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없는 일주일
조너선 트로퍼 지음, 오세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초토화된 삶의 한복판에서 퀭한 눈으로 서 있을 때 어김없이 당신의 마음이 향하는 곳은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던 까마득한 과거의 한 시점이다.(p72)

국가의 안위 혹은 인류 역사의 진보 등과 같이, 보편적 당위(當爲)로서 여겨져야 한다라 말해지(곤 하)는 것들이, 실제로 또는 의식(意識)적으로라도/까지도 당위의 사안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에 별다른 불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당위가 실현되어가는, 당위를 실현시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저'라는 일 개인이 그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자책감스러운 것을 내심 지니고 있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일들에 대해 우리의 사고(思考)가 항상 그러한 거시적인 면만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까지를 또 다른 하나의 당위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개인들의 집합체가 국가라는 사회가 되었다면, 일 개인을 구성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결국 "인간은 DNA의 산물이 아닙니다. 인간은 기억의 총합입니다"1란 구절을 부정할 수 없(다 생각하)기에 --- 정의(定義)상, 과거를 향할 수 밖에 없는 개인의 '기억'이라는 것이 어떠한 이유로 현재와 같은 잔상의 형태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추측, 더 나아가 자신/타인의 '과거'에 대한 '현재의 기억'이 어떠한 변화의 과정을 겪어 비로소 '현재의 기억'으로 남아있게 되었던가를 되돌아 보는 것이/은 결코! 국가의 안위나 인류 역사의 진보 등과 비교되어 덜한 무게감을 가져야(만) 할 합당한 이유를 짊어지고 있지 않다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는 이(者)의, 이 작품 「당신 없는 일주일」을 읽고 난 감상은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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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 좀 더 넓게는 작은 동네의 구성원들간에 있었던/있는 과거의 추억과 (그 과거의 추억들과 관계된)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소설입니다. --- 3남 1녀의 자식들을 남겨두고 (1년 반 여간의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모튼 폭스먼이 자신의 장례식을 '시바'2로 치러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지요.

아내 젠의 불륜 현장을 목격했다라는 충격에 사로잡혀 있는 주인공 저드3에게, 이 와중에 일어난 아버지의 죽음은 오히려/그저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슬픈 과정의 사소한 결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p10)더랬습니다. 단지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혼자 본가로 가야 한다라는 것에 "가족들과 맞서기 위한 우군을 얻기 위해 우리는 결혼이란 것을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전쟁터홀로 돌아가야 하는 것"(p20)이란 착찹함 내지 짜증이 더 싫었을 뿐이었죠. 그렇게 --- 가족의 만남이 '전쟁터'로 표현되어지며, 가족 간의 대화라는 것 역시 "만인 대 만인의 싸움"(p205)으로 간주되어지는, "모두 같은 틀에서 찍혀 나오긴 했지만 마감은 다른 공정을 거친 것 같"(p54)기만한 3남 1녀의 자녀들과 배우자들, 그리고 (자녀들의) 엄마로 이루어져 있는 폭스먼 가(家)가 일주일간의 '시바'를 위해 한 자리에 모인 그 일주일동안 일어나는 여러 ('막장스런'이란 형용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또한 '막장스런'이란 형용사가 결코 어색하지 않은) 과거와 함께, (흔히 예상되는 바의 두루두루 행복한) 최종 결말을 향해 가는 과정을 이 소설은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그런데/그 와중 그 안에는,


​① 고등학생 때엔 키스를 해주고 젖가슴을 만지게 해주는 여자친구와, ②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같이 좋아해주는 남자 친구가 있으면 더 바랄게 없는 법이다.(p318)

