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마더스
도리스 레싱 지음, 강수정 옮김 / 예담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표제작 〈그랜드 마더스〉만으로도 별 다섯을 받아야 한다. 묘한 분위기와 등장인물들에 설득되기를 저항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글 자체에 압도되고 끌려가고 말았다. 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읽었을 때의 충격이 떠올랐다. 놀랍다. 그저 놀랍다. 83세의 작가가 쓴 단편 하나하나의 완성도와 빼어남이라니. (리뷰에서는 〈그랜드 마더스〉만을 다루고자 한다.)


로잔느와 릴리안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로즈는 연극에, 릴은 운동에 재능을 보인다. 서로에게 라이벌 의식이 있으나 드러내지 않았고, 두 사람의 인생은 수월하게 흘러간다. 사회에 나와 각자의 분야에 매진한다. 로즈는 학자이자 교수인 해럴드와, 릴은 스포츠 용품 사업을 크게 하는 테오와 결혼한다. 두 가족은 바닷가에 면한 마주보는 집에 살면서 가깝게 지낸다. 로즈의 아들 톰과 릴의 아들 이안은 어머니들처럼 절친하다.


어느 날 해럴드는 로즈와 릴의 유대감이 너무 끈끈하다며, ‘여기서 나는 그림자 같은 기분이야.(28쪽)’라고 말한다. 부부관계에는 문제가 없었다. 로즈는 이 사실을 릴에게 털어놓고, 릴은 테오와의 사이가 좋지 않음을 밝힌다. 해럴드는 북쪽으로 발령이 나 함께 가기를 원하지만 로즈는 릴의 곁에 남기를 택한다. 얼마 후, 테오가 사고로 사망한다. 바닷가 집에는 아름다운 엄마들과 그들을 쏙 빼닮은 아름다운 17살의 아들들만 남았다. 예민한 이안과 활달한 톰.


우울해하는 이안을 달래던 로즈는 그와 밤을 보내고, 이를 알게 된 톰은 건너편 집에서 밤을 보내고 돌아온다. 마치 자신에게 주도권이 있다는 듯, 껄렁대며 의기양양하던 아들에게 로즈는 따귀를 날린다. 아들들이 머무는 집이 바뀌었으나, 릴은 로즈에게 의존적이기에 로즈가 대부분을 리드한다. 네 사람이 모인 풍경은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균형을 깨트릴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고 로즈는 이를 잘 이용한다.


아들들은 결혼 적령기가 되고, 여자들은 아름답지만 늙어가고 있다. 언제까지 젊은 신들을 붙들어 놓을 수 있을까? 톰의 결혼을 계기로 로즈는 네 사람의 관계가 ‘종료’됐음을 선언한다. 자발적인 이별이 아니기 때문에 남자들은 연인이자 어머니를 더욱 갈망한다. 그들을 옥죄는 구속과 관계의 끈은 여전히 로즈가 쥐고 있다. ‘아이’를 낳아주었지만 그들 사이에 낄 수 없었던, 네 연인을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며느리들(메리와 한나)을 더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기만이다. 


로즈는 남편보다도, 연인보다도, ‘릴’을 잃는 것을 더 고통스러워한다. 다른 성격과 재능, 그러나 금발에 푸른 눈동자라는 외모의 동질성. 소녀 시절 서로의 몸에 붙은 소금기를 핥던 그들은, 2세를 공유함으로써 서로를 완벽히 소유한다. 결국 사실을 알게 된 메리와 한나의 귓가에 울리는 것은 톰도, 이안도, 릴도 아닌 로즈의 승리에 찬 웃음소리다. 오이디푸스적이고 자기애적 관계는 이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은,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순탄하게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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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5-13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투마더스 죠...원작. 잘 연결한 것 같아요. 아직 책은 안본 상태지만 ^^

에이바 2016-05-13 23:24   좋아요 1 | URL
네 영화는 카피가 자극적이라 안 봤는데 원작을 읽으니 감탄만 나와요 ㅎㅎ

[그장소] 2016-05-14 23:18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를 먼저 찾아봤는데 책을 안보고 먼저 봐서인지 몰라도 에이바님 쓰신 리뷰대로 라면
상당히 흐름껏 잘 만든 영화지 싶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