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 - 감각의 향연
이사벨 아옌데 지음, 정창 옮김 / 영림카디널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자연은 개인과 종족의 보존에 필요한 단순하고 최소한의 것만을 요구한다. 나머지 모든 것은 우리가 인생을 즐기고자 인위적으로 고안한 장식품이나 핑계에 불과하다."(p36)

자연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단순하고 최소한의 것'을, 이 책의 저자 이사벨 아옌데는 '식욕과 성욕'이라 이해1하고 있으며, 이 책 「아프로디테 : 감각의 향연」은 그러한 저자의 이해가 "섹스와 음식을 탐색하는 모험"(p52)의 내용으로 활자화된 것이라 소개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연스럽게 하루를 되돌아보는 황혼의 마지막 순간"(p13)이라 나이 오십대2를 표현한 저자는 "열아홉 살 이후 나는 거의 평생 동안 기혼자로 살았다. … 그 오랜 시간 동안, 대략 16,425번 내 남자의 이성을 잃게 하지 않았나 싶다"(p231)라 사뭇 유쾌하게 자신의 '하루'를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여자는 허벅지」란 책을 읽으면서는 '성별, 나이, 문화'의 차이로 인해 그 책 속 성 담론에 공감할 수 없었다라 썼었었거늘 --- 이 책에 담겨 있는 성에 관한 이사벨 아옌데의 솔직함은, 뭔가 확~ 와닿지 않는 한두 부분들3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는 저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더 많았으며, 무엇보다 일단! 이 책이 무지하게 재미있게 읽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뭐랄까, 그녀의 '섹드립'(?) 코드가 저와 너무도 잘 맞았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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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들 중 하나)가 바로 '성욕이 항진되게 하는 약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4이라 정의되는 '최음제'입니다. 최음제라... 뭔가, 45년 전 사용되었다는 돼지발정제5스런 뉘앙스가 강력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게다가/심지어, 책은 '최음제'로 사용 가능한 음식들의 레시피까지도 잔뜩 소개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 물론, 이 책 속 '최음제'의 의도가, 누군가를 그/그녀의 의사와 관계없이/반(反)하여 '성욕을 항진'시키는 데 있지는 않다라는 건 누구나 쉽게 알게 됩니다. 아니 그럼 대체 뭐냐?

"포르노그래피와 에로티시즘의 구분의 취향의 문제다."(p34) …… "암탉의 깃털을 이용하면 에로티시즘이고, 암탉 한 마리를 이용하면 포르노다."(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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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에서 얻는 즐거움은 우리가 그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

- <누구나 처음엔 걷지도 못했다> series 중​

"사랑의 욕망을 부추기는 모든 실체와 행위"(p34)로 최음제를 정의하는 저자 이사벨 아옌데는, 비록 몇몇 (실체적) 최음제들은 과학적 작용을 통해 인간에게 '성욕의 항진'을 가져다주기도 하겠으나 그 대부분, 즉 '성욕의 (진정한) 항진'은 "상상의 충동"(P34)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버섯6, 아스파라거스7, 오이8 또는 당근9 등이 남성의 성기나 고환10를 연상시킨다거나, 조개11, 달팽이12나 복숭아13 등이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와 유사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연상 작용을 통해 에로틱한 무언가를 떠올리게"(p34) 해주기도 하나, 그 이유들이 역설적으로 "에로티시즘이 생리 작용보다는 환상과 믿음에 달려 있다는 근거"(p267)가 또한 되기도 한다라는 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어쩌면 --- (영어로 '최음제'를 뜻한다14는) aphrodisiacs가 '아름다움과 욕망을 대변하는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로부터 기인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육체적인 사랑을 자극하는 것"(p18)이 최음제의 궁극적인 목적일 때, "우리를 유혹하는 음식이라면 모두 최음제가 될 수 있15"(p38)겠지만 무엇보다도!

​"오로지 목적과 결과를 생각하는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의식과 과정을 중시한다. 특히 사전 의식은, 설사 환상을 좇는 행위일지라도 여자에게는 나중에 펼쳐질 에로틱한 곡예만큼이나 짜릿한 자극이 될 것이다."(p59) …… "우리는 새우를 씻고 양념하고 요리하는 남자를 지켜보면서 노련하고 차분한 그들의 손길이 우리 몸에 와 닿는 에로틱한 마사지를 상상한다. 그들이 요리의 맛을 확인하고자 해산물 한 조각을 섬세하게 맛볼 때면 마치 목덜미가 깨물리는 느낌에 전율한다."(p57)

현대의 기독교는 '간음하지 말라'와 '네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라는 십계명의 두 계명을 한데 묶어, '네 이웃의 아내를 간음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라'라는 도덕률을 준수하라 설교합니다만, 우리의 도덕률 역시 '내 이웃의 아내를 간음하고 싶다'란 생각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만!

