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문의 길
조동일 / 지식산업사 / 199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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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제3세계의 일원으로, 분단된 처지의 우리나라가 처한 학문적 위기와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대안은 원효에서 최한기에 이르는 한국 학문의 전통을 계승하고, 이를 바탕으로해서 제1세계와 2세계의 학문적 성과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3세계와의 연대를 모색해 새로운 세계 학문의 보편적인 이론을 우리 학문에서 이끌어내고자 하고 있고, 실재로 그의 연구 작업을 통해 그러한 주장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책은 학문이라는 문자 그대로 배우고 묻는 처지의 모든 사람이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라 생각된다. 긍정을 하든 비판을 하든 학문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왜 해야하며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토론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학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자리에서 외국 이론을 수입해 학생들에게 파는 교수들을 유통업 종사자라 하면서 학자라고 할 수 있는 교수들은 기존이론을 학생들에게 받아쓰기 시키는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 진정한 학문 연구를 통해 새로운 이치를 파고들어 그 성과를 학생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학문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이론만 수입하는 교수와 왜 학교를 다니는지 모르는 학생과 이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행정 실무자들이 우리의 학문을 위기로 몰고 있다는 진단은 상식적이면서도 강도높은 비판의 목소리가 함축되어 있는것 같다. 우리의 학문은 없고 외국이론만 난무하는 우리 나라 대학은 종주국의 사상과 이론으로 직업인을 길러내는 전형적인 식민지 국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탈식민지주의(포스트 콜로니얼리즘)라는 이론이 들어와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한 각성과 학문의 서구 종속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사회적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목소리들은 또 하나의 소음을 만드는데 불과하다.

1980년대에 김용옥이 내 놓은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는 우리 국학계를 비롯해 학문하는 사람들의 안이한 학문자세에 일침을 가했고 사회적인 논의를 촉발 시켰다. 우리 지성계의 병폐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서 우리 학문의 풍부한 유산들을 제시하는 것은 탈식민지 학문을 구축하는 바람직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김용옥과 조동일의 공통점은 우리 학문의 전통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다는 것이다. 둘 다 기일원론의 최한기를 높이 평가하고 김용옥은 그의 철학적 지향점을 '기철학'을 완성하는데 두고 있다. 그리고 조동일은 이원론적 주기론과 일원론적 주기론으로 이상소설과 리얼리즘 소설을 설명하는것처럼 철학과 문학의 양상을 하나로 아우르고자 한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은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그 의미의 실천은 상식적이지 못한것 같다. 우리 학문의 깊고 넓은 전통이 바탕이 되지 않는 외국 학문의 수용은 몰상식한 문화 이식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상황의 타개를 우리는 무엇을 할것인가? 뒤엉켜있던 나의 생각들을 정리하게 해 준 조동일 교수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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