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왕실의 탄생 살림지식총서 86
김현수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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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에서 나오는 총서들은 분량이 많지 않고 가격도 저렴해서 심심할 때 하나씩 읽기 좋다. 사실 이 책도 예전에 사둔 것인데 영화 《덕혜옹주》를 보고서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 읽었다. 우리나라에도 왕실이 남아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 예상과 달리 앞부분에만 유럽왕실의 정통성을 설명하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 왕조가 등장한다. 봉건제와 로만가톨릭이 왕실의 정통성을 드러내는 요소임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이후 영국, 아니 잉글랜드 왕실의 조상 정복왕 노르망디의 윌리엄이 벌인 1066년의 헤이스팅스 전투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에 있는 장면들을 삽입하여 설명하는데 중세 전투의 병법과 무기들을 설명하고 있어 즐겁게 읽었다. 왕실에 대한 것보다 이쪽이 더 재밌다.

윌리엄의 노르만군과 그에 맞서는 헤럴드 2세의 앵글로-색슨군. 기억에 남는 부분만 설명하자면 노르만군의 방패모양이 있다. 일부 보병은 원형의 나무방패를, 기동성이 필요한 기병과 또 일부 보병들은 위가 둥글며 아래 부분이 좁아지는 연 모양의 방패를 들었다. 달리는 기사와 말의 옆구리를 보호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윌리엄의 깃발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반달 모양의 깃발에 갈까마귀가 그려져 있다. 이는 그가 바이킹의 후손이란 뜻이다. 또 다른 깃발은 흰 바탕의 황금 십자가 모앙으로 교황이 하사한 것이다. 이를 소지한 군사는 교황의 군사와 동일하게 인정받는다. 헤럴드 2세의 군도 거의 비슷한데 노르만군과 다른 점은 원시 게르만족시 사용하던 도끼들이다. 앵글로-색슨군의 용이 그려진 깃발은 고대 로마 마리우스 장군의 기병군기에서 비롯되었다.

윌리엄의 원정을 도왔던 일주일 간의 헬리혜성 천체쇼, 헤이스팅스에 간 것은 수송을 위해 옛 로마 도로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헤럴드 군은 화살이 부족해서 적이 쏜 화살을 다시 주워 쐈다는 것 등 간간히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었다. 당시 왕비들은 전선에 따라 나와야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한 뒤에도 정복왕은 노르망디에서 주로 지냈다고 한다. 앵글로-색슨과 노르만의 진정한 결합은 윌리엄의 증손자 헨리 2세의 플랜태저넷 왕조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노르망디 공국이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들은 본래 노르만인이었고, 잉글랜드 내 앵글로-색슨계와 데인계의 문화적 뿌리와 더 가까워진다. 이러한 점이 오늘날 잉글랜드 왕실이 고유한 독자성을 주장하는 근거라 한다.

유럽왕실의 계보를 살펴본 뒤 오늘날 각국 왕가의 존재에 관해 더 생각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했는데, 재미있게 읽었지만 기대와는 다른 책이라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도 왕가가 존속한다면 입헌 군주제일 터인데 생각해보니 그런 설정으로 드라마는 두 개나 만들어졌다. 만화 원작의 『궁』과 『더킹 투하츠』. 둘 다 보지 않아서 어떻게 끝나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크게 의미는 없겠지만 가정해보면 아무래도 서서히 소멸하지 않았을까 한다. 2차 세계 대전이라는 격변의 역사를 피할 수는 없었겠지만…. 식민지 역사는 삭제하고 조선 후기도 적절히 마무리되었다면 말이다. 조선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생각하면 자유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사상을 단번에 받아들였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얼리어답터 민족이라(?) 의외를 생각해 본다. 어쩌면 프랑스처럼 목을 친다던가 하는 과격한 방법도….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왕실과 귀족이라는 계급은 그 상징만 사라졌을 뿐 정치·경제 권력을 쥔 혼맥으로 대체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그 계급적 전통이 남아 있는 나라들이 있다. 유럽의 얽히고 설킨 귀족들은 제외하고 왕실이 있는 몇몇 국가들에 한정해 본다면, 과연 왕실의 존속이 국가에 도움이 되는가? 유럽의 몇몇 왕실들은 세금을 내는 것으로 알지만 그렇다 해도 그 유지비는 국민의 세금이다. 왕실 구성원들이라고 늘 한량같은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고 의전이나 봉사활동 등 ‘보여지는’ 역할을 맡는 것이 그들의 주임무이다. 고충이야 있겠지만은 어딜 가나 예우 받으면서 부와 권력을 누리는데 쓴소리를 듣지 않을 순 없고…. 우리나라의 수저론에 정말 걸맞는, 그쪽 표현으로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인생들 아니겠는가.

영국 왕실은 현대 왕실의 대표적 이미지이자 여왕이 영연방의 상징이며 구심점이기도 하다. 최근에도 여전히 비극적인 사건들과 스캔들…. 어쩌면 영국 사회 내 뿌리깊은 계급의 선은 왕실이 존속하기에 여전한 것이 아닐까?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그 구분된 삶은 서로 섞이지 않을 듯 하다. 매번 왕실의 존속이니 폐지니 해도 이 제도가 유지되는 것은 관광 상품이기 이전에, 이미 그들을 역사의 일부분(박물관 인형처럼?)으로 받아들여서 일지도…. 자기들 딴에는 국민들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있고, 그들의 사생활이 적절한 가십거리가 되어주는 것도 있고. 좀 너무 갔나 싶기도 하지만 미국의 셀러브리티들을 영국의 왕실과 비교할 만한 듯. 다른 군주국들도 사건 사고라면 빠지지 않던데, 혼사문제만 봐도 참 대단하더라.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이 유럽의 왕실들이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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