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인 로봇적인 - SF팬의 생활에세이스러운 SF소설 리뷰
이유미 지음 / 봄날의박씨 / 201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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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내가 즐겨보는 언론의 신간소개기사를 통해 이번에 읽을 책이 선택되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이 이와 같은 경우다.

몇주전 시사인을 보던중 신간소개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SF소설 비평집?

어? 앞으로 읽으려고 하는 책중에 『시녀이야기가 SF소설 아니던가? 

최근에 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SF소설이었고..

그유명한 테드창의 『숨』도..

아 맞다. 영화보고 샀다가 아직도(?) 깨끗이 모시고 있는 『마션도..

그래 이 책을 읽어야할 이유가 충분하구만.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쓴 글은 제3자가 읽어도 사랑스러움이 간접적으로 느껴진다. 

SF영화만 봤지 SF소설은 1권도 안읽은 나조차도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SF소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질 정도니 말 다했지.


내가 정말 알아야할 모든.. 아아니 '많은' 것들은 SF소설로 배웠다는 저자는 초등학생시절부터 SF소설을 읽어왔던 'SF 열혈팬'이다. 

이 책에는 자신의 일상과 연결해 22편의 SF소설을 소개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마션』도 나오고 왕좌의 게임으로 잘 알려진 조지 쌍알(RR)마틴의 책도 나오지만.. 전체적으론 나에겐 새로운 책들이다.


책에서 소개한 몇가지 인상깊었던 작품을 고르자면 

할머니와의 일화를 통해 소개된『노인의 전쟁』

젊음을 희망하는 노인들의 욕망을 절묘하게 이용해 의료적으로 강인한 신체를 개조시켜줌으로써 외계와의 끊임없는 전쟁에서 필요한 인적자원의 충원에 성공해서 병사로 합류한 (개조된 젊은 신체를 가진)노인들이 우주에서 외계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안드로이드 로이 바티가 제 창조주를 대면하는 장면이 좋았다. 그는 제게 '사물'의 운명을 부여한 안드로이드 제조사 타이렐 사의 회장을 살해하는 데, 총을 쏘거나, 칼로 찌르거나, 완력으로 목을 부러뜨리는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두 손을 내밀어, 마주한 얼굴을 비통하게 어루만지다가, 천천히 두 눈을 짓이겨 버린다. 엄지손가락으로 오만한 눈알을 터뜨려 버릴 때, 그것은 단순한 복수를 넘어 세상을 향한 통렬한 시위가 된다. 인격과 자의식을 갖춘 한 존재를 어엿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자, 그 방자한 시선을 영원히 거두라!

(p. 161)


저자는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소개하며 이 원작의 영화작품인 『블레이드 러너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하필 안드로이드가 창조주 인간을 두 눈을 짓이겨버리며 죽이는 장면에 눈길이 갔을까?

왜 방자한 시선이라고 했을까?

뒤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 글이 이렇게 흘러간 데에는 연유가 있습니다.

(…)

물론 이성의 몸이란 매혹적인 관음의 대상입니다. 저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아요. 하지만 양식 있는 인간이라면 다른 인간의 몸을 그렇게 대놓고 쳐다보지 않겠죠. 몸에 맞지 않는 스키니한 삼선 추리닝을 입는 바람에 아랫도리가 볼썽사납게 툭 불거진 남성들을 저도 많이 보지만, 그들이 무안해질까봐 사타구니로부터 재빨리 시선을 돌립니다. 몸을 보든 국부에 눈이 가 닿든, 당사자가 불쾌하지 않게끔 시선을 단속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고 존중이니까요. 눈알맨들의 문제는 그걸 안 한다는 점입니다. 신체를 반히 쳐다보는 행태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 어떨지 전혀 개의치 않아요. 저는 그 시선에서 그들 스스로 설정하고 있는 위계를 느낍니다. '나는 남자다. 연장자다. 그래서 내가 더 우월하고, 내가 더 '진짜 사람'에 가깝다.'

