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죽음
호세 코르데이로.데이비드 우드 지음, 박영숙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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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가장 큰 적은 노화와 죽음이다. 장수는 오랫동안 인생에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로 여겨져 왔고, 이제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노화와 죽음을 물리칠 가능성을 얻게 되었다.
p17 <저자의 글> 중에서

많은 사람들의 소망 중 하나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이 책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뛰어넘어 노화를 멈추고 젊은 존재로 되돌리는 <노화 역전 기술>과 영원이라고 느껴질 만큼 오래 사는 <불멸의 기술>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노화와 죽음은 살아있는 모든 동식물이 겪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노화 역전과 불멸의 기술이 정말 가능한가 생각하며 글을 읽었다.

1. 생명은 유한한가?
나의 경우 생명은 유한하다고 생각한다. 기존 생물학책에서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 사는 생물에 대해 배운 적은 있다. 이 책에서도 기존에 배운 홍해파리와 바닷가재 등을 예로 들어 이들은 질병이나 외부의 공격이 없는 한 유전적으로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인간에게도 노화하는 체세포 외에 노화하지 않는 생식세포와 만능 줄기세포, 불행하게도 노화하지 않는 암세포도 있다고 한다. 즉, 이러한 생물학적 발견들은 생물학적 불멸 가능성을 뒷받침하여 이를 이용하면 인간의 노화를 멈출 수 있다. 생물학자 마이클 로드는 실험을 통해 노란 초파리의 수명을 4배 연장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이 결과를 인간에게 적용하는 과정만 남았다고 한다.

2. 노화란 무엇인가
사람은 20대를 전후로 성장하다가 그 후 세포노화를 겪는다. 몇백 년 전만 하더라도 노화와 죽음을 신의 형벌로 인식하고, 순응했다. 그러나 최근 장수 생명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노화와 죽음을 하나의 질병으로 보는 시각이 등장하고 있다. 성장이 끝나고 나이가 들더라도 유전자 변형을 통해 젊음을 유지하는 것과 불멸의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심지어 알렉스 자보론코프(인실리코 메디신 창립자이자 생물 생태학 연구재단 이사)는 우리 세대가 필명의 마지막 세대이자 우리 아이들은 불멸의 1세대가 될 수도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2002년 오브리 드 그레이는 SENS 전략을 통해 노화의 일곱 가지 원인을 보여주었다.
1. 세포 내 노폐물, 2. 세포 간 노폐물, 3. 핵 돌연변이, 4.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 5. 줄기세포 손실, 6. 노화 세포의 증가, 7. 세포 간 단백질 연결의 증가
SENS 전략에 대한 학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오브리 드 그레이그는 2003년 므두셀라(1000년을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성경 속 족장) 재단을 공동 설립했다. 또한, 므두셀라 생쥐상을 제정해 노화를 근본적으로 지연시키고 심지어 노화를 퇴화를 되돌리는 연구를 장려했다. 그 연구결과로 야생 상태에서 1년, 실험실에서 2~3년 생존하는 생쥐가 5년을 살게 되었다. 앞으로 연구는 계속될 것이다.

3. 노화역전 프로젝트는 왜 필요한가
미국만 하더라도 사망전 수년 간 많은 사람들이 노화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고 이로인한 치료비가 막대하다. 2000년대 일본 전총리 아소 다로는 국가가 부담하는 노인의 의료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만약 노화역전기술을 통해 건강수명을 50% 늘린다면 노화로 인한 개인의 고통은 물론, 국가는 의료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4. 노화역전 프로젝트 비용은 어디서 충당하나
2006년 과학저널 <사이언티스>에 소개된 개념으로 <장수 배당금>이 있다. 노화를 늦추기 위한 노력이 건강과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화역전 프로젝트에 적용할 수 있는 상당한 자원의 우선순위와 투자 규모에 관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프로젝트 달성을 위한 추가자금출처
1. (미국국립보건원의 모니터링에 따른) 노화에 사용되는 의료연구 예산을 10%에서 20%까지 늘린다.
2. 노화역전 프로젝트 연구 투자자들의 연구시간을 늘린다.
3. 전 세계인들의 자선기부 등을 통해 투자를 받는다.
4. 장수 배당을 기회로 기업들의 투자를 받는다.
5. 공적 자금 재배치보다는 공적 자금의 증액 문제를 해결한다.

