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6살의 동경대학교 법학부생의 당돌한 작품인 '일식'은 작품 외적인 에피소드로 항간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이 소설을 읽기전에 히라노라는 사람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의 소설읽기를 방해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때문에 별 달갑지 않게 흘려버리곤 했다. 작가의 전기적 사실이 어떤 편견을 만들어 내고, 그 편견이 작품의 의미를 산출하는데 꽤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식'은 15세기 무렵의 중세에 신성을 이성으로 변증하려하는 한 젊은 수도사의 체험을 통해 신성/이성, 남/여, 신/인간 등의 분별지를 하나로 아우러는 인식의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다.

'일식'은 태양과 달이 하나로 일치를 이루는 자연적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일식'의 의미는 화쟁과 화엄이다. 페스트로인한 페폐한 민중의 삶과 르네상스라는 문예부흥의 물결은 중세의 신학적 전통에 수많은 회의와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그 의문을 풀기위한 수많은 양심있는 지성들은 마녀사냥의 불길속에서 죽어갔으리라. 배타적 유일주의가 만들어낸 이단처형의 비합리적 모순들은 더이상 인간 이성의 힘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단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안드류그로스를 자기 자신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는 주인공의 여정은 신성과 이성이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를 흡수하는 화엄적 일치를 체험하는 과정인 것이다. 곧 '일식'은 그체험의 신비하고 상징적인 표현 인것이다.

이 책의 뒤에는 작가와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그는 생각만큼 건방지지도 않고 생가만큼 걸출한 위인도 아니었다. 9명의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들은 히라노의 문체에 주의하면서 의고체문장의 현학미와 중세에대한 섬세한 디테일 묘사에 경탄을 보냈다. 물론 이 경탄의 이유가 몇몇에게는 삐딱한 시선을 유도하기도 햇지만...

뛰어난 문체임에 틀리없다, 구상과 자료준비의 치열함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짜임의 유기성과 사상의 심도도 깊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성의 승리로 쓰여졌지 결코 그가 말한대로 신성과의 일치를 통한 화엄적 찬작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디오니소스적이냐 아폴론적이냐 했을때 이 글은 어떤 전통을 따르는지 여러분이 평가해보라. 이것이 어떤 한계에 처해 있음을 금방 알아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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