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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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의 원전은 덴마크 사학자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덴마크 역사책』 불역판인 벨포레의 『비극 이야기들』로 여겨진다. 1600∼1601년 집필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이 비극은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들 중에 가장 유명하며, 가장 많이 회자되고 연구되는 작품이다.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극본을 읽어보지 않은 이도 들어봤을, 유명한 대사가 있지 않은가. 여기서 죽는 것은 햄릿인가 아니면 복수의 대상인 클로디어스인가. 문맥을 보아 햄릿의 자살에 좀 더 타당성을 두어야 할 것이다.


어릿광대와의 대화에서 추정할 수 있는 햄릿 왕자의 나이는 서른이다.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아버지, 햄릿 왕의 장례식에 왔더니 어머니 거트루드가 재혼을 한단다. 상대는 왕위를 이어받은 숙부 클로디어스다. 장례식 음식이 결혼식 음식으로 탈바꿈되는 상황, 용맹하고 존경받던 햄릿 왕을 애도하는 이는 왕자 뿐이다. 신하들은 숙부에 아첨하기 바쁘고, 클로디어스는 형의 사망이 슬프지도 않은지 연회가 계속된다.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는 어머니와 왕궁 사람들, 숙부를 싫어하던 이들이 자연스레 초상화를 사는 모습은 어이가 없다.


근친상간적인 이 결합 앞에 절망한 왕자는 자살을 생각한다. 신이 자살을 금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아들 속도 모르고 어머니는 대학에 돌아가지 말고 궁에 남으란다. 숙부는 왕위계승자는 너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 참된 친구 호레이쇼만이 이 고통을 알아주는데, 밤에 선왕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다. 노르웨이를 무찔렀던 그 갑옷을 입고서. 왕자에게만 들리는 유령의 말인즉, 클로디어스가 형수 거트루드를 차지하기 위해 형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거트루드와의 간통은 남편이 죽기 전부터 이어져온 것이란다!


유령은 왕자에게 아비의 복수를 할 것을 맹세하게 한다. 햄릿 왕자는 고통스럽다. 유령의 말이 사실인가? 그가 악령일 수 있지 않은가? 아버지의 죽음에 어머니도 연관되어 있지는 않은가? 그의 계략으로 덴마크 왕이 숨진 것이 사실이라면, ‘숙질 이상의 인척관계가 되었지만 부자지간은 될 수 없는’ 클로디어스를 언제, 어떻게 죽여야 하는가? 왕자는 클로디어스가 자신을 경계하지 않도록 미친 척 하며, 연극을 이용하여 클로디어스의 의중을 떠보기로 마음먹는다. 호레이쇼와 함께, 그는 유령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알아차린다.


그럼에도 햄릿은 복수를 자꾸 미루고, 이 우유부단함은 레어티즈와 포틴브래스와 비교된다. 아버지 폴로니어스가 죽자 레어티즈는 프랑스에서 돌아와 복수를 다짐하는데, 부친 살해자를 교회에서도 죽일 수 있다는 각오를 보인다.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어쩌면 정당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 노르웨이 왕의 복수를 위해 포틴브래스는 군사를 모은다. 포틴브래스의 이런 행동력은 이후 폴란드의 작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행군하는 모습으로, 행위의 ‘정당한’ 사유가 있음에도 복수를 미루던 햄릿을 깨우친다.


햄릿의 우유부단함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왕자는 사색하는 인물이며, 어머니의 부정과 클로디어스로 상징되는 덴마크의 부패로 인해 염세에 빠진다. 깊은 우울증을 앓는 그는 클로디어스의 악덕을 확인한 후, 복수에 대한 회의감으로 인해 긴 독백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햄릿  (…) 내적 반성은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며,

이리하여 결심의 본색은

우울이라는 창백한 색으로 덮여서

지고의 중요한 거사들은

이로 인해 노선이 바뀌고,

실행의 이름조차 잃게 된다. (3막 1장, 101쪽)


햄릿 왕자의 신중함과 분별력은 분노에 찬 와중에도 착실히 기능하고 있고, 여기에 우울증이 더해지니 결정의 순간을 미루게 되는 것이다. 복수의 방식과 때 또한 문제가 된다. 클로디어스가 홀로 기도할 때, 햄릿은 그를 죽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죽은 방식으로 죄의 공과를 더하기 위해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겠단다. 그러나 클로디어스가 햄릿의 광증에서 석연찮음을 느끼고, 그를 영국으로 보내 처리하게됨으로써 이 결정은 저지된다. 놀랍도록 적절한 ‘해적’의 개입으로 돌아온 햄릿은 이제 복수를 신의 섭리에 맡기려 한다.


우유부단함, 이 결점은 햄릿 자신을 포함하여 폴로니어스, 오필리어, 레어티즈, 로즌크랜츠, 길던스턴, 거트루드와 클로디어스의 죽음을 불러온다. ‘고결한 심성’을 지닌 햄릿이 복수라는 목적을 달성하지만, 본인 역시 살아남지 못하기에 이 극은 더욱 비통해진다. 이는 햄릿이 앞서 말했던 ‘타고난 성격적 결함- 그 작은 악덕이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라도 큰 불명예를 입게 한다네.’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왕자는 자결하려는 호레이쇼에게 그 ‘천복(天福)’을 미루고 세인들에게 이 비극을 알려줄 것을 부탁한다.


햄릿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것이 더 숭고한 정신인가.

변덕스러운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허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파도처럼 몰려오는 많은 고난에 대항하여

물리치는 것일까. (3막 1장, 100쪽)


그는 변덕스러운 운명을 견디기로 했고, 복수를 미루었으나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피하지는 못했다. 등장인물들의 계획들은 성공하지 못하며 결국 그들을 극에서 퇴장하게 한다. 햄릿의 우유부단함은 그가 고매한 지성인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 효에서 비롯된 복수심, 숙부에 대한 증오와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 죽는 것이 천복이며, 어차피 끝이 오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일찍 떠나는 것이 무에 아쉽겠는가 묻는 햄릿의 운명은 복잡한 그의 인물됨만큼이나 비극적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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