저자는 노화역전 개발비용은 생각보다 저렴하고 빨리 개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텔의 공동 창업자이자 과학자인 고든 무어가 1975년 수정한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트랜지스터 수는 약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 무ㅜ어의 법칙에 따라, 의학과 과학에도 적용되며 빠른 시일 내에 노화 역전 기술을 선보일 것이다. 아울러, 노화역전 기술과 난치병 치료 기술이 너무 늦게 개발된다면 냉동 보존된 채 기술 개발을 기다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5. 노화역전 프로젝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및 반론
노화역전 프로젝트, 불멸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많은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 당장 해결해야 될 질병(암, HIV, 에이즈, 말라리아, 각종 바이러스성 질병 등)도 많은데 노화역전 프로젝트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을 수 있는가, 동물실험은 짧은 기간 내에 완수할 수 있다고 해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 많은 반대 여론이 있다. 일각에서는 노화와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생의 황혼기에 들면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각종 영화, 드라마에서 과학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 영원한 삶과 젊음을 꿈꾸는 인물들을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고 이기적이며 편협하다고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 휴대전화, 비행기 등 새로운 별명이 이루어질 때마다 초기 이를 접한 사람들은 이 발명을 쓸모없는 것이라고 치부했다. 기차 대신 빠른 말을 원하고, 전화 대신 많은 집배원을 원했다. 그러나 새로운 발명은 불가능한 것으로 태어나 필수 불가결한 것이 된다.

100년 후는 신경 쓰지 마라. 우리가 보기에 10~20년 후에 의사들이 노화 현상에 보이는 관심이 너무 적었다는 사실과 노화 역전 생명공학에 이렇게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현재의 진료를 돌아볼 가능성이 크다.
p281 <7장. 당신은 죽음에 집착하고 있다> 중에서

100세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뉴스를 본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노화역전과 더불어 불멸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책에서 언급하였듯이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운 존재이다. 중국 진나라 진시황제가 불로장생초를 찾아 헤맨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한, 일반 금속을 금이나 은처럼 귀금속으로 만드는게 주 목적이었다고 생각한 중세 유럽 연금술사들의 최종 목표는 불로불사의 명약이었다는 것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실제로 스위스 연금술사가 만병통치약 엘릭서 개발했다는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1999년에 시작된 게놈 프로젝트는 2013년에 완료되었다. 만능줄기세포와 생식세포의 유전자변형을 통해 불로불사를 누릴 날도 진짜 머지 않은걸까 생각해 본다.

(교보문고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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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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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친숙한 프랑스 작가는 누구일까. 현대 작가 중에서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쓴 프랑수아즈 사강,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안젤리크>를 쓴 기욤 뮈소, 2022년 노벨 문학 수상자 아니 에르노. 그리고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를 시작으로 그의 소설에 푹 빠진 기억이 있다.

베르나르하면 생각나는 작품은 단연 <개미>이다. 스물아홉 살에 발표한 첫 번째 장편소설 <개미>를 통해 베르나르는 프랑스는 물론 한국의 스타작가가 되었다. 2000년 대에 들어서는 매해 새로운 작품이 한국어로 출판되어, 다작하는 성실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방송에도 가끔 나와, 괜히 친숙한 작가로 느껴졌다. 그래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 베르베르의 머릿속에는 이야기로 가득 찬 창고가 있어, 매해 머릿속 이야기를 뚝딱 꺼내 글로 옮기는 게 아닐까?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를 읽으며 그의 호기심이 이야기 창고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작가가 되기까지의 삶이 나름 파란만장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자전 에세이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야기와 베르나르 베르의 탄생, 그리고 학창 시절, 프리랜서 기자 시절을 거쳐 작가로 등단하고 그 후 다작을 거쳐 2022년 예순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가 시간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이에 따라 챕터가 바뀔 때마다 22장의 메인 아르카나 타로카드를 전면에 배치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11번 아르카나: 힘> 카드를 배치했지, 왜 <7번 아르카나: 전차>를 배치했지 뒷 내용을 상상하게 된다.

