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메모 -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28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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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메모에 관심이 많다. 알라딘 서재에 찔끔찔끔 뭔가를 남기려고 노력하는 일도 책 메모를 해보려는 나의 필사적인 노력 중 하나다. (그래도 7월 한달 간 독서하며 인덱스 한 통을 다 썼다.)

<아무튼, 메모>도 메모하는 법을 건져볼까, 하고 펼쳐들었다. 내 예상과는 달랐지만, 예상보다 좋았다. 메모에 대한 메뉴얼이라기보단 작가의 메모 예찬에 가까운 책. 정혜윤의 책은 처음인데, 맞장구 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나랑 비슷하게 느껴져서 읽던 도중에 '정혜윤 MBTI'를 검색해보기도 했다. (물론 나올 리 없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메모를 한다는 정혜윤의 말이 좋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책과 메모가 이를 도와줄 것이다.

 

8월의 마지막 책으로 이 책을 골라서 다행이다. 9월에도 기록할 힘이 생겼다.

 

 

이렇게 살다 보니 우리가 그런 능력이 있는 줄도 모르는 아주 중요한 능력 '무관심의 능력'이 생겨났다. 나는 '(건강한) 무관심의 능력'의 대가다. 물론 이건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p.22)

 

=> (건강한) 무관심. 내게 지금 필요한 능력이다. 나는 (그냥) 무관심의 능력도 없고, 굳이 찾아내자면 (음흉한) 관심의 능력쯤은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관심 없는 척 하는 데 에너지를 쓴다.

 

 

한번 읽은 뒤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말이 있다. 보르헤스의 말이다. "우리 인생에는 약간의 좋은 일과 많은 나쁜 일이 생긴다. 좋은 일은 그냥 그 자체로 놔둬라. 그리고 나쁜 일은…." 여기서 잠깐 멈추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대체 나쁜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나쁜 일은 바꿔라. 더 나은 것으로. 이를테면 시 같은 것으로." 이 말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p.67)

 

-> 나도 보르헤스의 이 말 외울래. 나쁜 일은 바꿔라, 이를테면 시 같은 것으로.

 

 

 

당시 노트에 쓴 것들이 무의식에라도 남아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어느 날 무심코 한 행동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믿는다. 이게 메모를 하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게 메모를 하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 무심코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좋은 것이기 위해서. 혼자 있는 시간에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그런 방식으로 살면서 세상에 찌들지 않고, 심하게 훼손되지 않고, 내 삶을 살기 위해서.


- P36

사회가 힘이 셀수록 이 사회와는 조금 다른 시간- 고정관념, 효율성, 이해관계와 무관한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가 힘이 셀수록 개인이 자기 자신으로 사는 사적 사유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사회가 힘이 셀수록 그저 흘러가는 대로, 되는 대로 가만히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살 필요가 있다. 메모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셈이고 결과적으로 메모는 ‘자신감‘ 혹은 ‘자기존중‘과도 관련이 있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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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 한계 시간 민음사 모던 클래식 68
율리 체 지음, 남정애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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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독특하다. 과연 무엇이 진실이냐? 는 물음은 <라쇼몽> 이후 끊임없이 변주돼 문학에 나타난다는 생각을 했다. 화자 스벤은 독일에서 도망쳐 나와 외딴 섬에 자리 잡은 인물이다. 잠수해서 들어간 수심 100m, 심해에서 안정을 느낀다. 그의 독백에 마음이 많이 갔다. 나 또한 어느 때는 하염없이 굴을 파 들어가 앉아 있는 성격이기에.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테오의 빈정거림에 따르면 "최고의 개인주의자"인 스벤을 보며 난 저 정도는 아니지, 생각하기도 했지만.

 

초반부는 욜라와 테오의 관계가 아리송하게 느껴져서 괴로워하며 읽어나갔다. 그러나 인물들의 결핍을 서서히 들여다보며 소설에 빠져들었다. 잠수 이야기가 나와서 낯설기도 한데, 어느 순간 잠수 강습을 받고 있는 양 잠수에 몰입해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특히 후반부 스벤의 탐사 부분은 손에 땀을 쥐고 읽었다.

