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 방구석 미술관 2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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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방구석 미술관2》

별다섯개도 모자란다.
⭐⭐⭐⭐⭐+🌟🌟

#이중섭 (흰 소, 19160410~19560906)

‘한국의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동요를 들으면 황소 그림 중섭이란 가사가 있다.
이렇듯 이중섭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알 것이다. 그림은 몰라도 황소 그림=이중섭이란 수식어가 성립한다.
가장 유명한 그림은 흰 소.
그는 한평생 아내와 두 아이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전쟁으로 일본으로 피신 가있는 아내와 두 아이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전시해서 번 돈으로 같이 만날 생각을 하며 그림에 몰두하여 자는 시간 빼곤 계속 그림을 그린다. 전시회가 열리고 그림은 팔렸으나, 그 당시는 사회적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아 대금을 받지 못한다. 결국 그림으로 돈 벌어 가족과 상봉하려는 꿈은 무너지고, 우울증에 정신 분열까지…. 결국 남은 그림은 지인을 주고 도둑들에게 강탈당하고 다 불태워버리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생을 마감하는 비극으로 끝난다.

#나혜석 (화령전 작약, 18960428~19481210)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다.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서양화를 들인 한 명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렸다. 일본으로 미술 유학을 하였으며 우리나라의 서양화로 가져온 인물 중 하나다.
그림만 최초가 아니다. 나혜석은 글도 수준급으로 잘 썼으며 그의 가치관과 이념, 20세기 초 우리나라의 비판적 시각을  소설로도 썼다. 그 소설이 <경희>라는 작품으로 한국 최초 여성주의 문학 작품으로 기록되어있다. (미술사가 아닌 문 학사에도 기록)
이거 말고도 최초의 타이틀은 많다. 조선 여성 중 최초로 세계 일주도 하였으며, 서울에서 최초로 유화 개인전도 전시했다.

독립운동도 했을 만큼 깨어 있는 신여성으로 한국의 조혼제도, 가부장적 제도, 이혼은 꿈도 못 꾸는 세상에 비판적 사고를 글과 그림으로 세상에 맞섰다. 그런 그가 세계여행 중 남편의 지인과 외도를 하며  급격히 추락한다.
결국 세간의 비난과 분노를 이기지 못해 함묵증, 수전증, 우울증 등이 찾아오고 결국  무연고자 신분으로 사망한다. (사인은 영양실조, 실어증, 중풍)
그녀의 끝은 암울했지만, 우리나라 서양화의 선구자이며 여성주의 미술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이응노 (군상, 19040112~19890110)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적인 예술가라고 하면 백남준 작가를 많이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세계에서 이름을 알린 작가가 이응노 작가다. 위에 둘과 마찬가지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글과 그림을 일찍부터 쓰고 그렸으나, 이응노의 아버지는 그림은 상놈이나 그리는 것이라며 반대하자 결국 몰래 서울로 상경하고 그 당시 서화(동양화)의 대가인 김규진 집에 찾아서 그의 제자가 되어 서화를 배우기 시작한다. <청죽>이라는 작품을 보면 스승 김규진 풍죽도와 화풍이 거의 흡사하다. 그 이후 서양화가 일본에서 막 들어오면서 서화는 옛날 그림이라는 의식이 강해지는 시기에 서양화를 접목한 동양화를 그려 이응노‘st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황량이라는 작품을 보면 딱 느껴지고, 그 후, 프랑스 등 유럽에서 활동하던 이응노는 간첩으로 오인당하는 사건에 휘말리며 2년 반 옥살이를 한다. 그러면서 간첩 작가라는 딱지가 붙고 입국 금지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전시 및 상업활동이 금지되고 결국 프랑스로 귀화하지만, 결국 조국을 잊지 못하고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한다.