베르나르의 아버지는 베르나르가 어릴 적에 침대맡에서 잠자기 전 동화를 들려주었다. 그리스 로마신화,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베르나르는 상상을 펼쳤다. 또한 아버지로부터 체스를 배우기도 했다. 이 체스를 통해 수십 년 후 전 러시아 체스 챔피언이었던 아나톨리 카르포프와 체스 게임을 즐기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좋은 것만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아홉 살의 베르나르는 강직 척추염이 발현되고 그 후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병이 발현되어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어머니로부터는 알츠하이머를 물려받을 수 있다고 걱정한다). 베르나르는 아버지로부터 이야기에 대한 열정과 강직 척추염을 물려받았으나, 노란 테니스 공을 찾기 위한 글쓰기 열정을 통해 강직 척추염이라는 고통을 극복했다고 소감을 밝힌다. 즉, 글쓰기는 베르나르의 즐거움이다.

여덟 살 때부터 벼룩에 관한 단편 소설을 쓰고, 열일곱 살 때부터는 작가 프레데리크 다르의 말대로 매일 오전 시간 동안 규칙적으로 글을 썼다. 열일곱 살에 시작한 <개미>는 그 후 12년 동안 십수 편의 수정을 거쳐 스물아홉 살에 출간된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관찰한 개미가 그의 첫 번째 소설의 메인 소재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까지 날아가 마냥 개미 떼를 관찰하고 마냥 개미 떼에게 잡아먹힐 뻔한 사례만 봐도, 베르나르에게 있어 개미는 놀라운 이야기 거리이다.

서른네 살이 된 베르베르는 개미 3부작과 타나토노트, 아버지들의 아버지를 출간한 뒤 안정적인 직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매년 시월 첫 번째 수요일에 새 책을 내기로 스스로 약속하고 그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다. 그의 인생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많지만,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은 아마 작가이자 편집자 렌 실베르와 서른다섯에 만난 영매사 모니크 파랑 바캉이 아닐까 싶다. 좋은 사람은 주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작가가 되기까지 고정직(정규직)을 가진 적이 없다. 그는 사측의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6년 동안 프리랜서 기자 생활을 하며 과학 기사를 썼다. 결국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불합리하게 해고당하면서 그는 <파킨슨 법칙>(어떤 기업이 성장할수록 점점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고용하면서도 급료는 과다하게 지급한다. 고위 간부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능력한 사람을 고용하고, 그들에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매우 많은 급료를 지급하기 때문이다)의 경험자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중에는 일꾼의 수을 늘려도 수익이 정체되기 시작한다는 <일리히 법칙>도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소설가의 자전 에세이라서 그런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많은 소설가들이 그렇듯, 문학을 전공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과학자가 꿈이었으나 성적 미달로 법학과에 갔다는 이야기, 법학과에 흥미를 못 느껴 어쩌다 보니 과학기자가 된 이야기 등, 인생은 섞여있는 카드처럼 어떤 카드를 집을 줄 모른다는 게 재미있다. 그걸 진짜 타로카드를 통해 이야기를 만든 작가도 대단하다.

책 중반부에 한국출판사 <열린책들>과의 인연, 한국을 여행한 이야기와 한국을 작지만 맷집이 강한 나라라고 평한 내용이 웃기고 슬프다. 프랑스인이 보기에도 한국은 맷집이 강한 나라라고 생각되는구나~ 눈썰미가 정확하다. 책 말미에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와, 베르나르의 큰 아들 조나탕 베르베르의 이야기도 간략하게 나와있어 아버지와 베르나르, 아들로 이어지는 그들의 유대가 느껴진다.

