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 킹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1 아서 왕 연대기 1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버나드 콘웰의 군벌 연대기(The Warlord Chronicles)은 『윈터 킹』, 『에너미 오브 갓』, 『엑스칼리버』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기 400년경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그 유명한 '아서 왕'이 군벌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때는 아직 브리튼족이 색슨족에 맞서 싸우고 있으며, 현대 영국인의 뿌리라 여겨지는 앵글로-색슨족(앵글족, 색슨족)은 아직 이 땅에 대한 지배력을 점하지 못했다. 아서 왕 전설에 등장하는 대마법사 멀린은 브리튼 최고(最高, 最古)의 드루이드로 등장한다. 드루이드는 전역에 퍼져있던 토착신앙을 대표하는 샤먼으로 우리네 무당이라 할 수 있다. 신들과 소통하며 병도 고치고 저주도 하는데- 전투시에는 상대를 도발하고 욕설과 춤을 통해 사기를 꺾는 등, 왕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였다. 드루이즘을 믿는 브리튼 섬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그려지는 모습들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군벌, 아서가 그 주인공이 되는 소설이지만 실질적인 화자이자 주인공은 데르벨 카다른이다. 금발에 푸른 눈, 색슨 족 출신의 이 소년은 한 드루이드에 의해 죽음의 구덩이에 빠졌다 살아나온 인물로 출생 또한 범상치 않다. 데르벨이 아직 소년이고, 유서 펜드래곤(우서 펜드래곤, 아서의 아버지)의 적손인 모드레드가 탄생하는 장면에서 소설이 시작한다. 특이한 점은 아서가 서자로 등장하고, 모드레드는 아서의 아들이 아닌 이복동생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이복동생 모드레드는 사망한 상태로, 이후 언급되는 모드레드는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유서의 손자이다. 아서는 동생 모드레드를 죽게 했다며 부왕에게서 부당한 미움을 받고 있다. 한편 아기 모드레드는 절름발이로 태어나 비뚤어진 성정을 가진 청년으로 자라나는데, 유서의 죽음을 앞두고 아서는 모드레드를 왕으로 모실 것을 맹세하게 된다. 이 서약을 지키고자 한 아서의 의지가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연대기의 1부인 『윈터 킹』에서 데르벨은 멀린이 주워온 수많은 아이들 중 하나로 등장한다. 함께 자란 니무에(아서 왕 전설: 호수의 요정 비비안)는 멀린의 연인이자, 수제자인데 데르벨의 첫사랑이기도 하며 둘은 영혼을 잇는 맹세를 한다. 이때 데르벨은 이 맹세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생각도 못한다. 우여곡절 끝에 아서의 밑으로 들어간 데르벨은 점차 공을 세우고 장군으로 인정받는다. 아서의 꿈은 통일된 브리튼을 만들어 색슨족으로부터 브리튼 섬을 지켜내는 것이다. 그는 포위스의 공주 에인윈과 정략결혼을 해 이상을 이루려 하지만 약혼식에서 귀네비어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귀네비어와 숲 속에서 도둑 결혼을 하고 영지로 돌아 온 아서, 에인윈의 불명예스러운 파혼으로 고르디버드 왕은 노발대발하고 결국 브리튼 족 사이 전쟁이 발발한다.

 

아서 왕 전설의 최고 미남이자 사기 캐릭터, 호수의 기사 란슬롯도 출연하는데 영국인이 쓴 이 군벌연대기에서 줄곧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이 왕자를 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란슬롯은 어니스 트레베스(프랑스의 몽생미쉘)의 왕자로, 프랑스인들이 쓴 아서 왕 이야기에서 묘사된 모습과는 아주 다르다. 그가 전설 속에서 미화되는 이유도 등장한다. 한편 귀네비어는 사냥을 즐기며 활동적인, 야망있는 미녀로 등장한다. 남편을 왕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망의 과정을 보면 악녀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가 전개되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녀의 총명함과 정치력에 감탄하게 된다. 아서가 브리튼 왕국에 평화를 가져오고, 멀린은 브리튼의 고대 유물들을 찾아 오래된 신, 옛 신들을 불러들일 수 있을 것인가. 이 두가지 이야기는 서로 다른 듯 교차된다. 멀린이라는 인물의 영향력은 소설의 초반부터 암시되지만 그는 계속 부재중이다. 의외인 곳에서 등장하는 그의 모습을 그리며 읽는 것은 재미를 더할 것이다.

 

『윈터 킹』은 모드레드의 출생과 비극, 색슨족의 침공, 아서의 결혼과 약혼, 브리튼의 분열, 어니스 트리베스로 가는 데르벨, 러그 계곡에서의 전투로 전개된다. 이 작품은 신화를 현실로 가져오면서 상당한 고증을 거쳤다. 또한 브리튼 족의 입장에서, 아서 왕 전설에 대한 시각에 균형을 맞춘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현재' 데르벨은 수도원에서 자신의 왕비 이그레인을 위해, 아서의 이야기를 색슨어로 쓰고 있다. 결국 그의 회상인 것이다. 두껍지만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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