🔖p.126 예술가의 사명은 새로운 가치 창조에 있다. 예술가 자신만이 발견할 수 있는 경지이며, 세계에 그 새로운 가치를 그만이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유영국 (작품work, 19160407~20021111)

표현의 자유를 위해, 억압당하는 일제강점기 시기 한국 민족의 이념과 정신을 지배하려던 민족말살정책(창씨개명, 조선어 사용금지, 일본 신사참배  등)에 반대하며 학교도 그만두고 예술을 시작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하러 가서 추상화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다. 일본 유학 당시 이중섭과도 같은 학교에 다니며 친해지고, 훗날 다시 한국에 와서 '신사실파'를 창립하고 예술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후배 미술가들이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생태계를 개선했다.
해방 당시까지 한국미술계에서 주류로 여겨지던 서양화풍은 전통적인 고전주의와 모네의 인상주의가 혼합된 경향이었다.
유영국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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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욱진 (가로수, 19711126~ 19901227)
    앞에 4명의 작가와는 그림이 확실히 다르다. 잘 모르긴 해도 그림의 난이도가 있는데 장욱진 화백의 그림은 정말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심플 그 자체다.
    유영국, 김환기, 이중섭 등과 같은 신사실파이며, 이중섭과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이분도 일본  유학을 하러 가서 미술을 제대로 공부했다. 아마도 이 시기엔 일본에 가야 미술을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추상화이지만, 유영국과는 결이 다른 추상화다.
    또한, 어릴 적 절에서 만나 나혜석의 칭찬을 듣고 평생 그 말을 새겨 그림을 그렸다.
    나이가 들수록 무소유를 행하였고, 물욕, 식욕, 수면욕까지 없어 다작을 하지도 않았고, 전시와 판매에도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그림과 술만 함께했다.
    🔖p.195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남는 시간은 술로 휴식하면서> 내가 오로지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은 이것뿐이다.
    🔖p.207 나는 나로서 족한 것이지 왜 남하고 비교하는가. 그래서 갈등이 생기고 열등의식이 생기고 자아가 망가진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결국 자아의 순수한 발현이어야 하지 않는가. 비교하다 고면 절충이 될 뿐이다.
    #김환기 (universe 5-IV-71 #200 , 19130227~19740725)
    우리나라 미술품 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이 바로 2019년 홍콩에서 팔린  (universe 5-IV-71 #200) 작품이다. 무려 132억이고, 바로 김환기의 그림이다.
    우리나라 추상화의 선구자이자 신사실파의 실질적 리더다. 근현대 미술의 선구자라고 봐야 할 것이다.
    김환기가 그리는 추상화는 유영국의 추상화와 장욱진의 추상화와는 또 달랐다. 순수추상이 아닌 반추상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구상에 자기의 상상을 접목한 추상을 그렸다.
    또한 그의 성공에서 아내 향연의 내조도 한몫했다.
    #박수근 (빨래터, 19140221~19650506)
    위에 6명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박수근 화백은 그림 유학을 하지 않았다. 이 당시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양화가 대세였기에, 서양화를 하지 않으면 약간 뒤처지는? 비주류? 의 예술을 한다는 인식이 있음에도, 박수근은 자신의 길을 갑니다. 주호회라는 단체를 결성한다. 이 주호회는 국내파로 이뤄져 있으며, 유학이 아닌 독학을 추구하였다. (이 당시만 해도 유학을 가지 않으면 제대로 그림을 배울 수 없었음.) 주호는 판화가 최지원의 호로 대부분 판화가로 구성되었다.
    박수근은 3명의 스승이 있는데…. 그의 첫 번째 스승은 만종을 그린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다.  어린 시절 밀레의 그림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다고 한다.
    두 번째 스승은 바로 과거 신라인들이 화강암 벽에 부처를 새기기(마애불) 시작했다. 이 화강암의 질감이 박수근의 독창적 기법에 영향을 주었다.
    세 번째 스승은 바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해방 이후 금성(북한)에서 미술 교사를 하던 중 한국전쟁이 되었고, 박수근은 남쪽으로 내려왔지만, 아내와 두 아이는 인민군에 붙들려 생사를 알지 못한 체 이산가족이 되고 만다. 이때 그림도 멈추고 의욕 없이 살다가 2년 뒤 아내는 아이들과 남쪽에 넘어오는 데 성공하고 그 이후, 예술의 절정기를 맞이합니다. 이 당시에 지금 박수근 화백의 주요 작품들이 탄생하였으나, 예술가와 가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같다.
    집도 넘어가고 설상가상으로 백내장으로 한쪽 눈을 잃고 간경화도 오고 결국 51세 나이로 세상과 이별합니다.
    🔖p.381 예술을 왜 하십니까?
    인생은 싱거운 것입니다. 짭짤하고 재미있게 만들려고 하는 거지요.

