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이후 당대총서 7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강문구 옮김 / 당대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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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계 체제론'이라는 거대담론을 통해 오늘날의 세계정세를 분석하고 있는 월러스틴의 여러 글들을 묶은 것이다.

세계제제의 분석 대상은 역사적 자본주의다. 이 역사적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바로 '자유주의'인데, 이 책에서 자유주의는 희망의 사기극이 들통난 절망의 이념으로 그려지고 있다. 자유주의의 사기극은 1968년의 신좌파의 혁명으로 쇠퇴하기 시작했고 1989년의 동구권의 몰락으로 치명적인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 월러스틴의 생각이다.

세계체제는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의 계서제를 이루고 있는데 잉여가치는 주변부에서 중심부 쪽으로 이동한다. '이동'이라 했지만 거칠게 말하면 그것은 '착취'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 무렵에 시작되어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공고화된 세계체제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복지주의를 통해 그 안정성을 유지하게 되는데 이는 그 이전 서구 내부의 위험한 세력인 '노동자 계급'을 길들이기 위한 보통선거와 복지의 증진을 제계적인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다. 즉, 정치적 권익의 증대와 잉여 가치의 일부에 대한 분배는 '위험한 세력'들을 기만할 수 있는 훌륭한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월러스틴은 여기다 '국가정체성'이란 요소를 추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연관해 억압체로서의 민족주의를 생각해 볼 수 있게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레닌주의와 함께 세계체제의 안정성 유지에 기여하는데, 이는 미소의 대립이라는 냉전체제가 사실은 이 두 나라의 야합에 의해 유지되는 기만적 체제라는 월러스틴의 지적이다. 이런 논리는 백낙청의 분단체제의 논리적 근거가 되고 있다는데서 우리의 역사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보수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의 자유주의적 연합의 논리에 대한 분석이라든가 반체제운동의 체제친화성 그리고 세계체제의 사회 경제적 토대를 약화시킬 요인으로 1. 탈농촌화(저임노동력의 고갈)2. 중간계층에 대한 압박(고용주와 국가에 대한 요구의 확대로 인한 비용증가)3. 생태학적 위기4. 남과 북의 인구통계상의 격차 심화(남에서 북으로의 이주민의 증가)를 들고 있는 것 등은 주목해야 할 대목들이다.

월러스틴이 분석하고 있는 세계체제는 곧 근대성에 대한 분석인바, 그는 근대성을 기술의 근대성과 해방의 근대성을 구분하면서 잘못된 근대성을 극복하고 진정한 '해방의 근대성'을 성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월러스틴은 매 글의 끝 부분마다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야 할 우리의 책임을 이야기한다. 그는 섣부른 비관도 낙관도 생각치 말고 오로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할 것을 촉구한다.

월러스틴의 분석이 옳으냐 그러냐를 따지기 전에 세계적인 시각으로 국제 정세를 이만큼 설명할 수 있다는데 경의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월러스틴의 글은 우리들에게 실천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공허한 거대담론이라고 그냥 비판하기만 해서는 곤란 할 것이다.

조동일 선생은 월러스틴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 그의 논리를 전개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을 말하고 있는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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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유하 지음 / 문학동네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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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시대의 분위기를 감지하는 예민한 촉수를 갖고 있다. 작가의 위대함에 대한 찬사는 달리 말하면 그 촉수의 예민함에 대한 찬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하는 이 시대의 분위기를 제대로 감지할 줄 아는 훌륭한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포착하는 이 시대의 분위기란 '대중문화'의 비판적 독해를 통해 드러난다. <무림일기>,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 동에 가야 한다>, <세운상가 키드의 생애>는 유하의 예리한 촉수의 감각을 잘 보여준 시집들이다.

유하의 문학적 감각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는 세운상가 키드의 모던한 감각이고 다른 하나는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의 체험에 대한 전근대적인 감각이다. 그러나 이 두 갈래의 다른 방향은 '추억'이라는 공통의 영역에서 합치된다. 그것들은 모두 추억속의 기억들로써 그의 글쓰기는 그 추억을 기억으로 불러내는 일에 다름아니다. 유하의 첫번째 산문집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도 역시 그 추억불러내기의 한 표정이다. 시로써 해온 일들을 산문으로 풀어내고 있을 따름이다.

