. 다시말해 번역을 할 때, 원어의 문화적 맥락과 원저자의 의도를 원형 그대로 살리느냐 아니면 이질적인 언어를 읽는 수용자의 의식에 부합하는 언어로의 적극적 변환을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저자는 전자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나 또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입장이다.

실상 번역의 가장 큰 문제는 오역으로 인한 수용자의 낯설음이지 낯선언어 자체가 수용자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리엔탈리즘의 폐해는 바로 이런 왜곡된 문헌주의의 결과이다. 동양에대한 그들의 낯설음을 억지로 신비화 시키는 주체 중심의 낭만주의는 근대적 사고방식에서 기인하는 문명의 해악이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칸트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인식에 접근하기위해 최대한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세계화와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의 물결이 세찬 이 시점에서 번역의 문제는 제대로 한번 논의를 벌여야 할 과제이다. 안정효는 150여권에 이르는 그의 번역 작업을 토대로하여 생생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구체적 번역의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번역에 관한 변변한 이론적 축적이 없는 불모적 상황에 이러한 책이 나왔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다. 물론 80년대에 김용옥이 한문해석학을 내세우고 고전 번역의 방향을 제시하여 큰 논의의 물꼬를 텄지만 후속작없이 없어 흐지부지 되고 말았었다. 1996년에 안정효의 이책과 더불어 두권으로 나온 '오역천하'도 필독을 해볼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번역에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번역이 학문적 제도적으로 뒷받침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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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어떻게 쓸 것인가 - 유니베르타스문고 3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이론과실천 / 199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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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이 저작은 기존의 논문작성법 책들과는 달리 기초적인 학문의 태도와 방법론을 다루고 있다. 물론 논문 작성에 관한 전반적인 이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모두 7장으로 돼 있는데, 첫장에서 그는 자기능력에 맞는 주제의 선택을 역설한다. 이 책은 졸업논문을 쓰는 햇병아리 학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고독한 천재'인냥 나르시즘에 빠져있는 초심자들에게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능력에 맞는 주제의 선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졸업 논문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첫논문은 앞으로의 학문활동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할 수 있겠다. 따라서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고 미래의 학문적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항상 위험하게 생각하는 '문헌주의'의 파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엄밀한 문헌이용법과 인용법을 포함하는 제규칙들을 확실하게 익힐 필요가 있다. 그의 학자로서의 경험을 토대로하여, 수많은 문헌 자료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책은 문헌 정보학의 입문서로 봐도 될것 같다.

에코는 학문의 영역에서 활동하기 위한 전제로서 이러한 규칙들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꼭 학문을 하지 않더라도 연구라는 활동은 우리의 삶에 있어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물론 삶에대해 별다른 애정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어거지 졸업논문들이 생산되고 있고, 4년동안의 학업을 무로 돌려 놓는 수많은 행태들을 반성하기 위해서라도 이책의 일독을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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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론입문 창비신서 74
테리 이글턴 지음, 김명환, 장남수, 정남영 옮김 / 창비 / 198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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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턴은 현대문학 이론의 전반적인 개설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있으면서도 단순한 소개를 넘어, 비판적 수용이라는 미덕을 확보하고 있다.

딱딱하고 개념적인 이론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이 저서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그리고 이 명쾌함은 분명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이글턴이 가진 유물론적인 구체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워렌과 웰렉이 같이쓴 '문학의 이론'과는 여러모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들이 말한 문학이라는 명제앞에 놓여진 본질적이라는 관형어는 이글턴에게는 자유주의 휴머니즘의 반동적 이데올로기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리비스나 신비평에대한 이글턴의 신랄한 비판은 이런 추정의 정당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는 프레드릭 제임슨이 '언어의 감옥'에서 심도있게 설명한 바를 다시한번 환기시켜 준다. 다시말해 이글턴은 소쉬르 언어학의 탈역사적 한계안에 갇혀진 이론으로서의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의 모순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에서 이글턴은 문학 이론의 죽음을 고하면서 이론적 다원주의를 공박한다.(251쪽) 내가 보기에도 다원주의는 배짱없는 절충주의로밖에는 여겨지질 않는다. 뒤이어 이글턴은 자신의 비평적 대안으로 '담화이론'과 '레토닉(수사학)'을 제안한다. 전통적 비평으로서의 이런 방법들은 텍스트를 설며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아마 이 말은 텍스트에 가해진 이데올로기의 작용을 밝혀내는 것을 말하는 것인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말의 의미를 곡해하지 않아도 좋다. 이글턴의 다음말에 그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치적 믿음이나 행동과 관계된 가치관에 근거해서 문학텍스트를 대하는 '정치적 비평'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더한 비평이든 이러한 일은 이미 하고 있다. 비평 중에 '비정치적'인 형태가 있다는 생각은 문학을 정치적 용도로 사용하도록 효과적으로 조장하는 신화에 불과할 뿐이다.(257쪽)

나는 이 단순한 말에 상당한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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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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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여생(남은 인생)'이라고 하는데, '우리앞의 생'이라는 제목이 더 맘에 든다.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을 보고 혹시나 나에게도 무슨 희망같은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하고 기대를 했었다. 그 기대는 잔잔한 감동으로 나를 흔들어 놓았다. 그 흔들림은 꽤 오래갈 듯 싶다.