 제가 눈알맨들의 회사 회장님이었다면 감히 그렇게 쳐다보지 못했겠죠. 월세 받아가는 집주인이기만 해도 못 그랬을 거라는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 뻔뻔한 시선은 상대가 대등한 인격체임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화를 내며 안드로이드 로이 바의 엄지손가락을 떠올리곤 하는 거죠. 실소도 나오지 않을 이유로 우의를 점하고 방약무도하게 구는 자를 붙들어 그 알량한 두 눈알을 콱 터뜨려 버리는 전복을. 

 자, '진짜 인간'따위, 엿이나 먹으렴.

(p. 167~168)


저자는 헬스클럽에 갔다가 맞닥드린 여러 눈알맨들과의 일화를 통해 『블레이드 러너의 안드로이드 로이 바의 엄지손가락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 유명한 『블레이드 러너』와 원작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조차 전부 보지는 못햇지만 이 글을 읽고 다 보고 싶어졌다.



마지막으로 숏커트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며 앤 레키의 소설 『사소한 정의』를 말했다.


『사소한 정의』가 가장 짜릿하게 빛나는 지점이 여기에 있었다. 앤 레키는 성별을 바탕으로 이미지를 형성하는 관습적인 독서 패턴을 그 어떤 정서적인 호소도 없이 기술적으로 차단해 버린다. 아주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인칭대명사를 전부 여성형으로 통일시켜 버린 것이다. she, her, her's. 모든 사람을 '그녀'로 지칭하는 이 간단한 비틀기가 사고의 전개에 일으키는 이물감은 상상 이상이다. 처음에는 등장인물이 다 여성뿐인가 했다가, '그녀'들이 서로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 이르면 '레즈비언 SF'인가 했다가, '그녀'라고 지칭된 인물의 생물학적 성별이 명확히 '남성'으로 설명되는 대목을 몇 번 맞닥뜨리고 나서야, '아‥‥'하는깨달음이 찾아온다. '사람'이라고 하면 무심코 남성을 상정하던 관성을 벗어나, 그냥 중립적인 '사람', 혹은 오히려 살짝 여성으로 기울어진 이미지로써 대상을 수용하는 감각, 관점, 사고방식을 이렇게 효과적으로 시뮬레이션 해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남성이나 여성으로 특정하지 않으면서 등장인물들을 판단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게 되는 것은 신선하고도 즐거운 경험이다. 

 (p.198 ~199)


이 소설을 좋아할 이유야 얼마든지 댈 수 있지만, 내게 각별했던 이유를 대자면 역시 다시 숏커트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인물들의 활약과 매력에 있어 각자 성별은 전혀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내용 속에, 문체에, 심지어 문법에까지, 끈질기게 녹여내고 설득해 내는 와중에도 작가가 성별이 각자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 또한 놓지 않는다는 점이 나는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이 세계에서는 남성과 여성 어느 한쪽이 딱히 우월하다는 관념이 없고, 사회적으로도 성별을 준거로 하는 차별이 전혀 작동하지 않지만, 성별을 오인하는 것은 명백히 실례가 되는 일이고, 사람들은 그런 일을 당할 떄 어김없이 불쾌해 한다!

(p. 199)


이런 책이 있었나? 찾아보니 『사소한 정의』이후에 『사소한 자비』,『사소한 칼』로 이어지는 라드츠제국 3부작 이라고한다. 



SF세계야 말로 혐오와 차별, 배제, 부당함이 존재하는 현재를 벗어나 기존의 것들을 마음껏 전복시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해볼 수 있는 곳이다.

SF소설에 대한 애정이 듬뿍담긴 글 덕분에 눈길조차 가지 않던 SF계로 발을 걸쳐볼까하는 용기가 생겼다. 

그 의미로 보관함엔 소개된 몇권의 책이 어느새(응?) 옮겨져 있다.

(결국은 읽는다는 소리보다 기승전-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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