     #천경자
    (생태, 19241111~20150806)
    강렬하다. <생태> 속의 35마리 뱀은 정말 이목을 확 집중시키는 그림이다. 너무 멋지지만, 그 당신 출품한 대회에서는 징그럽고 괴기하다고 하여 아예 평가대상에서 제외했고 어디 다방에 주방에 있던 그림을 알아봐 준 사람이 그 당시 홍익대 교수였던 김환기다. 그는 그 그림을 보고 천경자에게 홍대 교수직을 의뢰했다.
    천경자는 일본으로 그림 유학하러 가서도 그 당시 유행하고 인기 있던 서양화 대신 동양화를 그렸고, 서양화가 아닌 그림은 저평가되던 상황에서도 꾸준히 동양화를 그렸다.
    고통과 한, 고독이 그녀 그림의 원동력이다. 조부가 돌아가셨을 때, 여동생이 아파 약만 있으면 살 수 있는데 돈이 없어 약을 못 먹어 죽었을 때 등등 시련이 닥쳤을 때 그림으로 치유하곤 했다.
    #백남준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구, 19320720~20060129)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이자 선구자이자 거장이자 해외에서 더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인 백남준 예술가.
    미술가라고 하기에도 음악가라고 하기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금수저도 아닌 황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으로 시작하여 일본, 독일 등 유학으로 미술을 공부하였고 가업을 이어받으라는 집안과의 대립이 있었지만, 결국 다 커서 예술을 할 때도 집안의 지원으로 이어나간다. 피아노를 때려 부스고 바이올린을 때려 부스는 아트를 선보이며 충격적인 퍼포먼스로 등장한 백남준은 그와 비슷한 성향의 비슷한 예술을 하는 사람들과 플럭서스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한다. 다들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다.
    TV  1,003대를 탑으로 쌓아 올린 작품이 유명하고,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 초청되고 악수할 때  바지가 내려가는 해프닝이 일어나는데 일각에서는 스캔들이 터진 클린턴을 조롱하는 퍼포먼스라고 회자된 적이 있지만. (백 선생만이 답을 알 것이다.)
    #이우환 (관계항, 1930624~ )
    위에 9명과는 다르다. 태생부터가 다르다. 이우환은 문학가이며 철학가이다.
    이름을 알린 것도 직접 미술을 그린 것이 아닌,  근대 미술사를 비판한 것으로 사람들 무릎을 탁! 치게 만든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모노파의 대표 미술가가 되었다.
    정말 미술의 '미' 자도 모르는 내가 봤을 때, 정말 무식한 소리로 돌 하나 전시, 돌 4개 전시 뭐. 이렇다. <관계항>, <사방에서>을 보면 정말 그렇지만 계속 보다 보면 빠지는.... 돌멍 하게 된다.  그 후, 점, 선을 그린 <점으로부터>,<선으로부터>를 보면 참 표하게 멋지다.
    이 책엔 유일하게 사진과 그림 등이 나오지 않는다. 책에 다루고 있는 열 명의 작가 중 유일하게 생존한 인물이라 그런지…. 저작권 문제 때문이 아닐까 싶다. 4월까지 부산에서 전시하는 것 같다. (궁금하지만 가볼 순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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