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의 노트 -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신혜우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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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디자인을 보고 감탄한 건 오랜만이었다. 표지도 정말 아름답지만 삽입된 일러스트 하나하나 굉장히 섬세하고 따뜻해서 넋 놓고 감상하게 된다. 책갈피용 끈도 책 분위기와 굉장히 잘 어울리고, 폰트도  책 제목이 말하듯 누군가의 '노트'를 읽어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장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책이다. 물론 선물하기에도 근사한 책이다.

 

자연도감, 과학서이면서 식물학자의 에세이기 때문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자신의 전공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글꼭지마다 우리가 식물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나 교훈을 읽을 수 있는데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들이라 신선했다. 그만큼 식물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책이다. 덕분에 내가 식물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었다. 한 달 전 작은 화분을 사 바질과 방울토마토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하루하루 커가는 식물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을 이 책 덕분에 더욱 풍부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총 다섯 챕터로 이루어져 있으며 챕터마다 5~8개의 노트가 수록되어 있다. 주제도 소재도 다양한 노트들이라 뼛속까지 문과인 내가 과학서를 읽는데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해당 식물의 서식지, 번식 방법, 외적인 특징 등등 식물학적인 지식도 충분히 들어있지만 그 식물과 관련된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또 최초의 나무가 고사리였다든가, 침엽수와 상록수도 낙엽이진다든가, 냄새를 맡고 다른 생물에 기생하는 식물이 있다든가 하는 재미있는 사실들도 알게 되었다. 이 책 한 권만 꼼꼼히 읽어도 길을 가다 발견할 수 있는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많아질 것이다.

 

식물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우연히 뿌리를 내린 곳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사는 소극적인 생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식물이 가장 진화한 생명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움직이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가진 식물들은 꽃을 피우고 번식하기 위해 어쩌면 동물보다 더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현명한 전략을 택하여 스스로 진화해온 것이다. 정말 신비한 생물이다. 인간중심적 사고를 최대한 내려놓고 식물에 이렇게 관심을 기울인 적이 처음이라 뜻깊은 독서였다. 

 

중요한 건 일찍 꽃을 피우는 것보다 나에게 맞는 시간에 꽃을 피우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아닐까요? (P39)

식물의 세계에서 강하다는 말은 힘이 세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가를 뜻합니다. (P99)

빛을 사냥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쓴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P204)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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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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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대인 박해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는 독일을 배경으로 하는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의 <여행자>는 독일의 비극적 역사를 기록한 초기 문학적 증거가 되는 일종의 고발문학이다. 발행인 후기를 보니 저자의 자전적 경험도 담겨있는 듯 해 더 마음이 아픈 소설이다.

유대인인 것이 외적으로 티가 나지 않는 오토 질버만을 주인공으로 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 외모 덕에 다른 유대인들처럼 쉽게 체포되지 않고 독일 곳곳으로 도망다니지만, 잠재적 위협을 피하는 도주는 잠조차 편하게 자지 못할 정도로 모든 것을 의심하고 간단한 결정조차 쉽게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를 쫓아오는 물리적 실체가 없기에 그는 자신을 '끝 없이 계속 움직이는 여행자'라고 생각하려 하지만 거대한 제국을 상대로 한 절망적인 도주일 뿐이다.

이전까지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부유한 사업가 질버만은 하루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되고 독일 철도를 떠돌아 다니며 많은 당원들과 유대인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질버만은 그에게 아무렇지 않게 유대인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유대인처럼 보이는 당원을 만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과 질버만의 외모는 외모로 유대인을 색출하고 체포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자의적인지 보여준다. 때로는 질버만조차도 유대인 혐오를 내재화하는 것을 통해 사회 전체가 가하는 혐오가 가지는 폭력성을 잘 드러낸다. 

