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지음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2014년 10월 30일 초판 1쇄, 열린책들


여기 작가의 내공이 있습니다.

 

마흔 둘의 심리 상담사 민형기에게, 스무 살 같지 않은 한나리가 찾아온다. <애인이 빼빼로포비아입니다. 어떻게 하죠?> 라는 고민거리를 들고서. 예리한 눈빛으로 한나리의 비밀을 캐낸 민형기가 빼빼로포비아에 대한 짤막한 보고서를 읽고, 두 남자의 만남이 성사되려는 순간- 소설은 번지점프와 같은 워프(실리칸이 지구에 올 적 사용했던 기술)를 독자에게 시전한다. 스릴러물에서 치정으로 갈 듯, 액자소설 인 아웃, 그리고 실리칸과 검은 푸들의 등장으로 SF로 장르를 바꾸면서.


예사롭지 않은 래디언트 오키드(판톤이 선정한 2014년의 색상)의 표지를 마주쳤을 때,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은 골 때리는 이야기라는 걸. 제목은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상,하체가 분리된 빼빼로인간 같은 존재 주위를 행성과 알약이 공전하는 표지. 작가 소개를 보면, Saint gang이라 불리우길 원하지만 사실은 우리 집에 있는 생강편의 그 생강이 필명인 작가. 세계문학이 아닌, 열린책들의 한국문학 1호로서의 이 소설.


알고 있었다. <정신차려. 커피믹스 한 봉지만도 못한 인생아.>와 같은 알약의 따귀 사례와 함께 나이 든 남자의 뻔뻔한 욕망이 두렵다는 데에서는 작가의 통찰력을 느꼈다. 소설과 소셜, 랑그와 파롤을 으깨어 소설에 묻혀 놓았다는 그런 소설가의 소설, 이야기.


-민형기는 군청색과 하늘색이 어우러진 바둑판무늬 롱코트를 입고 다니는 남자를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흰 빛깔의 살결과 긴 손가락, 가려진 턱선까지 겸비했으나 유약해 보이지는 않는 사내의 인상과 멋들어진 한 쌍이 된다는 것을. 69p.


작가의 서브캐릭터라 짐작되는 시간강사가 나타나는 (빼빼로 모양을 교차시킨 모습으로 보아주길)장에 이르기 전까지는 짐작도 못했다. 소설의 장르가 바뀌리라는 것을. 왜냐하면 바로 위 문단을 읽었으니까! 빼빼로포비아라는 남자는 이렇게 멋들어진 외양의 변태 싸이코였단 말인가?! 이 묘사가 나오기 직전에 한나리가 민형기를 찾아온 이유가 되는, 빼빼로로 인해 <두 눈이 붉어진> 그가 주는 오싹함! 그러나 외양 묘사를 보면 그는 진정으로 <그을리지 않는 마시멜로 같은 청소년>이었던 시절을 보낸 남자였던 것이다! 내 머릿속을 휘저어놓은 작가에 부르르 떨기를 잠시, 그 생각은 곧 깨어지고 말았다. 현실 속 스윗스틱의 사장은 손등에 검은 털이 숭숭 난 버터 스카치 목소리의 기백이 넘치는 야수에 가까운 남자였으니까.


북에서 온 만철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스윗스틱의 오후 알바 만철을 <호송아ㅏ트>로 호송하여, 402호로 초대한 스윗스틱의 사장은 자신이 실리카라는 별에 서 온 <실리칸>임을 털어 놓는다. 스타트렉의 벌칸을 연상시키는 이름의 실리칸. 이성을 유지하려는 벌칸과는 달리, 실리칸은 호기심 많고 이타적인, 플라나리아와도 같은 외계종족이다. 만철은 사장의 고백을 믿지 않는 듯 하지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실리카 문명의 꽃인 주술사 다섯의 숙주가 된다. 그리고 그가 살아있는 막대 과자의 향을 풍기면서 소설은 걷잡을 수 없는 국면에 돌입한다.


고민을 털어놓는 만철에게 개똥 같은 듯 개똥같지 않은 철학을 얘기하는 형기 아저씨의 말이 인상깊다.


-이 시대의 인간은 어쩌면 빼빼로 피플이네. 인간은 태어나기를 딱딱하고 맛없는 존재로 태어났지.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개성이란 달콤한 초콜릿을 묻히지. 타인을 유혹할 수 있는 존재로 특별해지기 위해. 하지만 그 개성의 비율 역시 언제나 적당한 비율, 손에 개똥 같은 초코가 묻어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 적정선의 비율로 필요하네. 그게 넘어가면 괴짜라거나 변태 취급을 받기 쉽지. 그렇게 이 시대의 인간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양 착각하지만 실은 모두 똑같은 봉지 안에 든, 더 나아가, 똑같은 박스 안에 포장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초코 과자 빼빼로와 비슷하다네. 145-146p.


주술사들이 등장하는 곳에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대사를 주고 받는 등장인물들 사이에서는 아멜리 노통브가 튀어나올 듯 하다. 등이 근질근질하며 움직이는 부분에서는 만철의 말대로 그레고르 잠자가 생각나며, 그것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에서는 댄 시먼스의 <히페리온> 속 십자형을 지닌 신부가 떠오른다. 스윗스틱을 만들어 <무언가를 기억하려는> 행위는 방향성은 다르나, 프랑스 영화 <약지의 표본>이 생각난다. 프루스트의 마들렌 가루처럼 존재했었던 기억을 남기고 사라진 실리칸을 보면서, 이처럼 다양한 텍스트의 변주가 이뤄지는 모습들은 지극히 포스트 모던적인 요소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빼빼로라는 소설을 쓴 사람은 누구야. 지금 이생각을 하는 나야? 아니면 이 과자를 만든 제과업체야? 아니면 이 과자를 통해 욕망하는 우리 모두야? 245p


그렇다. <나는 그럴듯한 소설을 쓸 생각이 없다>는 작가가 그럴듯해 보이려고 미하일 불가꼬프의 <개의 심장>을 문두에 넣었을까? 그럴 리 없잖아! 아는 만큼 보이는 소설, 다시 읽을 때는 새로운 글처럼 느껴지는 소설, 작가의 내공이 엄청나다.


생염다생맛, <생을 진정으로 염원하는 사람은 다른 생을 맛볼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과연 준비되었는가? 생염다생맛을 상상하며, 나는 소설 속에 나오지 않은 빼빼로 하미멜론 맛을 어금니로 씹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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