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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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많이 멕여야 돼….”

『고령화 가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소설에서 나오는 얘기는 아니고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오는 대사인데 정확한 워딩은 아니다. 북한군이었나, 누가 동막골의 평화로움에 대한 비결을 물었더니 촌장님이 하신 말씀. 자고로 등 따시고 배 부르면 불만도 사그러드는 법이라 했다. 요순시대에는 백성들이 왕이 누군지도 몰랐다고 하지 않는가. 동막골도 그러하였다. 그러면 이 대사가 『고령화 가족』 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천명관의 소설은 세 작품을 읽었다. 『고령화 가족』, 『고래』 그리고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이다. 단편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예전에 펼친 기억은 있지만 제대로 읽지 않아 내용은 잘 모른다. 고작 세 편을 읽었지만 공통점을 꼽아 보자면 포토제닉한 장면 구성과 달변적 서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와 관련된 것이 등장한다. 『고래』는 영화에 대한 순정을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내어 구비문학처럼 느껴지는 경지에 오른 미증유의 작품이라 생각한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이소룡 키드, 잊혀진 작품과 배우들에 대한 회고로 느껴진다. 그리고 『고령화 가족』에는 충무로의 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마흔 여덟. 명작일 수 있었을 영화의 실패로 아내도 친구도 사업도 잃은, 술로 날을 지새는 오인모.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엄마네 집으로 들어간다. 낡은 연립주택에 와 보니 구성원들이 가관이다. 전과 5범의 오한모, 두 번의 이혼 경력에 화류계에 종사하는 오미연과 그녀의 딸 비행청소년 민경. 그리고 칠순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는 엄마. 먹물 꽤나 먹은 오인모는 투덜거리지만 금세 이 분위기에 적응한다. 어차피 콩가루였던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각자 저 잘난 맛에 살던 인간들인데 서로 정이라도 있으랴. 남보다 못하던 관계가 피가 엉겨 붙듯 조금씩 끈끈해지는 것이 『고령화 가족』의 주된 이야기이다.

그래서 뭘 많이 멕이냐면, 고기를 멕인다. 조카와 피자 가지고 내 것이니 네 것이니 난리를 치고, 눈을 세모꼴로 뜨던 중년의 자식들은 삼겹살 굽는 냄새에 한 자리에 모인다. 젓가락을 다퉈가며 먹어대는 한심한 인생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길은 그저 자애롭다. 자식들을 거둬 먹이는 엄마는 활기를 되찾고 자식들의 피부에는 기름이 돈다. 그렇게 잘 먹으니 마음도 너그러워지는지, 날 선 말투들은 둥글어지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들이 단번에 사그러들진 않지만 어떤 계기가 된 것만은 확실하다. 저 밖에 모르던 인물들이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별한 소설은 아니다. 작가 특유의 마초적인 문장들은 예나 지금이나 적응이 안 되고 책을 덮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서 놓지 못할만큼 재미있다. 대중적 인기를 겨냥해 쓴 것인지, 다른 작품에 비해서도 뻔한 줄거리인데도 말이다. 얼마 전, 천명관의 새 소설이 나왔는데 제목부터가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끌리지는 않지만 이 작품 또한 흡입력있게 풀어냈으리라 짐작한다. 아마 읽을 일이 없겠지 싶다가도 작정하고 썼나 보다, 궁금해지는 것을 보면 천명관이라는 소설가의 독특한 매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아무튼 뭘 많이 멕여야 불만이 없다. 그렇다고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어기란 소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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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2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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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23: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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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23: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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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2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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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23: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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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2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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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2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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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6 0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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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6 0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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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6 0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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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6 0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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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6 1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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