2021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꿀벌의 예언>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 보니, 이 책도 읽어보고 싶다.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는 소설처럼 짜임새 있고 재미있는 자전 에세이다. 자전 에세이 재미있게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읽고 참고해도 좋을 거 같다. 물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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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 13일 동안 이어지는 책에 대한 책 이야기
요시타케 신스케.마타요시 나오키 지음, 양지연 옮김 / 김영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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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전 알라딘에서 요시타케 신스케의 신간도서를 펀딩을 하길래 신청했다. 아이랑 같이 읽기 좋은 책 같다. 펀딩이 끝나고 얼마 후 책이 왔다. 책 비닐커버를 벗기니 책 안에 엽서모양의 펀딩자 명단이 껴 있다. 책을 닮은 작은 수첩도 함께 왔다.

 책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책을 좋아하는 왕이 나이가 들고 눈이 나빠져 책을 읽을 수 없자, 두 남자를 성으로 부른다. 그리고 두 남자에게 진귀한 책에 대해 조사하고 이야기해 달라고 한다. 1년 후 두 남자는 왕궁으로 돌아와 13일 동안 왕에게 진귀한 책 이야기를 들려준다. 13일 밤 동안 왕에게 진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설정이라, 천일 밤 동안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천일야화(아라비안나이트) 축소판 같기도 하다.


진귀한 책이라고 하면 진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진귀한 이야기를 담은 책도 있지만, 책 자체가 진귀한 것도 있고, 그 책에 대한 말장난과 수수께끼가 담겨있기도 하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책은 몇권 읽어서 <그 책은>도 이런 느낌일 줄 알았다. 다만, 마타요시 나오키에 대한 정보가 없어 어떤 분이길래 요시타케 신스케와 협업을 했지 궁금했다. 책 뒤 작가소개를 보니 아쿠다가와상을 탄 소설가이자 개그맨이라고 한다. 개그맨과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작가~ 어울린다.


글밥은 많지만 내용이 이어지지 않고, 웃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등이 있어 어린이도 앉은 자리에서 금방 읽었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볼만하다. 그러나 기존의 동화책과 달리 이 책은 유아나 어린이가 읽기에는 조금 어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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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
앨리스 피니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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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임의 승부를 정할 때 주로 사용하는 <가위바위보, Rock Paper Scissors>. 노란 바탕의 예쁜 케이크 표지만 보면 달달한 로맨스물 같다. 그러나 예쁜 케이크에 꽂힌 가위와 파이에 꽂힌 펜촉은 이 소설이 미스터리 스릴러임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남편 애덤은 상승세를 타고 있는 시나리오 작가로 타인의 소설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일을 잘한다. 특히 유명 작가 헨리 윈터의 소설을 시나리오로 각색해 성공한 덕택에, 라이트 부부는 런던의 부촌 햄스테드에 2층 저택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애덤의 진짜 꿈은 자신이 창작한 소설을 영화 또는 드라마로 만드는 일이다. 애덤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힘들게 살았다. 어머니마저 사고로 13살에 돌아가시자, 애덤은 16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극장에서 일을 하며 글을 쓴다. 애덤은 태어날 때부터 안면실인증(안면인식장애)을 갖고 있어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심지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마저 낯설다.

부인 어밀리아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일한다. 그녀는 점점 일 중독자가 되어가는 남편에게 불만이 많다. 대화도 부족하고 둘 사이에 뻔히 보이는 비밀도 불만이다. 어밀리아와 애덤은 둘 사이가 예전 같지 않아 예민한 상태이다.


애덤 라이트와 어밀리아 라이트 부부는 삐걱대는 부부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상담사를 찾아간다. 상담사는 부부에게 새로운 곳에서 둘만 있다 보면 관계가 개선될 거라며 여행을 권한다. 마침 어밀리아는 직장 내 이벤트를 통해 1박 2일 숙박시설 이용권에 당첨된다. 그렇게 둘은 부부관계 개선을 위한 여행길에 오른다.


런데 하필 여행을 떠난 날, 눈앞을 가리는 바람과 폭설이 내리기 시작한다. 30년도 더 된 차 안에서,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도로에서 둘은 또다시 티격태격한다. 관계 개선은커녕 관계 악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숙박시설은 비석으로 가득 찬 음침한 예배당이다. 심지어 마녀사냥을 위한 장소였으며 주변에 인가와 가게도 없다. 불안한 날씨 때문에 정전도 계속된다. 아이 없는 부부에게 아이나 다름없는 늙은 개 <밥>도 불길하게 컹컹 짓는다. 도대체 이 부부는 왜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일까.