​"상상은 집요한 악마와 같다. 상상 없는 세상은 흑백일 것이다."(p36)

뭐, 굳이 'Impossible is Nothing'이란 말까지 끌어오지 않아도 --- 저자 이사벨 아옌데가 그려내고 있는 다음의 장면은, 그저 읽고 가볍게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 '성욕의 항진'을 가져와 줍니다.

"식탁보 밑에서 우연히 서로의 무릎이 스친다.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접촉이지만 그들은 번개에 맞은 듯하다. 겉으로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타오르는 욕망이 너무나 격렬해서 심장이 요동을 칠 정도다. … 이제 세상에는 오로지 둘만 존재한다. 웨이터가 다가와 빈 잔에 와인을 따르지만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떨고 있다. 여자가 포크를 집어 들고 입술을 연다. 식탁 반대편의 남자는 그녀가 내뱉는 숨결의 온기와 타액의 향기를 음미한다. 숨을 막히게 하는 무시무시한 연체동물처럼 자신의 입안에서 움직이는 그녀의 혀를 상상해본다. … 그녀의 시선은 남자의 접시에 남아 있는 마지막 굴에 꽂혀 있다. "(pp87-88)

​뭐, 이게 뭔 야설의 일부라 생각하는 분도 있을 수 있겠으나, '성욕의 항진'을 선사해주는 이러한 상상의 상대방이 반드시 '이웃의 아내'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16! --- 당신의 배우자와도 "바퀴벌레 가루를 삼키는 극단적인"(p38) 자양강장까지 굳이 행하지 않더라도 "막 다리미질을 끝낸 모포 속에서 살을 섞을 때 주고받는 이야기"(p22)를 통한 "영혼의 섹스"(p26)를 가진 후, "(당신이 수시로 짝을 바꿀 형편이 안 된다면) 사랑의 행위라도 다양하게"(p42) 함으로써 얼마든지 에로틱한 유희를 즐길 수 있노라는 저자의 권고17는, "우리의 미각, 시각과 청각은 기본적으로 그 대상 자체의 특성보다 우리가 그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다"18라는 경영학의 가르침을 완벽하게 우리의 성(性) 현실에 적용시켜 놓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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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쓰는 감상문에, 그 책으로부터의 인용구를 유독 많이 싣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작가의 문장이 좋아서였던 경우도, 지식의 전달을 위한 복기였던 경우도, 요약해 내는 능력의 부족 때문이었던 경우도 있었었거늘 --- 이 책, 「아프로디테 : 감각의 향연」을 읽고 쓴 이 감상문에는, 그저 그 문장 전체에 공감한 경우가 많았었기 때문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유를 더하게 됩니다.

​"맛의 쾌감은 입안보다 기억에서 시작된다 … 나는 아직도 40년 전 처음 키스했을 당시 껌과 담배, 맥주의 맛을 기억하지만 함께 키스했던 미국인 선원의 얼굴은 까맣게 잊어버렸다."(p91)

……

"나는 내 삶을 스쳐 지나간 남자들을 이런 식으로 기억한다. 어떤 남자는 피부의 감촉으로, 다른 남자는 키스의 맛으로, 혹은 옷에서 풍기는 냄새나 속삭이는 목소리의 기억 같은 것으로 말이다."(p15)

……

"남자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자들은 마음을 주고받는 '공감'이란 필수 요소가 없다면 어떤 최음제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그 공감이 완벽의 경지에 이르면 곧 사랑이 된다. 나는 항상 공감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내가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을 때, 그러니까 내가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꼬부랑 할머니가 함께 즐길 남자를 찾지 못해 사랑을 할 수 없게 된다면 그때에는 음식과 기억만이라도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p286)

저에게도 머지 않은(Shoot!!!), '오십'이라는 나이의, 대한민국과 멀어도 한참 먼 남미에 사는, 여성이 쓴 이 한 권의 책이 제게 준 공감은 예의 당신의 것(echo in your heart)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해보며, 이 감상문의 마지막으로 인용하겠노라, 읽는 순간부터 결심했었던 문장을 옮겨 보았습니다. 저는 비록 --- 전체 p429에서 끝맺음 되는 책을, p286까지만 읽었습니다만19, 요리를 좋아하는 그리고 '성욕의 항진'을 느껴보고 또 선사하고픈 당신이라면! 제가 받은 즐거움에 비하지 못할 쾌락의 선물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솔직히 말해 반드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하는 이웃분들이 실제 분 떠오릅니다.^^) 이 감상문에 인용되지 않은, 남미 아줌마 이사벨 아옌데의 야릇한 뉘앙스의 이야기들 또한 빼놓지 마시고!