②번 상황과 같은 공감도 존재하는, 하지만! ①번과 같은,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만 47세의 남성들에게 어지간해선 공감할 수 있는 과거가 될 수 없는 문화적 이질감이 담겨져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다 읽고나면, 아니 읽어가는 과정에서조차 분명! 그 문화적 이질감이란 건, 그저 미국 영화나 드라마 몇 편만 봤었었다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이해해낼 수 있는 수준이 대부분임을, 혹 그 이질감 자체를 극복해낼 수가 없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깊은 짜릿함의 공감들이 얼마든지 그 이질감을 압도한다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기도 합니다. 어쩌면/심지어! --- 짜안~함의 역할을 공감이 담당하고 있다라면, 이 소설 속 문화적 이질감은 일견 유쾌함의 소재로서만 작용되고 있다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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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은 '행하는' 것이었다.4

이 소설의 주제는 (혹은 주제의 일부는) 위의 구절로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가족의 일원으로 탄생된 것이 자신의 선택은 아니었으나, 그 강제적 형성의 일 집단을 여타의 (강제적 형성의) 사회 집단들과 다르게 하는 것은 분명 그 구성원들의 자발적 행위/노력이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작가는 --- 한 가족의 탄생은 '결혼'이라는 사회적·자발적 결합을 통해 시작된다라는 사실을 집어내주고 있습니다.



【 결혼 : 사회적·자발적 결합

​주인공 저드의 결혼 생활이 '아내의 불륜'이란 결말이 지어졌기 때문이었을까요? 그가 회상해 본 아내 젠과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었노라,라는 1차적 회상의 꺼풀을 걷어내는 순간, 마치 '내가 이러려고 결혼이란 걸 했었던 건가'하는 자괴감으로 가득차 있(는듯 하)기만 합니다.

"자기 친구들과 동석했을 때 소유권을 주장하기라도 하듯 내 팔뚝에 얹혀 있던 그녀의 손"(p365)과 같은 미묘함이 곁들여져 있었던, 또한 한땐 "며칠 굶은 짐승들처럼 질퍽한 입과 혀로 상대를 공격하듯 탐"5(p64)하는 것과 같은 격렬함이 있었기도 했던, 그리하여 그것들이 이내 만들어내었던 서로를 "필생의 사랑이라고 여기는 감정"6(p25)이 모든 것이었던 연애의 시절은 너무도 자연스럽게7 '결혼'이란, 마치 더 이상의 변화조차 없을 것 같은 안정적이며 최종적인 해피 엔딩으로 여겨지는 사회적·자발적 결합으로 귀결되어졌었죠. 하지만!

그 결합은 결코 '엔딩'일 수 없는, 또 다른 기나긴 과정의 시작이었었으며 그 과정은 대부분 "필생의 사랑이라고 여기는 감정이 서서히 진부한 일상8으로 변해"(p25)가는 모습으로 진행되어가기 마련입/이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내 --- "때로는 지금 이 삶 자체도 꿈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엔가 … 진짜 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p114)의 단계9(원하든 원치 않든) 거의 당연스레 넘어가게 되지요. 이제 부부라는 이 결합이 만들어 낸 것이라곤 고작해야, 그간 치뤄온 수많은 부부싸움의 결과 "'하지만'이란 말 앞에 나오는 말들은 모두 헛소리라는 것"(p117)만을 알게 된다 정도로만 남게 될 뿐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선택했었던 이 자발적·사회적 결합을 만들어 낸 과거에 대해 누군가는 "우리가 얼마나 철부지였는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얼마나 무지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다 못해 분노까지"(p25) 자아내기도 하는, 이른바 이 선택에 대한 후회란 것10을 하게 된다라 작가는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가의 메시지에 대해 일부의 불만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전적인 부인까지 하는 기혼자는 없지 않을까 시포요~ --;;)


누군가와 살면서 실생활에 따르는 모든 골칫거리들을 공유하다 보면 그때그때 해결을 보지 못한 자잘한 원망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치태처럼 쌓이게 되고, 상대에게 키스를 하고 핥고 애무를 하는 순간에도 의식의 가장자리에 머문다는 것이다. … 우리는 서로를 안으면서도 상대에 대한 분을 잊지 않고, 온기, 둘만의 친밀감, 혹은 그저 저급한 만족을 위해 기계적으로 상대에게 몸을 비비면서도, 마음은 행위에 집중하지 못하고 단속적인 생각의 조각들, 마음의 응어리들로 가득 채웠다.(pp182-183)

