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레스와프 프루스가 쓴 「인형」 상권을 반 정도 읽었는데 주인공 보쿨스키가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재력으로 상류 계급의 여성을 차지하려는 인물인가 하여 그 인물됨이 약간 저어되었는데(나이도 너무 많고) 볼수록 괜찮은 사람인 것이다. 물론 그의 과거(예를 들어 젊은 나이에 나이 차이가 나는 부유한 과부와 결혼하여 재산을 상속받은 것)가 깨끗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상인임에도 정도와 도덕을 알고 행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하겠다 마음먹은 그를 모두가 비웃을 때 결국 대학에 들어가 과학을 탐구했고, 러시아에 대항한 봉기에 참여했기 때문에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했고 이후 불가리아 전쟁을 통해 벌어들인 재산으로 자선사업을 하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숭고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참 낭만적이라 할까.... 너무 늦은 나이에 찾아온 사랑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주변의 진심어린 충고보다 자신의 양심과 생각에 비추어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지마, 아 하지 말라고!!! 란 말이 절로 나오는데 정말 읽을수록 새드엔딩일 것 같은 예감에 미칠 것 같다. 보쿨스키의 몰락으로 끝날 것만 같은 예감. 책장이 넘어갈수록 하권도 같이 안 산게 너무 후회되고 이번 주말에 다 읽는 것이 옳은 일인가(??) 고민도 된다.

보쿨스키가 사랑하는 이자벨라는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리지 타입이 아닐까 했는데 빙리 양이나 레이디 캐서린, 「제인 에어」 의 레이디 잉그램에 가깝다. 아주 대귀족의 마인드.... 오만함에 걸맞은 놀라운 외모와 분위기.... 근데 빈털터리죠. 보쿨스키가 「워더링 하이츠」의 히스클리프, 아니 「설득」의 웬트워스 대령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다. 비록 이 두 캐릭터들은 과거에 여주인공의 사랑과 애정을 받았다는 차이가 있지만.... 똑같이 사랑을 얻으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재산을 모아 돌아오면 뭐하나. 약간의 복수심 혹은 야망을 zest로 뿌려 줘야 로맨스가 이어지는 재미가 있는데 아 진짜 이 소설은 넘나 사실주의다. 보쿨스키는 나이도 많고 말이야.... 마흔이 한참 넘었고 말이야.... 게다가 남주 버프의 아름다운 외모 그런 거 없음.... 그냥 아저씨.... 이자벨라의 스코프 안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경멸만 얻은.... 많은 기회들을 그릇되게 흘려보내고.... 다른 면에서는 딱 떨어지게 정확하고 야무진 사람이 사랑 앞에 하루에도 몇 번씩 현타를 맞고 자기반성하고 그런다. 다가가지도 못해서 혼자 천국과 지옥 널을 뛰는 그런 찌질함이 한편으론 공감이 되고 그런 와중에 베풀 것은 또 베풀고- 그런 인성 때문에 보쿨스키를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단, 이자벨라와 이루어지라는 게 아니라 그 실체에 환멸을 느끼고 깨끗이 잊고 새출발하라고.... 「위대한 개츠비」같이 되지 말라고.... 상권을 마저 읽고 하권을 보면 이자벨라를 다시 판단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추가) 같은 날 오후 10:35

나는 정말 진지하게 하권을 읽지 말까 고민하였다.... 더 이상 읽는 것은 보쿨스키에 대한 모욕이야!!! 소설은 재밌는데 도저히 책장을 넘길 수 없어서 몇 페이지 읽고 딴 짓 하기를 계속하다가 드디어 19장을 넘겼다. 하권 목차도 들여다보고 어떡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이제 안심이다. 통쾌하기까지 하다. 「인형」은 보쿨스키의 로맨스를 진행하면서 당시 유럽을 휘감은 혁명, 전운, 산업화에 따른 계급과 의식의 변화, 사회 문제를 모두 담은 소설이다. 보쿨스키가 어떤 동기와 방식으로 귀족 사회에 진입하고 거부당하는지.... 그리고 바르샤바가 어떤 식으로 그를 조롱하는지.... 로맨스의 진행 역시 단순한 남녀 간의 감정이나 신분 차가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가는 배경지식에 녹아들어 있다. 감정이입을 하더라도 보통 이 정도는 아닌데 오늘은 정말 힘들었다. 이제 남은 이야기는 제츠키의 회고, 보쿨스키의 과거 이야기라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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