지금까지 안락한 삶을 살아왔던 질버만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드라마틱한 탈출기가 메인이 되는 소설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의 도주 또한 당시 유대인의 처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사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부분보다 서류 가방을 분실한 후 파출소에 신고하러 갔을 때의 상황이 질버만의 처지를 더욱 잘 보여준다. 공권력을 무기로 힘 없는 개인을, 특히 박해 당하는 유대인을 무너뜨리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책이 얇지는 않지만, 한 챕터씩 몰입해서 읽다보니 생각보다 금방 읽을 수 있었다. 가끔씩 이런 문학적 증거를 통해 아픈 역사를 재기억하고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는 것이 우리가 독서를 통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체포되지 않았고, 재산 일부도 건졌어. 그런데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상 이미 체포된 거야. 유대인에게는 제국 전체가 넓은 강제수용소에 불과해. (P134)

이건 단순한 도주가 아니라, 절망과의 경쟁이니까. (P186)

모든 게 달라졌어. 마음의 안정을 잃어버렸고, 삶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우연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주체에서 객체가 된 것 같아. (P287)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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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 극단의 세상에서 나를 바로 세우다
법인 지음 / 김영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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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법인 스님이 5~6년 전 발표하신 글 부터 아직 발표하지 않은 글 까지 짧은 글을 모아놓은 산문집이다. 출가 수행자가 쓴 글인만큼 불교 교리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읽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불교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쉽게 읽을 수 있다. 물론 기존에 아는 것이 있다면 그 뜻을 더 깊게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며 40년 이상을 수행자로 살아오신 분도 일상에서 늘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깨달음을서 얻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1부 '사는 일'은 주로 저자 본인과 타인의 일상 속 깨달음 이야기다. 찻잎을 따고 감자를 캐는 노동에서도 의미를 찾고 아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존경스럽다. 또 나의 삶, 이야기, 감정만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확장하여 사회 곳곳에 일어나는 부조리하고 안타까운 일에 대한 의견도 제시하신다. 이는 2부 '세상 일'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수행자의 마음으로 진단한다. 최근 이슈 뿐만 아니라 2021년에 점점 잊혀가는 일들을 종교적 성찰의 말씀과 함께 돌아볼 수 있는 챕터다.

 

3부가 가장 '불교스러운' 챕터였는데, 그만큼 읽는 동안 잡념이 조금이나마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부처님의 말씀이 가장 많이 수록된 챕터이다.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배우는 사상으로서의 불교만 접할 수 있어 '출가'나 '수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세속과의 거리감이 불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마지막 챕터를 읽으면서 불교나 불교 수행자들이 세간 일에 가지는 관심과 진단, 지혜 등이 생각보다 더 깊고 본질을 꿰뚫는다는 생각을 했다. 책의 제목 '중심'은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시민 수행자'로서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으며, 그름을 배격하되 끝내 함께 가겠다는 애정을 포기하지 않는 삶(p193)'을 흔들림 없이 지향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싶다. 

 

시험기간에 읽어서 그런진 몰라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템플스테이를 꼭 해보겠다고 한 번 더 다짐했다. 차담을 나누며 '보는 풍경'이 아닌 '보이는 풍경'을 발견하는 기쁨을 경험해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보는 풍경'은 그저 똑같은 사진으로 남고, '보이는 풍경'은 저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 다다른다. (P49)

슬픔과 아픔은 당사자가 감내하는 무게다. 위로와 사랑은 오직 곁에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P191)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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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라 그래 (양장)
양희은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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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바깥의 일상을 소중히 하는' 가수 양희은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다. 가제본을 제공 받아 읽어 정식출간된 책의 표지와는 약간 다르지만, 표지의 양희은님의 얼굴 일러스트를 보면 양희은님 특유의 목소리와 톤으로 "그러라 그래"라고 하는 게 귀에 들리는 듯하다. 책에서 직접 언급하시는 것처럼 미디어에 비춰지는 양희은님의 모습은 '목소리가 일단 크고 ,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 그런지 단호하고 깍쟁이 같고 당당한(p233)'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책의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일과 주변인, 일상에 대한 사랑은 그가 생각보다 말랑하고 따듯한 사람임을 알게 해준다. 