각의 독백에 있는 문양을 눈여겨볼 만하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일하는 어밀리아에게는 강아지 문양이, 작가인 애덤에게는 타자기 문양이 있다. 울새를 뜻하는 로빈에게는 울새 문양이, 탐정에게는 돋보기와 지문 문양이 있다.

이야기는 부부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나온다. 그래서 한 상황을 놓고 둘의 속마음을 알아볼 수 있다. 시점이 교차되는 소설의 특징은 한 사건에 대한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실수가, 누군가에게는 살의로 느껴지는 점이 재미있다. 또한, 현재 시점에서 쓴 부부와 탐정 이야기 외에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쓴 아내의 일기가 나온다. 아내의 비밀일기에는 기념일마다 주고받은 물건 문양이 그려져있다.

이들이 말하는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의 조각을 맞춰야 한다. 왜 둘이 폭설이 내리는 먼 지방의 예배당까지 흘러오게 된 것일까. 둘 중 하나만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데, 둘 중 누가 이 판을 짠 것인지, 아니면 제3자가 관여한 건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지나치듯 흘려버린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르면 하나의 큰 퍼즐 조각임을 알게 된다.

 책 제목 <가위바위보>는 애덤이 쓴 소설의 제목이자, 라이트 부부의 암묵적인 게임 방식이다. 항상 가위를 내는 부인을 위해 항상 보자기를 내서 져주는 남편 역할을 통해 둘의 관계 변화를 볼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 진행 중이라니, 음침한 분위기와 애덤의 안면실인증을 어떻게 영상화할지 기대된다.

ps. 이 책을 읽기 전에, 온라인 서점에 나온 출판사 소개글을 먼저 읽었다. 소개글에 이 소설의 반전이 살짝 소개되어 있으니 이 책에 흥미가 있는 분들은 출판사 소개글을 읽지 말고, 부부의 배경만 알고 읽기를 권한다 ^^.

(밝은세상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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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프, 바이 더 시 -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고딕 서스펜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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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프, 바이 더 시 (Cardiff, By the Sea)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중편 고딕소설 모음집이다. 책 제목과 같은 <카디프, 바이 더 시>외 <먀오 다오>, <환영처럼: 1972>, <살아남은 아이>가 실려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가 빠진 고풍스러운 웨지우드 찻잔과 영국의 철학가이자 정치사상가 존 로크의 주장(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난다)이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머리와 눈에 엉겨 붙어 행동을 방해하거나 목에 엉겨 붙어 숨을 막히게 하는 거미줄의 형상이 한동안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고딕소설(Gothic fiction, Gothic novel)은 중세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유럽 낭만주의의 소설 양식의 하나이다. 공포 소설과 로맨스의 요소가 결합된 장르로, 현대 호러 소설의 시조로 볼 수 있는 장르문학이다(네이버 지식백과, 나무위키 참고). 나에게 고딕소설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이다. 둘 다 아름답지만 끔찍하고 처연한 공포가 떠오른다. 조용히 잔잔히 물결치듯 오는 공포말이다.

이 책은 네 개의 이야기로 되어있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20대 후반의 여성, 10대 중반의 여성, 10대 후반의 여성 그리고 20대 후반의 여성이다. 이들은 가족과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정확히 지칭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고 있다. 겉으로는 무심한 듯하지만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또한 양부모에게 다시 버림받을까 두려워 거짓웃음을 짓기도 한다. 민감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예리한 감이 스물스물 기어오르는 공포를 포착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상담하기 어려운 두리뭉실한 공포도 있다. 이 작품 속 여자주인공들은 다른 여자들과 연대하기도 하고, 반목하기도 한다. 어린 남자아이는 지켜줘야할 대상이지만 성인남성은 공포의 대상이다.

에드거 앨런 포를 연상시키는 소설가이자,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중편 소설을 만끽하길 바란다. 실제로 아래 <먀오 다오>를 읽으면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가 연상되기도 한다.

(하빌리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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