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원제는 '여생(남은 인생)'이라고 하는데, '우리앞의 생'이라는 제목이 더 맘에 든다.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을 보고 혹시나 나에게도 무슨 희망같은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하고 기대를 했었다. 그 기대는 잔잔한 감동으로 나를 흔들어 놓았다. 그 흔들림은 꽤 오래갈 듯 싶다.

모하메드라는 아랍이름을 가진 꼬마주인공은 모모로 불려진다. 창녀의 아들로 태어난 모모는 자기가 몇살인지 모른체(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듯) 살아간다. 그리고 자기가 아랍인이라는데 대해서도 별다른 관심이 없다.모모는 외부의 어떤 규정도 못마땅해한다. 10 - 12살 가량의(나중에 14살임이 밝혀진다.) 어린 모모가 바라보는 세상은 추악하기조차 하다. 아이의 시선은 인종과 계층의 분별지를 만들어 내는 세상을 냉소하고 있는 것이다. 어리다는 것이 세상을 해석하는데 있어 하등의 장애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모모의 가장 큰 사랑리라고 할 수 있는 로자부인, 빅토르 위고를 좋아하고 모모에게 지혜의 말들을 들려주는 하밀 할아버지, 모모를 잘 이해해주는 카츠의사, 뚜쟁이로 성공한 아메데씨 그리고 모모의 우산 인형 아르튀르. 이모든 사람들은 거친 삶의 조건 속에서 나름대로의 인간애를 가지면서 살아간다. 모모는 이들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 생의 의미를 찾게 된다. 모모의 어린애다운 생각들은 귀엽고 천진하지만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현실에대한 평가는 지독하게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다. 이런 냉소는 삶의 폐허와 그 속을 살아야하는 인간의 짙은 외로움이 느껴지게 한다.

책의 서두와 끝부분에서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사람이 사랑없이도 살 수 있는지 묻는다. 처음에 할아버지는 살 수 있다라고 대답해서 모모를 울게한다. 그러나 로자부인의 애절한 죽음을 체험하고 난뒤의 모모는 그 스스로 그 물음의 해답을 찾은듯하다. 문제는 사랑없이도 살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것 보다는 사랑없이 살아야 하느냐의 선택이 아닐까?

날이갈수록 열렬한 사랑의 온기가 식어가는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할려고 노력도 하지 않게 되어버린것 같다. 그저 제마음대로 피어있는 꽃을 보고 내맘대로 아름답다고 말해버리듯이 나의 인연들을 그저 그렇게 내 삶의 태두리안에 편안하게 내팽겨쳐논것은 아닐까?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 그것은 사랑할 수 있는 힘과 사랑받을 수 있는 기쁨이 아닐까? 사랑이 타령이되고 사랑의 정체가 끝간데를 알 수없이 모호해진 요즘 나는 사랑이라는 말을 함부로 떠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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