 

위에서 '말랑'하다고 표현했지만, 말랑하면서도 단단한 것이 이 책과 저자의 매력이다. 나이가 들면 웬만한 일에 흔들리지 않게 된다고 한다. 요즘 하는 고민 중에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되어도 어른답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고민이 있다. 이 책은 서른이 되어도 여전히 흔들리지만 적어도 10대, 20대와는 다르게 세월만큼 버티고 선 느낌이 든다고 한다. 51년 째 같은 일을 하고 계신 일흔의 저자의 말이라면 믿어볼 만 한 것 같다. 더 단단해질 내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꼭 저자처럼 서른이 되기 전 긴 여행을 떠나보겠다고 다짐했다. 나와 같은 이유든, 다른 이유든 나이 드는 것과 세월이 흐르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에세이다. 

 

이렇게 말하면 실례일지 모르겠으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 하고 가슴이 철렁하기도 한 에피소드가 종종 있었다. 살아오신 인생이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져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다이나믹하다. 찢긴 악보를 줍고서 가수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이야기,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이야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와 가감없는 감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기록해두고 싶은 재치있는 문장들도 많았다. 

 

출간 전 가제본을 받아 읽어본 책인만큼 특별한 경험이 되었고, 에세이라는 장르의 매력 또한 알게 되었다. 어느 나이대의 주변인에게 선물해주어도 좋을 부담 없는 에세이다. 짧은 에피소드가 많이 수록되어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어 조금씩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강을 건너기 전에 내 것을 나누고 정리하는 것도 용기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가 보다.(p49)
작은 돌부리엔 걸려 넘어져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 없다고, 뭐 엄청 대단한 사람이 우리를 위로한다기보다 진심어린 말과 작은 눈빛이 우리를 일으킨다는 걸 배웠다.(p62)
뉘 집 담장 구석에 미니 라일락이 피어 애잔한 저녁녘에 그리울 게 없는데도 마냥 그리운 향기를 바람결에 흘려보내고 있었다.(p187)
일 바깥의 일상을 소중히 하는 것, 그것이 내 일의 비결이다.(p220)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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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짐을 안고 있는 당신에게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민경욱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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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여러 이유로 마음의 짐을 안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간단한 심리 테크닉을 알려주는 책이다.

사실 나는 평소 심리적으로 안정적이고 '짐'은 없는 편이라고 생각해서, 이 책이 엄청나게 와닿거나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마음의 짐은 진로, 학업 같은 크고 무거운 짐보다는 우리 현대인이 늘 지고 다니는 가벼운 짐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큰 고민이나 불안감이 없어도 이 책을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무슨 옷을 입을지, 어떤 식당에 갈지 같은 일상적 결정에서 너무 많은 선택지를 가지면 그렇지 않을 때 보다 내 선택을 더 후회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우리는 인터넷, sns 등을 통해 얻은 정보와 선택지로 우리 스스로에게 야금야금 짐을 지어주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모든 현대인들에게 꽤 도움이 될 책이라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현대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 예시로 우리의 심리를 진단하고, 관련된 심리학적 지식이나 연구 결과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제시하는 심리적 테크닉들은 아주 명쾌하고 실천가능하다. 분노의 감정이 치솟을 때 그저 90초만 기다리는 것, 정원 가꾸기를 포함한 찰흙 놀이 등이 있다. (실제로 요즘 화분에 직접 흙을 담고 씨앗을 심으면서 소소한 힐링을 하고 있어서 신기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고 실천해 보고 싶은 것은 감정에 점수를 매기는 것이었다. 가장 평온한 상태인 0점에서 가장 화난 상태인 10점까지, 자신의 감정을 점수화하다보면 점점 점수가 낮아질 것이라고 한다. 정말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는 일에 10점을 주고 나면, 다른 웬만한 일들은 '그때에 비하면 뭐' 하는 마음으로 2, 3점을 주게 된다고 한다. 점수가 낮아지다 보면 의식적으로라도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덜 표출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표지 일러스트 뿐만 아니라 속지에 삽입된 일러스트들도 정말 귀여워서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또 각 챕터 마지막 페이지 하단마다 해당 챕터의 핵심 심리 테크닉이 명료하게 적혀 있어 나중에 찾아볼 때도 편할 것 같다. 

 

대부분의 감정은 한동안 그대로 두면 보통 차분해집니다.(p78)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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