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 소년은 노동을 위해 차출되어 버스를 타고 출근 중이었다. 경찰이 버스를 세우고 유대인인 승객들을 내리게 한다.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차이츠 강제수용소를 거쳐 1년만에 부다페스트로 돌아온 소년. 외모도 눈빛도 변해버렸고, 별과 번호를 떼고 입은 죄수복은 해어진데다 여러 날의 노숙을 견딘 상태이다. 그렇게 전차를 탔더니 찻삯을 요구받는다. 그 모습을 보고 일어나 부끄럽지 않냐고 일갈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신문사에서 일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기자는 소년의 표값을 대신 치른 뒤 대화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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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강제수용소에서 오는 거니? 네. 어디서? 부헨발트요. 부다페스트에 돌아오니 어떤 느낌이 들어? 증오심요. …그럴 수 있지, 누구를 증오하는지 알아. 모든 사람요. …끔찍한 일을 많이 겪어야 했니? 끔찍한 일일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굶주리고 구타를 당했겠지. 그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게 어떻게 당연하니? 강제수용소에서는 당연한데요.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강제수용소가 당연한 게 아니잖아!


네가 경험한 일을 말해줄 수 있을까? 세상을 향해 말이야. 뭐를요? 수용소의 지옥 말이야. 지옥은 잘 모르는데요. 그건 비유야, 수용소가 지옥이라는 뜻이야. 모르겠어요. 강제수용소는 상상할 수 있지만 지옥은 잘…. 그래도 해볼래? 지옥은…, 지겨울 수 없는 장소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우슈비츠 같은 수용소에서도 조금은 지겨운 시간이 있었거든요. …그걸 무엇으로 설명하겠니? 시간요. 시간? 네, 시간이 모든 걸…. 처음엔 생소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단계별로 결국 이해하게 되잖아요. 수용소에서 사 년, 육 년, 십이 년 동안 있었던 사람들을 봤어요. 십이 년 곱하기 삼백육십오 일, 거기에 곱하기 이십사 시간…. 년, 하루, 시간, 초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야 해요. 만약 시간이 없어서 모든 걸 한꺼번에 인식해야 한다면 견디질 못할 거예요. …아니, 그건 상상이 되질 않는데.


그건 그렇고 우리의 우연한 만남을 연재 기사로 써 보지 않을래? 이 시대의 슬픈 징표를 알리기 위해서 말이야. 네 경험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의 일이기도 해. 음, 그리고 우리가 헤어지는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도 될까? 연재 기사에 싣고 싶은데. 아, 미안해 기사 욕심이 있다 보니 기자들은 가끔 배려가 부족할 때가 있어. 강요하지 않을게. 잠깐만, 내 연락처야. 꼭 연락해 줘. 기사는 내가 쓰지만 네가 말해주는 대로 쓸 거야. 영세한 신문사라 큰돈은 아니지만 소정의 돈도 지급할게. 아마 네 새 출발에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어때? ―소년은, 그가 ‘지옥’이라고 명명한 곳에서 이제 막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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