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3세계의 일원으로, 분단된 처지의 우리나라가 처한 학문적 위기와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대안은 원효에서 최한기에 이르는 한국 학문의 전통을 계승하고, 이를 바탕으로해서 제1세계와 2세계의 학문적 성과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3세계와의 연대를 모색해 새로운 세계 학문의 보편적인 이론을 우리 학문에서 이끌어내고자 하고 있고, 실재로 그의 연구 작업을 통해 그러한 주장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책은 학문이라는 문자 그대로 배우고 묻는 처지의 모든 사람이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라 생각된다. 긍정을 하든 비판을 하든 학문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왜 해야하며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토론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학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자리에서 외국 이론을 수입해 학생들에게 파는 교수들을 유통업 종사자라 하면서 학자라고 할 수 있는 교수들은 기존이론을 학생들에게 받아쓰기 시키는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 진정한 학문 연구를 통해 새로운 이치를 파고들어 그 성과를 학생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학문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이론만 수입하는 교수와 왜 학교를 다니는지 모르는 학생과 이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행정 실무자들이 우리의 학문을 위기로 몰고 있다는 진단은 상식적이면서도 강도높은 비판의 목소리가 함축되어 있는것 같다. 우리의 학문은 없고 외국이론만 난무하는 우리 나라 대학은 종주국의 사상과 이론으로 직업인을 길러내는 전형적인 식민지 국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탈식민지주의(포스트 콜로니얼리즘)라는 이론이 들어와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한 각성과 학문의 서구 종속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사회적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목소리들은 또 하나의 소음을 만드는데 불과하다. 1980년대에 김용옥이 내 놓은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는 우리 국학계를 비롯해 학문하는 사람들의 안이한 학문자세에 일침을 가했고 사회적인 논의를 촉발 시켰다. 우리 지성계의 병폐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서 우리 학문의 풍부한 유산들을 제시하는 것은 탈식민지 학문을 구축하는 바람직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김용옥과 조동일의 공통점은 우리 학문의 전통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다는 것이다. 둘 다 기일원론의 최한기를 높이 평가하고 김용옥은 그의 철학적 지향점을 '기철학'을 완성하는데 두고 있다. 그리고 조동일은 이원론적 주기론과 일원론적 주기론으로 이상소설과 리얼리즘 소설을 설명하는것처럼 철학과 문학의 양상을 하나로 아우르고자 한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은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그 의미의 실천은 상식적이지 못한것 같다. 우리 학문의 깊고 넓은 전통이 바탕이 되지 않는 외국 학문의 수용은 몰상식한 문화 이식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상황의 타개를 우리는 무엇을 할것인가? 뒤엉켜있던 나의 생각들을 정리하게 해 준 조동일 교수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이 책은 본격적인 민요 연구서는 아니지만 전국에 산재해 있는 민요 각편들을 수집해 유형화된 분류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요의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각 제목 밑에 두 세편의 민요를 소개하고 그민요에 대한 비평을 달아 놓았다. 민요 학도가 아닌 대중을 상대로 한 책이니 만큼 민요 각편의 구체적인 출처와 채록 배경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임동권은 한국 민요 연구에 인생을 바쳤다. '한국 민요집'1~5와 '한국 민요사'를 비롯해 민요 연구에 관한 몇몇 주목받을 저서들을 내 놓았다. 특히 '한국 민요집'1~5는 채록배경이 제시돼있지 않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 양의 방대함으로 인해 아직도 많이 인용되고 있다. 물론, 이제는 80년대 일기 시작한 민중 문화에 대한 대학가의 관심으로 수많은 민요가 채록돼 있어, 민요 연구가 그전의 상황 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나는 민요 연구가는 아니지만 '한국'의 현대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존재의 밑바탕이 되고 있는 전통문화와 사상의 이해를 전제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한국 문학의 출발은 전통의 재발견과 외래 문화를 갈등의 조화를 통해 받아들이는 것이다. 겉으로 봤을때 대결적인 '아와 비아'(신채호)라는 요소를 상극상생의 논리로해서 우리 민족 문학을 바로세워야 할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라는 주체가 동양이라는 객체를 표상하는 학문적 전통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 되었다. 사이드는 방대한 자료의 분석을 통해 이슬람을 중심으로한 동양이 서양에 의해 정의 되어져야 할 부재로서 기능해온 연대기를 주의깊게 보여준다. 그의 어조는 절제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 학자로서(더군다나 그의 조국에서 정치활동까지 한 인물이지만) 그는 결코 분노에 찬 감정으로 서양의 불온한 태도를 비난하거나 하지 않는다. 책의 끝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오리엔탈리즘에대한 극복이 옥시덴탈리즘(서양주의)이 될 수없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또한 이 책이 저술 될 수 있었던 것은 편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학문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시이드가 행한 분석은 이슬람이라는 지역에대한 서구의 재구성과 왜곡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이 작업은 충분히 그 보편성을 인정 받을 수 있을것 같다. 영국과 프랑스 중심의 오리엔탈리즘이 최근에는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이 제국주의의 논리로 병합되어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제국주의를 강화하는 수단이자 그에 앞서 제국의 시각을 갖도록 조장한것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서구의 동양에대한 사유방식인 것이다. 이는 서구의 지배를 경험했던 제3세계 국가 모두에게 해당되는 귀납적 논리로 환원될 수 있다. 우리가 즐기고 있는 문화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음모의 실체는 무엇인가? 우리 학문의 지형학이 얼마나 심각한 종속적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아는가? 출세주의와 결부된 영어와 인터넷에대한 터무니없는 기대들은 신자유주의로의 세계단일화라는 무서운 결과가 가져올 위험성을 알고 있기는한 것인가? 얼마전에 방한했던 프랑스의 진보적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렇게 말한다. 신자유주의에 의한 미국 중심으로의 세계 재편은 문화의 자율성을 위협하고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불러 올것이라고...