이 산문집에는 이소룡 세대로써 자라온 세운상가 키드의 성장이력기가 담겨있다. 그를 키운 건 팔할이 대중 문화임에 틀림없는데, 영화와 텔레비젼, 라디오와 만화책 등의 미디어들이 바로 그를 키운 애비인 것이다. 김현은 일찌기 <무림일기>의 발문에서 유하를 두고 '키취 중독자'라 불렀거니와 이 책의 발문에서 권성우 또한 그를 일러 대중문화에 대한 매혹과 반성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자라고 말하고 있다. 유하를 읽어 내는 코드로써 대중문화, 즉 키취 취향을 읽어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앞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유하는 키취 취향의 저편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양면의 실체를 동시에 볼 줄 알아야 유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산문집에서는 강수지와 신해철, 최진실 등의 연예인들에 대한 분석과 영화와 대중 음악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이 담겨 있다. 그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한면, 실제의 삶을 기만하는 대중문화의 가상적 삶에 대한 성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분석 말고도 할아버지와 처사랑에 대한 추억, 시인 진이정과 허수경에 대한 추억들이 어울려 이 산문집은 그의 문학적 사유의 두 줄기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제 그는 영화 감독으로 나섰다.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라는 첫 영화는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는 작품이었다. 나는 그의 예리한 촉수가 영화를 통해서도 제대로 전달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유하는 장정일, 함민복 등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포스트 모던한 문화 실태에 대한 가장 탁월한 분석가이자 비판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하가 더이상 재즈의 유혹에 놀아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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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점에 갇힌 문화비평
김성기 / 민음사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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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책이다. 저자의 탄탄한 이론적 토대와 지식인으로서의 치열한 자기 인식이 돋보이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문화 비평서인만큼 어렵지 않으면서도,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을 무게있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아니, '매력'이라고 말해버리기엔 이 책의 전언들이 너무 치열하다.

저자의 논리는 그의 전작인 <포스트모더니즘과 비판사회과학>이라는 책 제목처럼 흔히 불화의 관계로 알려진 두 담론, 즉 비판이론과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현대'라는 공간은 이전의 정치, 경제의 과잉에서부터 문화의 과잉으로 그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대중문화'이다. 대중문화는 '억압'과 '해방'의 이중성을 띠고 있는데, 여기서 대중문화의 '억압'적 기능을 극복하고 '해방'적 기능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비판적인 문화이론의 모색이 불가피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매체가 메시지가 되고, 가상이 리얼리티를 초과해 버리는 대중문화의 기만성을 통박하고 문화의 참다운 즐김을 위한 논리를 모색한다. 이 때 보드리야르, 푸코, 리오타르 등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들과 알튀세르를 비롯한 비판사회학적인 후기마르크스주의는 오늘날의 문화 현상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해방적으로 이끌 수 있는 실천의 논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중문화에서는 매체와 미디어 테크놀로지 그리고 그 핵심에 있는 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면서, 특히 마크 포스터의 '정보 양식론'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책은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여러 담론들을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저자의 탁월하고 섬세한 안목으로 우리 지성사를 반성하고 새로운 방향 전환을 주장하기도 한다. 특히 [불란서제 담론의 그늘]은 오늘날의 젊은 인문학도들이 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그리고 수사적으로 수용하고 있는데 대한 예리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포스트 모던'을 위한 변명]과 [박노해라는 상징의 의미]도 오늘날의 우리 지식인의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이 책의 모든 글들은 어느 하나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흥미롭고 또 탁월하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저자는 우리 나라에서 몇 안되는 탁월한 지성을 소유한 지식인이며, 탄탄한 실력과 건전한 신념을 함께 갖고 있는 치열한 지식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많은 자극을 받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책이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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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코프스키 - 사랑과 죽음의 시인
앤 차터스, 새무얼 차터스 지음, 신동란 옮김 / 까치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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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있었다면, 그리하여 저 위대한 <신곡>이 탄생할 수 있었다면, 마야코프스키에게는 릴리가 있었고 그로인해 그의 위대한 시편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문학을 열정의 산물이라 한다면 그 열정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것이 '사랑'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책은 러시아의 미래파 시인중의 한 사람인 마야코프스키의 전기이다. 이 글은 마야코프스키의 문학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단서로서 그의 영원한 연인 릴리와의 관계를 주목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릴리가 없는 마야코프스키의 문학이란 김빠진 콜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혁명초기의 러시아 문단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데, 러시아 형식주의자인 쉬클로프스키가 당국의 탄압으로 망명하게 된다던가 <닥터 지바고>의 작가 파스테르나크와의 교분, 에세닌과의 경쟁관계, 루나 찰스키와의 관계 등을 엿보는 것도 이 책의 또다른 재미라 할 수 있다. 라프와의 적대적인 관계와 스탈린 치하에서의 미래파 시인으로서의 마야코프스키의 고뇌는 러시아 문학의 한 면모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라 하겠다. 이 시기의 러시아 문학은 우리 근대문학에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당대 러시아 문단의 분위기를 느껴본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것이었다.