모하메드라는 아랍이름을 가진 꼬마주인공은 모모로 불려진다. 창녀의 아들로 태어난 모모는 자기가 몇살인지 모른체(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듯) 살아간다. 그리고 자기가 아랍인이라는데 대해서도 별다른 관심이 없다.모모는 외부의 어떤 규정도 못마땅해한다. 10 - 12살 가량의(나중에 14살임이 밝혀진다.) 어린 모모가 바라보는 세상은 추악하기조차 하다. 아이의 시선은 인종과 계층의 분별지를 만들어 내는 세상을 냉소하고 있는 것이다. 어리다는 것이 세상을 해석하는데 있어 하등의 장애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모모의 가장 큰 사랑리라고 할 수 있는 로자부인, 빅토르 위고를 좋아하고 모모에게 지혜의 말들을 들려주는 하밀 할아버지, 모모를 잘 이해해주는 카츠의사, 뚜쟁이로 성공한 아메데씨 그리고 모모의 우산 인형 아르튀르. 이모든 사람들은 거친 삶의 조건 속에서 나름대로의 인간애를 가지면서 살아간다. 모모는 이들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 생의 의미를 찾게 된다. 모모의 어린애다운 생각들은 귀엽고 천진하지만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현실에대한 평가는 지독하게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다. 이런 냉소는 삶의 폐허와 그 속을 살아야하는 인간의 짙은 외로움이 느껴지게 한다.

책의 서두와 끝부분에서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사람이 사랑없이도 살 수 있는지 묻는다. 처음에 할아버지는 살 수 있다라고 대답해서 모모를 울게한다. 그러나 로자부인의 애절한 죽음을 체험하고 난뒤의 모모는 그 스스로 그 물음의 해답을 찾은듯하다. 문제는 사랑없이도 살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것 보다는 사랑없이 살아야 하느냐의 선택이 아닐까?

날이갈수록 열렬한 사랑의 온기가 식어가는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할려고 노력도 하지 않게 되어버린것 같다. 그저 제마음대로 피어있는 꽃을 보고 내맘대로 아름답다고 말해버리듯이 나의 인연들을 그저 그렇게 내 삶의 태두리안에 편안하게 내팽겨쳐논것은 아닐까?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 그것은 사랑할 수 있는 힘과 사랑받을 수 있는 기쁨이 아닐까? 사랑이 타령이되고 사랑의 정체가 끝간데를 알 수없이 모호해진 요즘 나는 사랑이라는 말을 함부로 떠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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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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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의 동경대학교 법학부생의 당돌한 작품인 '일식'은 작품 외적인 에피소드로 항간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이 소설을 읽기전에 히라노라는 사람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의 소설읽기를 방해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때문에 별 달갑지 않게 흘려버리곤 했다. 작가의 전기적 사실이 어떤 편견을 만들어 내고, 그 편견이 작품의 의미를 산출하는데 꽤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식'은 15세기 무렵의 중세에 신성을 이성으로 변증하려하는 한 젊은 수도사의 체험을 통해 신성/이성, 남/여, 신/인간 등의 분별지를 하나로 아우러는 인식의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다.

'일식'은 태양과 달이 하나로 일치를 이루는 자연적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일식'의 의미는 화쟁과 화엄이다. 페스트로인한 페폐한 민중의 삶과 르네상스라는 문예부흥의 물결은 중세의 신학적 전통에 수많은 회의와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그 의문을 풀기위한 수많은 양심있는 지성들은 마녀사냥의 불길속에서 죽어갔으리라. 배타적 유일주의가 만들어낸 이단처형의 비합리적 모순들은 더이상 인간 이성의 힘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단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안드류그로스를 자기 자신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는 주인공의 여정은 신성과 이성이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를 흡수하는 화엄적 일치를 체험하는 과정인 것이다. 곧 '일식'은 그체험의 신비하고 상징적인 표현 인것이다.

이 책의 뒤에는 작가와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그는 생각만큼 건방지지도 않고 생가만큼 걸출한 위인도 아니었다. 9명의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들은 히라노의 문체에 주의하면서 의고체문장의 현학미와 중세에대한 섬세한 디테일 묘사에 경탄을 보냈다. 물론 이 경탄의 이유가 몇몇에게는 삐딱한 시선을 유도하기도 햇지만...

뛰어난 문체임에 틀리없다, 구상과 자료준비의 치열함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짜임의 유기성과 사상의 심도도 깊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성의 승리로 쓰여졌지 결코 그가 말한대로 신성과의 일치를 통한 화엄적 찬작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디오니소스적이냐 아폴론적이냐 했을때 이 글은 어떤 전통을 따르는지 여러분이 평가해보라. 이것이 어떤 한계에 처해 있음을 금방 알아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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