조동일 교수의 학문적 성향은 주체적이고 전통계승적이며 세계적입니다. 이 책 또한 그런 학구적 노력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먼저 첫 논문인 '한국 문학 전통론의 문제점'은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말 수 있게해주는 글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구분을(종래의 단절적인 문학사 인식의 태도) 비판하고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시각을 요청합니다. 이런 역사 인식은 표면적 의식과 이면적 의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도출된 것입니다. 표면적 의식은 문학사의 내재화되었던 문학적 역량이 역사의 표면으로 등장하여 해당 사회의 문학으로 자리잡은 것을 말하고, 이면적 의식은 이전의 문학적 전통이 단절됨이 없이 문학사의 이면에 무의식적으로 면면히 전해지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다시 역사의 표면으로 올라올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은 촘스키의 언어학 이론에서 얻어낸 듯 합니다. 문학사의 전통을 이러한 원리로 설명한 뒤 '민요의 실상파악을 위한 현지조사'라는 논문에서는 저자가 영남 대학에서 학문 생활을 할때 경북지방의 민요를 조사하고 이를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은 사회 계층에따른 텍스트의 차이 분석(사회적 상황과 각편의 다양성)입니다. 물론 이런 이론이 지금에와서 진부한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직접 현지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도출된 개념이라는 데서 그 가치를 인정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민요 형식을 통해 본 시가사'에서는 한국 문학의 서정장르류인 향가, 여요, 시조, 가사의 기원을 밝히고 있는 장입니다. 여기서는 기존의 외래기원설을 비판하고 우리 민요의 유형을 분류하면서, 그 유형이 이면적 의식으로 흘러오다가 역사의 어느 시점에 어느 한 유형이 시가화되어 향가, 여요 등으로 표면화 된것이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주체적인 참신함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사실 이런 견해는 학문의 엄밀성에서 나온 학설이라고 보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조동일 교수의 가장 큰 학문적 딜레마라고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텍스트를 텍스트 내재적인 원리로 분석하는 것 이 아니라 연구자의 편견(주체성이데올로기 또는 민중 이데올로기 등)을 토대로 가설을 정하고 이를 뒷받침할 논거를 기계적으로 조합한다는 혐의는 그의 어느 글에서나 느껴지는것입니다. 뒤에 이어지는 '시조의 율격과 변형 규칙'과 '현대시에 나타난 전통적 율격의 계승'도 저자의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이론으로서 고전문학의 전통을 현대문학에서도 확인할 수있다는 가설을 입증하고 있는 저술 들입니다.
이책은 1948년에 초판이 나온 신비평 이론의 대표적인 저서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959년에 처음 번역 되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비교문학과 러시아 형식주의에대한 저자의 탄탄한 이론적 바탕을 통해 문학이 어떠한 양상으로 존재하며 어떻게 기능하는지 그리고 그 가치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들은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만큼 명쾌한것은 아니었다. 분명한것은 문학 연구상의 비본질적인 태도와 문학의 본질적인 성격을 구별하면서 전자에대한 비판과 후자에대한 옹호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연구상의 비본질적인 태도란 문학의 가치 해명을 작가의 전기, 심리학과 사회학 등의 문학외적인 요소들로 시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반해 문학의 본질적 성격이란 문학의 내적인 양식들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양자를 단순한 흑백논리로 나누는 경솔함을 보이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엘리어트나 랜섬 그리고 테잇과 같은 신비평의 선구자들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또한 문학에 있어 비본질적인 요소라고 하는 사회학적, 심리학적인 영역들이 문학의 본질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중도적 태도가 논지의 명쾌함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 역작의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다. 어쨌던 문학연구의 양대 조류의 하나인 주관적 흐름(낭만주의)과 객관적 흐름(고전주의)을 아우르면서 신비평의 이론적 체계를 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높이 평가해야할 부분이다. 뿐만아니라 비교문학적 견지에서 구비문학의 문학성을 포용함으로써 기록문학의 오만과 같은 서구 이분법의 해악에서는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이 저작은 이따금 뒤에 구조주의에서 발견되어지는 선진적 견해를 내놓을때도 있다. 그러나 문학에대한 이러한 태도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있는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과연 도대체 왜 신비평이 몰락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대안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하는 고민같은것이 있기나 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