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유하 지음 / 문학동네 / 199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시대의 분위기를 감지하는 예민한 촉수를 갖고 있다. 작가의 위대함에 대한 찬사는 달리 말하면 그 촉수의 예민함에 대한 찬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하는 이 시대의 분위기를 제대로 감지할 줄 아는 훌륭한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포착하는 이 시대의 분위기란 '대중문화'의 비판적 독해를 통해 드러난다. <무림일기>,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 동에 가야 한다>, <세운상가 키드의 생애>는 유하의 예리한 촉수의 감각을 잘 보여준 시집들이다.

유하의 문학적 감각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는 세운상가 키드의 모던한 감각이고 다른 하나는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의 체험에 대한 전근대적인 감각이다. 그러나 이 두 갈래의 다른 방향은 '추억'이라는 공통의 영역에서 합치된다. 그것들은 모두 추억속의 기억들로써 그의 글쓰기는 그 추억을 기억으로 불러내는 일에 다름아니다. 유하의 첫번째 산문집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도 역시 그 추억불러내기의 한 표정이다. 시로써 해온 일들을 산문으로 풀어내고 있을 따름이다.

이 산문집에는 이소룡 세대로써 자라온 세운상가 키드의 성장이력기가 담겨있다. 그를 키운 건 팔할이 대중 문화임에 틀림없는데, 영화와 텔레비젼, 라디오와 만화책 등의 미디어들이 바로 그를 키운 애비인 것이다. 김현은 일찌기 <무림일기>의 발문에서 유하를 두고 '키취 중독자'라 불렀거니와 이 책의 발문에서 권성우 또한 그를 일러 대중문화에 대한 매혹과 반성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자라고 말하고 있다. 유하를 읽어 내는 코드로써 대중문화, 즉 키취 취향을 읽어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앞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유하는 키취 취향의 저편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양면의 실체를 동시에 볼 줄 알아야 유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산문집에서는 강수지와 신해철, 최진실 등의 연예인들에 대한 분석과 영화와 대중 음악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이 담겨 있다. 그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한면, 실제의 삶을 기만하는 대중문화의 가상적 삶에 대한 성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분석 말고도 할아버지와 처사랑에 대한 추억, 시인 진이정과 허수경에 대한 추억들이 어울려 이 산문집은 그의 문학적 사유의 두 줄기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제 그는 영화 감독으로 나섰다.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라는 첫 영화는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는 작품이었다. 나는 그의 예리한 촉수가 영화를 통해서도 제대로 전달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유하는 장정일, 함민복 등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포스트 모던한 문화 실태에 대한 가장 탁월한 분석가이자 비판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하가 더이상 재즈의 유혹에 놀아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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