 

잠수에 대한 은유도 세련됐고, 분위기도 독특하고. 간만에 새로운 느낌을 주는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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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의 폴짝 - 정은숙 인터뷰집
정은숙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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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소설가가 인터뷰이로 참여했다길래 헐레벌떡 구입해서 읽었다. 왠진 모르지만 마음산책은 인터뷰집을 잘 엮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됐다. 정은숙 편집장이 각 인터뷰 첫 머리에 쓴 작가에 대한 단상에는 마음산책 저자에 대한 애정이 물씬 묻어나는데다 편집자와 저자 사이의 각별한 유대관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인터뷰의 티저로 보이는 듯한 이 부분이 제일 재미났다.) 책, 문학, 출판사의 스무 해를 돌아본다는 기획도 너무 좋고, 저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질문들도 좋다. 게다가 이 책을 읽으며 마음산책의 영업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터뷰에 마음산책이 출간했거나 출간 예정인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데, 모조리 그 책들을 읽고 싶어진다. 말들 시리즈, 짧은 소설 시리즈는 올해 안으로 꼭 여러 권 읽어봐야겠다.

 

 

인터뷰집은 그나마 나에게 친숙한 작가들 순으로 읽어내려갔다.. 몇 분에 대한 느낌을 간략히 써 보자면,

 

백수린 작가님, 이방인과 여성저전서사라는 키워드. 손보미 작가 인터뷰는 여기서 제일 웃겼는데,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나도 손보미 유니버스라는 곳에 얼른 들어가고 싶어졌다. 뭔가.. 여기 나온 소설가들의 이미지하고는 이질적이었는데,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바라보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 본질은 똑같다는 생각. 소설가의 공통된 작업은 이해. 김연수 작가는 어째 글 쓰는 수도승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기호 작가는 밑줄 그은 부분이 젤 많았음. 인물을 자기가 만들어 낸 하나의 조각으로 여기다보면, 인물들이 현실의 우리와는 다른, 질문 그 자체로만 남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인상 깊었다. 이승우 작가는.. 사실 거의 끝부분에 읽었는데, (나에게 멀게 느껴지는 작가였다) 삶의 태도에 대해 말씀하시는 부분이 내게 가장 위로가 됐다.. 본인이 들으면 어이없겠으나,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느껴졌다 (ㅋㅋ) (애초에 등단 40년차 소설가와 나를 동일시한다는 것 자체가 자의식 과잉이긴 한데) 지금 내 상황과 맞닿아 있어서 그런가보다. "저는 무슨 일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일단 시작했으면 열심히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내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하려고 애를 써요. 그러나 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잖아요." 맞아요, 작가님.. 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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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3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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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책방서로에서 산 책. 뭘 살지 둘러보다가 민음사 tv에 나온 이 책이 생각나서 구매했다. 언젠가 작품집에 실려 읽었던 조해진 작가의 단편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므로 조해진의 소설은 처음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외롭고 외로운 세 인물에 관한 이야기. 소설에 나오는 도심 속 장소가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버려진 가구점, 백화점 옥상에 마련된 간이 놀이공원. 도심 속에서 작가는 어떻게 이 고립되고 황폐한 장소를 포착해냈을까? 역시 소설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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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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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반의반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만 이상을 향한 김연수의 절절한 애정을 느낄 수는 있어서 열여섯의 나는 "그 이전에 이렇게나 이상을 연구한 김연수가 더 놀랍다"고 책 리뷰를 써놨다. (그저 김연수를 사랑했던 나..) 현소텍1 수강 후 식민지 시대 작가에 대한 이해가 훅 깊어져서 한결 어렵지 않게 이 책을 읽어갈 수 있었다! 이 책은 이상이라는 인물, 그의 요절을 두고 주변 인물들마다 엇갈린 진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출발한다. 데드마스크를 뜬 인물이 누구냐부터 죽기 전에 이상이 먹고 싶어 했던 과일이 무엇이었느냐까지 이상을 둘러싼 여러 사실들은 모호하기만 하다. 결국 무엇이 진실이냐는 것. 김연수는 이상이 신화의 영역으로 넘어가 '요절한 천재 시인'이라는 불멸성을 획득한 이상, 그 진위 여부는 믿음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답을 내놓는다. 진짜라서 진짜인 것이 아니라 진짜라고 믿기 때문에 진짜라는 것. 2장 <잃어버린 꽃>에서는 얼굴 하얀 소년 김해경이 불멸의 시인 이상이 되기까지 겪었을 고뇌와 생각을 추측해놓았는데, 이상의 작품 속 행간을 읽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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