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다가 문득 든 생각. 비주류가 뭘까?
비주류.
주류, 라는 말이 지금 나에게 왠지 모를 얄미움이 있다. 인기가 많고 돈도 많고 공부도 잘하는 다른 별에 사는 고등학생처럼, 어쩌면 항상 정직하고 예의바른데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재미없지 않은 이런 이미지. 그에 비해 비주류는 번개머리에 껄렁껄렁하고 시덥잖은 소리만 하고 항상 인기있고 싶은데, 그리고 또 좋아하는 여자도 있어서 그 여자한테 잘보이려고 하면 할 수록 밉상이 되는, 그런 불운의 이미지. 라고 하면 될까?
영화계에서는 (위의 쓸때없는 묘사와는 다르게) 김기덕, 이라는 거대한 비주류가 있다고 한다. 그가 비주류라면 주류/비주류의 기준은 무엇일까? 충무로와 김기덕? 잘 생각해보면 비주류라고 칭해질 수 있는 어떤 것(그게 사물이든 사람이든)들은 항상 주류로부터 인정받는다는 사실이다. 주류가 싫어 비주류가 되려고 노력했든, 주류가 되지 못해 비주류가 되려고 노력했든 언제나 그들이 비주류로 머물 수 있는 것은 주류의 인정, 혹은 선택 때문이다. 그 증거가 바로 앞에서 예를 든 김기덕 감독인데, 만약 그가 영화제 수상경력이 없었더라면 그는 영화계 - 비주류가 아닌 비영화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탓인지 그의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순수한 존경이 없는 듯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김기덕 감독님 영화는 어때요? 라고 묻는다면 아, 그 사람 영화는 강렬하고 좋은데 뭔가 좀.. 이 뭔가 좀이 바로 비주류에게 걸리는 어떤 것이랄까?
여자, 성소수자, 유색인종, 장애인, 혹은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처음에는 박해의 대상이었다가 시대가 변하고, 그 변함의 증거를 내밀듯 그들의 위치가 보호의 대상이 되었다. 누구나 말한다. 여자들과 남자들을 차별하지 말자고.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너무 많이 당해왔으니까. 마치 이런 느낌이다. 나는 너를 차별하고 싶지만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차별하지 않을 거야. 도덕이라는 것, 상식이라는 것이 예전의 부당함을 가로막는듯한 모습. 여기에는 평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본 영화에서 레즈비언인 여자에게 형사가 묻는다.
여자들은 뭘 하나요?
무슨 질문을 하고 싶으신거에요?
여자들은 어떻게 하나요?
그걸 꼭 답해야 하나요?
아니, 아니,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서요.
손으로 해요! 하나로! 두개로! 세개로! 씨발새끼.
여기에서, 남자는 절대 여자에게 형사의 심문이라는 공권력을 들이대지 않는다. 그건 정말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기 때문에. 폭력은 이렇게 변질된다. 공적인 것에서 사적인 것으로.
사람들에게 물어본적이 있다. 너는 왜 동성애를 싫어하느냐고. 대답은 다양하지만 그 중 제일 터무니없는 대답은 그게 정상적이라는 것이었다. 그게 정상적인거야. 너는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자는 것이 상상이 가? 그건 비정상적인거야. 세상이 그걸 허용하면 애들은 어떻게 낳고? 그러다 인구가 줄어서 세상이 망하는거야. 라는.
엄청난 비약에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만 나는 거기에서 남자와 여자가 잔다, 라는 것에는 납득했던 것 같다. 성기와 성기의 결합만이 완전하다는 것은. 그런데 누가 알겠는가, (비약하자면) 수 많은 방법으로 여자와 남자는 결합할 수 있는데(예를들어 손)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성기와 성기의 결합만이 완전한 어떤 것이라는 주장만 사라지면 그 사람은 여-여, 남-남의 섹스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내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아닌데 나는 남녀의 섹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그게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이냐는 문제는 별도로 나에게 섹스는 항상 그 섹스라는 단어 + 어떤 것, 이라는 공식으로 항상 무언가가 딸려들어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