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사랑 1
한혜연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한혜연이란 만화가를 눈여겨 본 적은 없다.
그는 눈에 띄는 작가는 아니었다.
투철한 작가 정신이 빛나는 김혜린이나 김진 류도 아니었고,
고전적이면서도 풍성하고 다채로운 내용으로 장편 대작들을 척척 완성하며
그야말로 만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황미나와 신일숙 류도 아니었으며
화려한 그림체와 속사포같은 대사, 완벽한 남자 주인공을 내세우는 원수연도,
10대의 불안정한 정서를 성숙하고 멋지게 표현하는 이빈도,
공주틱한 만화의 튼튼한 뿌리와 줄기, 잎까지 여전히 홀로 유지하는 것이 거뜬한
한승원도, 돌발적인 유머감각을 자랑하며 단숨에 입지를 굳힌 한승원의 시동생-
김동화의 동생이라는 김기혜도, 태풍의 눈 천계영도 아니고,
대단히 독특한 가치관을 투영해 내는 우리의 이정애도 아니었고,
고만 고만한 중단편을 그리는 작가였으니까.

한혜연은 연재할 때 한회 한회가 너무나 기다려져 펑크를 내면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날 정도록 정신없이 빨려 들어가거나 흡인력 있는 작품을 그린 적은 없다.
그런데 그의 만화는 마치 단편 소설이나 수필을 읽는 것처럼 묘한 울림이 있다.
그의 만화는 잡지를 펼쳤을 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작품은 아니다.
그의 만화는 연결되는 내용을 알기 위해 황급히 보기보다는 오히려 차분하게
다른 만화를 다 본 다음에 다음 잡지가 나올 때까지 몇번이고 다시 보게 된다.
그의 만화는 연재라기 보다는 한 편이 하나의 미완성인 듯 하면서 독립된 내용과 테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나중에, 가장 여러번, 가장 오래도록 보게 되는 작품이 바로 한혜연의 작품인 것이다.
그의 그림은 또 마감에 쫓기는 인기 작가들과 달리 언제나 한결같다.

한혜연을 눈여겨 보기 시작한 것은 <금지된 사랑>부터이다.
이슈나 윙크, 화이트 등에서 작품을 연재하던 시기와 달리 한혜연은
지금은 폐간되었지만 20대를 위한 만화잡지를 표방한 <나인>을 만나면서
180도 달라진 성장과 성숙을 보여준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처음부터 그런
느린 호흡과 깊은 울림이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금지된 사랑>은 2권짜리 중편이다.
평범한, 아주 평범한 두 여자의 일상적인, 정말 일상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이 만화를 몇번이나 본 것 같다. 지치고 힘들때.
왜냐하면 그들의 이야기가 나와 겹쳐지는 적이 종종 많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를 때 그냥 같은 상황에 있는 만화의 주인공들의 보는것만으로많은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하나씩 늘어날 수록 작품에 대한 이해는 어졌고 만화는 단순한 엔조이용이 아닌 소장용이 되었다.
2권이라는 분량은 군더더기 없이 똑 떨어진다.
어쩌면 그녀의 만화는 지루할지 모른다. 그리고 만화적 판타지는 등장하지 않아
재미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만화에는 꽃을 배경으로 한 미남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만화는 지극히 일상적인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지나치게 덤벙거리고 절벽 가슴을 소유했지만 휘황찬란한 남성에게 사랑받은 여성이 아닌,
거울을 보는 것처럼 우리와 닮아있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없는 주인공.
하지만 입맛과 오감을 사로잡는 한 조각의 달콤한 케이크보다는
언제먹어도 한결같은 한 그릇의 정성어린 칼국수가 더 안질리는 법이다.
시간이 있을 때, 한잔의 차를 앞에 놓고 느긋하게 그녀의 작품을 즐겨보라.
그녀의 작품은 몰입하거나 숨가쁘지 않게 느긋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도 일단 손에 잡은 이상 끝까지 안 읽고는 못 베길 것이니...
편한 옷으로 편한 자세로 편안한 공간에서 가장 좋아하는 차를 머그잔 가득
따라놓고 천천히 오래오래 그녀의 작품에 빠져보기 바란다.^^

그녀의 다른 작품으로는 삼풍백화점을 소재로 한 <아마존-아름다운 마지막 존재>가
1권까지 나와있다. 1권이 나온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잡지 폐간 때문인지 다음
이야기가 나올 생각을 안한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작품이 꼭 완성되길 나는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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