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는 "냉정과 열정사이 rosso"를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고, 내가 에쿠니 가오리를 알게 된 작품도 그 것이었다. 또한 동명의 영화가 2000년대 초반 국내에 개봉되어, 한 때 나는 피렌첸 두오모 성당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기도 했었다.
이 책은 2003년 130회 나오키산쥬고상(줄여서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2004년 한국에서 출간되었고 2022년 올해 리커버판으로 나왔다.
2004년 국내 출간 당시 표지는 작가의 사진이 들어간 표지였는데. 현재 리커버 표지는 단편 "울 준비는 되어 있다"의 아야노와 다카시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아야노가 머릿속에서 상상한 장면과 그녀의 감정을 나타낸 것으로 보여진다.
이 소설은 12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앞표지를 넘겨 단편의 제목을 훑어보고 그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본 작품이 나오기 전에, 인트로처럼 아래 문구가 나온다.
나는 다카시 친절함을 저주하고 성실함을 저주하고 아름다움을 저주 하고 특별함을 저주 하고 약함과 강함을 저주했다.그리고 다카시를 정말 사랑하는 나 자신의 약함과 강함을 그 백배는 저주했다. 인트로, p191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중에서
다카시와 다카시를 사랑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둘의 관계가 너무 궁금해서 단편 "울 준비는 되어 있다"부터 읽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혹시 이야기가 앞에서부터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싶어 그냥 처음부터 읽기로 했다.
지금 야오이는, 슬픈 것은 말다툼이 아니라 화해라는 것을 안다. p17 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겨지는 것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적당히 화해하야 할 때가 있다. 이럴때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지만 속으론 그게 진짜 슬픈 일인 걸 살면서 겪어왔다. 작가 또한 똑같은 이야기를 해서 공감이 갔다.
이 책을 읽으면 술과 여자와 완성되지 않은 사랑을 쭉 늘어놓은 하나의 소설같은 느낌이 든다. 그녀와 그녀의 사람들은 맥주를, 솔티 도그를, 진 토닉을, 샴페인을, 이름 모를 고급술을, 그라파를 ,포도주를, 피란 리큐르를, 워커를 마신다. 즉, 12개의 단편이지만, 그 단편 속의 그들은 술을 마시거나 무언가에 취한 듯 행동한다. 그리고 모두들 완성되지 않은 사랑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사랑을 확신하는 이들은 언젠가 사랑이 끝나지 않을까 불안을 느낀다.
결국 누군가는 불안을 이기지 못해 곁에 있는 이를 떠나거나 떠내보내고, 누군가는 지금껏 살아왔듯이 그냥 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은 말이 되는 순간에, 내가 하고 싶었던 말 -말 하려고 했던 것, 아무래도 상관없는, 또는 별 재미 없었던 나날들-과는 전혀 다른 무엇이 되고 만다.p39 뒤죽박죽 비스킷 중에서
인생은 연애의 적이야.p53 열대야 중에서
보호한 기억은 늘 윤곽이 애매하고, 보호 받았던 기억만이 가슴을 파고 든다.p96 생쥐 마누라 중에서
나는 혼자 사는 여자처럼 자유롭고, 결혼한 여자 처럼 고독하다. p115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 중에서
자유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고독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p165 손
그것은 저승사자를 자두나무 꼭대기에 매달아 두고 오래오래 살았다는 어떤 할머니 이야기다. 덕분에 죽음을 앞둔 병자와 죽고 싶어 하는 사람마저 죽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한다. p183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중에서
에쿠니 가오리의 이 소설은 외부로 드러나는 큰 사건이나 사고가 없다. 사람들 마음을 들여다 보고 그 마음의 파장을 잔잔히 써내려간다. 그래서 그녀는 세련된 감정화법을 쓰는 여류작가라고 평하나 보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와 비슷한 느낌의 책을 원한다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장미 비파 레몬"도 한번 권하고 싶다.
https://youtu.be/TRwtM6bHkKk (담배나오는 여자에 소개된 곡 "Lullaby of Broadway")
자유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고독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 P1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