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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평점 :
나에게 가장 친숙한 프랑스 작가는 누구일까. 현대 작가 중에서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쓴 프랑수아즈 사강,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안젤리크>를 쓴 기욤 뮈소, 2022년 노벨 문학 수상자 아니 에르노. 그리고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를 시작으로 그의 소설에 푹 빠진 기억이 있다.
베르나르하면 생각나는 작품은 단연 <개미>이다. 스물아홉 살에 발표한 첫 번째 장편소설 <개미>를 통해 베르나르는 프랑스는 물론 한국의 스타작가가 되었다. 2000년 대에 들어서는 매해 새로운 작품이 한국어로 출판되어, 다작하는 성실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방송에도 가끔 나와, 괜히 친숙한 작가로 느껴졌다. 그래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 베르베르의 머릿속에는 이야기로 가득 찬 창고가 있어, 매해 머릿속 이야기를 뚝딱 꺼내 글로 옮기는 게 아닐까?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를 읽으며 그의 호기심이 이야기 창고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작가가 되기까지의 삶이 나름 파란만장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자전 에세이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야기와 베르나르 베르의 탄생, 그리고 학창 시절, 프리랜서 기자 시절을 거쳐 작가로 등단하고 그 후 다작을 거쳐 2022년 예순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가 시간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이에 따라 챕터가 바뀔 때마다 22장의 메인 아르카나 타로카드를 전면에 배치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11번 아르카나: 힘> 카드를 배치했지, 왜 <7번 아르카나: 전차>를 배치했지 뒷 내용을 상상하게 된다.
베르나르의 아버지는 베르나르가 어릴 적에 침대맡에서 잠자기 전 동화를 들려주었다. 그리스 로마신화,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베르나르는 상상을 펼쳤다. 또한 아버지로부터 체스를 배우기도 했다. 이 체스를 통해 수십 년 후 전 러시아 체스 챔피언이었던 아나톨리 카르포프와 체스 게임을 즐기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좋은 것만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아홉 살의 베르나르는 강직 척추염이 발현되고 그 후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병이 발현되어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어머니로부터는 알츠하이머를 물려받을 수 있다고 걱정한다). 베르나르는 아버지로부터 이야기에 대한 열정과 강직 척추염을 물려받았으나, 노란 테니스 공을 찾기 위한 글쓰기 열정을 통해 강직 척추염이라는 고통을 극복했다고 소감을 밝힌다. 즉, 글쓰기는 베르나르의 즐거움이다.
여덟 살 때부터 벼룩에 관한 단편 소설을 쓰고, 열일곱 살 때부터는 작가 프레데리크 다르의 말대로 매일 오전 시간 동안 규칙적으로 글을 썼다. 열일곱 살에 시작한 <개미>는 그 후 12년 동안 십수 편의 수정을 거쳐 스물아홉 살에 출간된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관찰한 개미가 그의 첫 번째 소설의 메인 소재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까지 날아가 마냥 개미 떼를 관찰하고 마냥 개미 떼에게 잡아먹힐 뻔한 사례만 봐도, 베르나르에게 있어 개미는 놀라운 이야기 거리이다.
서른네 살이 된 베르베르는 개미 3부작과 타나토노트, 아버지들의 아버지를 출간한 뒤 안정적인 직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매년 시월 첫 번째 수요일에 새 책을 내기로 스스로 약속하고 그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다. 그의 인생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많지만,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은 아마 작가이자 편집자 렌 실베르와 서른다섯에 만난 영매사 모니크 파랑 바캉이 아닐까 싶다. 좋은 사람은 주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작가가 되기까지 고정직(정규직)을 가진 적이 없다. 그는 사측의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6년 동안 프리랜서 기자 생활을 하며 과학 기사를 썼다. 결국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불합리하게 해고당하면서 그는 <파킨슨 법칙>(어떤 기업이 성장할수록 점점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고용하면서도 급료는 과다하게 지급한다. 고위 간부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능력한 사람을 고용하고, 그들에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매우 많은 급료를 지급하기 때문이다)의 경험자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중에는 일꾼의 수을 늘려도 수익이 정체되기 시작한다는 <일리히 법칙>도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소설가의 자전 에세이라서 그런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많은 소설가들이 그렇듯, 문학을 전공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과학자가 꿈이었으나 성적 미달로 법학과에 갔다는 이야기, 법학과에 흥미를 못 느껴 어쩌다 보니 과학기자가 된 이야기 등, 인생은 섞여있는 카드처럼 어떤 카드를 집을 줄 모른다는 게 재미있다. 그걸 진짜 타로카드를 통해 이야기를 만든 작가도 대단하다.
책 중반부에 한국출판사 <열린책들>과의 인연, 한국을 여행한 이야기와 한국을 작지만 맷집이 강한 나라라고 평한 내용이 웃기고 슬프다. 프랑스인이 보기에도 한국은 맷집이 강한 나라라고 생각되는구나~ 눈썰미가 정확하다. 책 말미에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와, 베르나르의 큰 아들 조나탕 베르베르의 이야기도 간략하게 나와있어 아버지와 베르나르, 아들로 이어지는 그들의 유대가 느껴진다.
2021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꿀벌의 예언>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 보니, 이 책도 읽어보고 싶다.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는 소설처럼 짜임새 있고 재미있는 자전 에세이다. 자전 에세이 재미있게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읽고 참고해도 좋을 거 같다. 물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