물론! 누군가들은 이와 같은 과거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자발적·사회적 결합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뒤늦게나마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듯, 이혼이라는 또 다른 자발적·사회적 해체를 해결책으로 선택하기도 합니다만, - 이 작품이 2016년의 대한민국에서 만 47세의 기혼남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 전체적으로 이질감보다는 공감을 안겨준 이유 중 하나인 - 주인공 저드의 의문은 이혼이라는 비교적 간단한/보편적인 선택이 아닌 --- "사랑, 혹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우리의 본성을 부정하며 우리는 빙글빙글 불나방처럼 춤을 추면서 돌아간다"(p415) …… "처음 드는 생각도 아니지만 도대체 왜 … 계속 같이 사는 것인지, 서로에게 무엇을 기대하면서 이런 따분한 고착 상태에서 벗어나지를 않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p299)라는 (그러니까 어쨌든 '결합의 유지'라는 테두리는 벗어나지 않는) 고민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곤 결국!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생각에 빠져 상대방도 나만큼이나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pp 183-184)

​라는 걸 깨닫게 되지요.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 충실할 수 없는 이유의 근원에는, 결혼이란 것을 엄연한 '현실'11로서가 아닌, 하나의 즐겁기만 할 '꿈'12으로 여겼었기 때문이라는 걸 자각하게 된 겁니다.


【 가족 : 혈연적·강제적 결합 】

이제 막 아버지를 잃은 나는 곧 아빠가 될 것이다.(p193)

'가족'이란 혈연적·강제적 결합은 이처럼, (당연하게도) 혈연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하지만 강제적으로 지속13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결합에도 역시나 --- 연인이 부부가 되었고 그 둘간의 사이가 변화되었/하였듯,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또한 (역시나 원하든 원치않든) "아버지는 어렸을 때 우리들을 무척 예뻐했다. 하지만 우리가 자라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사람"(p56)에서와 같은, 어쩔 수 없는 질적 변화의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14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단지 부모의 관점에서만 관찰되어지는 것이 아닌, 자식의 입장에서도 또한 감지되는 것이기도 하며 끝내는,

분명히 아버지와 나 둘만의 시간들도 많았을 테지만 기억이 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른 사람들과의 맥락에서만 아버지가 기억이 난다.(p128)

"곧 전처가 될 여인, 전처 예정자"(pp17-18)(사회적 결합의 상대자인) 젠과의 사이에 "나의 젠이었던 때를, 우리가 아직도 우리였던 때"(p290)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그나마/그래도 어색하지 않으나, (혈연적 결합의 일원이나 내 탄생의 근원 중 한 분인) 아버지에겐 차마 '나의 아버지였던 때'란 구절을 사용하지 못하겠는 저드는 그저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왜 아버지를 더 많이 보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p354)란 후회만이 남아 있는 겁니다.15 그리고 그 후회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해서만 있는 게 아니다라는 걸 역시 알게 되지요.


형제자매가 결국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때로는 가슴이 아픈 일이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p431)

형과 누나16, 그리고 동생에게 각각 서운함과 분노, 이해하지 못함을 가지고 있었던 주인공이었으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서운함과 분노, 이해하지 못함의 실체는 결국 "화가 나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악습"(p445)과도 같이, 그들을 유지시키는 최소한의 동력조차 없이 그저/습관적으로 이어져 온 것이었을 뿐이며, "혼자 속으로 분을 삭여온 10여 년이란 세월과 다섯 잔의 위스키"(p373)으로 풀어낸 그것들의 "문제는 나한테 있었다"(p373)란 사실을 새삼 알아채게 됩니다.