  1. "식욕과 성욕은 역사의 커다란 원동력이었다. … 세상의 모든 창조 행위는 소화와 생식의 끊임없는 오랜 순환이다."(p283)
  2. 저자 이사벨 아옌데는 1942년 생이며, 이 책은 그녀가 50대 중반 무렵이었던 1997년에 출간되었습니다.
  3. "신선한 토마토를 손바닥에 쥐고 깨물어 즙이 입에 가득 차고 턱과 목으로 흘러내릴 때 이를 다른 구강의 쾌락과 비교하고 싶은 유혹은 성인이면 누구라도 뿌리치기 어렵다."(p264) --- 이 장면이 뭘 의미하는지 알기는 알겠는데, 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라는 데까지는 뭐랄까...
  4. <네이버 지식백과>
  5. 돼지발정제의 원료로 사용된다는 재료에 대한 설명 : "요힘베는 카메룬에서 자생하는 나무껍질에서 채취한 것으로 약초 가게나 성인 용품 가게에서 구할 수 있는데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독성 물질이 있어 과다 복용하면 격렬한 경련과 고통스런 환각, 견디기 힘든 소화 불량에 시달리게 된다."(pp252-253)
  6. "축 처진 남근"(p269)
  7. "핏기 없는 남근"(p271)
  8. "모양만 에로틱"(p272)
  9. "과부의 노리개라고 저속하게 불린다 …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당근 하나로 흥분하는 사람을 나는 여태 본 적이 없다.(물론 전적으로 먹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p268)
  10. "아시아와 폴리네시아에서는 … 고환을 닮았다고 해서 남성 음식으로 여겨진다. 망고만 한 고환이라..."(p212)
  11. "여성 생식기 모양"(p34)
  12. "여성의 주름진 곳 사이에서 살짝 보였다 사라지는 클리토리스와 비슷하게 생겨서 에로틱한 명성을 얻었다고 하는데, … 내 몸에는 달팽이처럼 생긴 것이 전혀 없다. 내가 아는 한 내 여자 친구 대부분도 그렇다."(p167)
  13. ​"가장 관능적인 과일"(p212) … "여성의 은밀한 부분을 닮은 생김새"(p213)
  14. 이번에 처음으로 '최음제'라는 우리말에 상응하는 영어 단어를 알게 되었습니다만, 이게 생각해보면, 이제까지 몰랐던 게 당연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일단, 최음제란 우리말 단어부터가 일생 몇 번이나 써보게 될지 모를 단어이거늘 그러한 말의 영어 단어를 공부했을 리가 만무하겠죠.
  15. 중국 작가 옌렌 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 역시, 음식과 성욕을 연결하고 있지요. --- "그녀가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이라곤 빨간색과 파란색 꽃무늬가 뒤섞인 얇은 실크드레스 잠옷 하나뿐이었다. 실크드레스는 품이 너무 크고 헐렁헐렁해서 언제라도 그녀의 몸에서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 선풍기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바람이 그녀 쪽으로 불 때마다 류롄의 드레스가 흩날렸다. … 바람이 드레스 자락을 들칠 때마다 그녀의 허벅지는 아름다운 산수가 제 모습을 드러내듯 그대로 드러났다. 하얗고 늘씬한 데다 적나라하게 탄력이 넘치는 허벅지 살이 남김없이 노출되었다. 실사구시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다왕이 실크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보는 것은 이번에 생전 처음이었다. … 부풀어 오른 드레스의 옷깃 사이로 그의 눈이 순간 경계심을 잃은 사이에 그만 그녀의 젖가슴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녀의 가슴은 하얋고 큰 것이 마치 원을 그린 것처럼 둥글고 풍만했다. 밀가루 반죽이 잘 되고 화력도 가장 좋을 때 자신이 사단장을 위해 쪄냈던, 사단장이 가장 즐겨 먹는 따끈하고 속이 빈 하얀 찐빵과 같았다. … 류롄의 커다란 유방을 본 우다왕은 자신이 쪄낸 크고 따끈한 찐빵을 떠오리며 순간 손을 뻗어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16. "나는 심하게 부부 싸움을 하고 나면 (화해의) 수프를 요리한다. …… 나는 멋진 옷으로 갈아입고 손톱을 빨갛게 칠한 다음 따뜻한 접시에 발효 크림을 고명으로 얹어 수프를 내놓는다."(pp232-233)
  17. "섹스와 심장이 하나가 되어 뛸 때라야만 우리는 비로소 황홀경을 맛볼 수 있습니다."(p138)
  18. <누구나 처음엔 걷지도 못했다> series 중.
  19. '최음제'로 쓰일 수 있는 음식의 레시피들이 들어있는 이후의 페이지를, 요리하지 않는 제가 읽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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