마야코프스키의 삶은 충동적인 힘들의 긴장으로 충만해 있는 것 같다. 사랑과 질투, 열정과 분노, 죽음에의 충동과 삶에의 충동, 이런 것들 속에서 나오는 시란 마찬가지로 충동적이고 격렬한 것일 수밖에 없다. 나는 마야코프스키를 읽으면서 임화라는 인물을 떠올럈다. 미래파 전위주의 시에서 출발했으며 영화에 몰두했고 당과의 불화를 겪었던 임화의 삶이란 분명 마야코프스키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 그 둘의 영향관계에 대해서 아는 바 없지만 한 번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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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시대의 문학
김성곤 지음 / 민음사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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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인가 딱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여러 실속없는 논쟁들이 들끓고 오해와 오독이 판을 치고 있다. 젊은 학인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표피적인 매혹에 빠져 레토릭의 차원에서 놀고들 있다. 이 책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저자는 포스트모던한 현상의 부정적인 면을 포스트모더니즘의 본질로 착각하지 말것을 당부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이분법적 한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바탕으로 출발한 사조이지 결코 갈데까지 간 모더니즘의 연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오늘날의 신세대 문학이 가진 탈정치성을 나무라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배면에 깔고 있는 무거운 가벼움이란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런데 우리 작가들은 감각적이고 세련된 문체, 정치적 고민없는 개인의 일상적 가벼움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 포스트모더니즘의 오해 가운데 하나로 패스티쉬(혼성모방) 같은 개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는 논자들의 용어이지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건강한 논리가 못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학계나 창작인들이 그것을 잘못 알고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으니 무작정 베껴도 좋다는 식의 왜곡된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장하고 있다고 공박한다. 저자는 이런 사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외국(주로 일본)의 이론을 반성없이 수용할 것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작품들을 많이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그래야 진정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 인문학도들은 '지식'과 '정보'를 구별하지 못하고 정보에 탐닉함으로써 무게있는 건강한 지식을 쌓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대목도 귀담에 들어야 할 부분이다.

또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뉴미디어시대임을 강조한다. 메체가 메시지라는 맥루헌의 고전적 명제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문학 환경의 변화와 글쓰기의 새로운 방향 모색을 내세우고 있다. 이제는 고급문학과 대중문학의 벽을 허물고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고급한 대중문학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중심의 주변에 대한 억압을 성찰하고 정전으로 굳어진 텍스트와 절대 진리에 회의한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는 문학생태학, 포스트털로니얼리즘, 페미니즘, 포스트모던 역사소설 등 새로운 문학의 논리로 이어진다.

나 또한 이 시대의 젊은 학인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불명확한 태도를 고수해 왔다. 그러나 김성기의 작업과 이 책의 저자인 김성곤 교수의 작업들을 지켜보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해방적 기능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역시 이론이 문제가 아니라 이론을 사용하는 건전한 정신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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