"우리가 진짜 가족이었던 게 얼마나 오래되었지?"(p359)


돌아가신 아버지의 양복 주머니에서 발견한 마리화나를 나눠 피며, 세 형제는 모두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 합니다.17 아버지에 대한 이런 그리움에, 아내와의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지고, 형제들과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까지 더해진 주인공 저드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보고, 아내에게 키스를 하고, 어린 동생과 장난을 치지만, 언제가 그런 일들을 하는 마지막 순간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모든 일에는 마지막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들을 다 기억한다면 우리는 슬픔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이다.(p215)

아버지와는 이미 마지막을 경험했지만, 아직은 다가오지 않은 아내와의 마지막과 형제들과의 마지막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라는 사실과 더불어 작가는 세월의 흐름, 혹은 나이 들어감이란 것에 대한 또 하나의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 나이 들어감, 또는 늙어감 】

"나도 안다, 걸핏하면 과거로 회귀하는 이런 짓거리가 지금 내 인생이 얼마나 꼬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라는 것을."(p195)

'나도 한때는~'으로 시작되는 누군가의 말 듣는 것을 참으로 싫어하며, 저 스스로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말 하게되는 상황을 매우 매우 경계합니다. 비록 현재의 제 모습이, 20-30대 시절 그려보았던 그 모습이 아닐지라도, 그것이 차마 지워지지 않은/지워낼 수 없는 후회로 각인되어 마음 좀 (혹은 많이 --;;) 아프다 하여도, 실현되지 않은 과거의 희망으로 하여금 실현되어 있는 지금의 현실을 비하하도록 만드는 우(愚)를 범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저 스스로 저의 현재를 과거와의 비교 때문에 비하 혹은 후회한다면 그건 너무 비참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안 될까요? 맹세코 이번에는 진짜 잘해볼게요."(pp378-379)

저 역시, 위와 같은 바람(願)으로부터 자유롭다고는 말 못합니다. 지금의 제 현재가 저의 잘못이었건 아니면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무엇 때문18이었건간에 어쨌든! --- 뭔가 "아무리 별 탈이 없이 순조롭게 시간이 흐르더라도 성장을 하는 것에는 무언가 비극적인 것이 있다"(p301)란 주인공의 어림을 도무지 부인하지 못하겠(다 말하고만 싶어지)는 이 놈의 '사람 인(人), 살 생(生)'이란 것이, 그리 젊지도 그렇다고 늙어있다라 말하기도 싫은 나이의 저에게마저도 "삶이란 그런 것이다. 모두가 영원할 것 같지만 우리는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p333) … 인생이란 무척 거창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한순간에 뒤틀어질 수 있는 것이기도"(p382)함이 (겸험상!) 너무도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이나 수치라는 감정에 의해 편집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이기적이고 무자비하며, 우리 생각의 대부분은 있는 그대로 밖에 내놓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에 상처를 받을 것이고 우리를 무정한 잡놈이라고 욕할 것이지만 실제로도 우린 그런 인간들이다. … 단지 살균되고 희석된 생각의 흔적들만을 내어놓을 뿐이다.(pp187-188)

​성악설이니 성선설이니까지를 들먹이지 않아도, 성경 속 인간의 원죄 같은 걸 거론하지 않아도 하루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여간을, 그렇게 이어져 온 나의 삶을 솔직하게 산다라는 건 너무도 힘든 일이 되어 있습니다. 나와 내 아이의 다섯 살 시절에는 "행복하고 온전했던"(p53)이란 수식어를 붙여놓을 수 있으며, 그러했던 시절엔 "아무 꿍꿍이 속셈이나, 깊숙이 감춰둔 앙심이나, 지울 수 없는 상처도 없이 정말 즐거운 한때"(p301)를 만끽할 수 있었었거늘 어느 순간 우리는 --- "미리 경계를 할 수도 없을 만큼 이런 일들은 아주 서서히 진행이 되고 고칠 수도 없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문득 늙어 있는 자신"(p94)을 알아채곤 속절 없이 당황하게 될 뿐입니다. 결국, '나이 들어감, 또는 늙어감'이란 "행복하고 온전했던"(p53) 우리의 과거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것임을 대체적으로 부인할 수 없다란 거지요.

​때로 행복은 마음의 문제다. 지금 당장 내 손에 지니고 있는 것을 쳐다보면서, 이미 내게서 떠난 것에다가 끝없이 견주기보다는 그것이 내게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진실이고 삶의 자세 … (p342)

라 억지 자위를 해보기도 하지만, 그 역시 "실제로 이렇게 사는 사람은 드물 것"(p342)로 맺어지는 문장을 읽어보게 되는 것처럼, 삶에서의 희노애락이란 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있으면 있는 대로 좋은 점"19(p154)일 수도 있는 것과는 달리 --- '나이 들어감, 또는 늙어감'이란 아무래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만 싶은, 미루어 낼 수 있다면 미루고만 싶은,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러할 수가 없는, 그러하기에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듣거나 혹은 나의 다음 세대에게 건네 주게될 뿐이란 걸, 존나 슬프지만 또한 아니 인정할 수가 없는 겁니다.


"늙지 말게나. 그게 내가 저지른 잘못이라네."(p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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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굉장히 정리되지 않은 감상문을 쓰게 될 것 같다, 뭔가 무자하게 주절대는 감상문이 나올 꺼 같다란 생각을 미리부터 했었더랬고, 예의 그 예감은 또한 틀리지 않았다라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간단하게 줄여 보자면, '막장 가족의 유쾌한 애정 복원기'정도로 표현될 수 있겠는 이 한 편의 소설로부터, 허나 이 작품을 단순히 '소설'이라고만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느껴지는, 어쩌면 소설의 형식을 빌어 온 '삶의 중간 자락에 선 이들에게 필요한, 뭐랄까 일종의 인생 중간 점검 지침서'쯤?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도 같은 이 책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던 점은 다름 아닌,

"나는 너희들이 필요했다. 너희 스스로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 몰라도 너희도 서로를 필요로 했고."(p426)


이 필요가 --- 나의 부모를, 나의 아내를, 나의 형제를, 그리고 나의 가족 전체를, 그리하여 결국엔! 나 스스로의 삶을 향해 있다라는 걸 배울 수 있었던, 이 사실을 이제껏 알지 못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다른 어떤 사람들의 마음보다 나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p341)기 때문이란 것까지/마저를 또한 배울 수 있었던 이 한 편의 소설에 대해, 한 치의 덜함이나 더함도 없는 완!벽!한 '여인의 치마'20라 말하게 됩니다.

당신이 미혼이라면, 혹은 기혼이라면 더욱 / 당신의 부모님이 살아계시다면, 혹은 두 분/두 분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면 더더욱 / 당신의 현재가 젊음이라면, 혹은 (어지간히) 나이 들어있음이라면 더.더더욱!당신이 이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를, 이 소설을 읽고나면 알게될 수 있으리라 사뭇 자신합니다. 여기에 더해 --- (대한민국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연배가 저와 비슷하다라는 사실21마저, 그렇게 당신이 1969년의 언저리에 태어났다라면! 그가 등장시키고 있는 (제가 거의 다 알고 있는!) 팝송들이나 "야시카 카메라"(p340)와 같은, 그야말로 스토리의 전개와는 하등 상관을 지니지 못하는 소품마저도 뭔가, "늙지 말게나"라며 '우리 나이대'의 취객들끼리 그 시절 신촌의 '만미원·투'나 '나의 집'같은 술자리에서 두 손 마주잡고 나눌 듯 싶은 이야기를, 지금 내가 이 것을 활자로 읽고 있다란 느낌마저 순간적으로 잊게 만들어 주는 일체감까지를 닭살 돋는 듯한 공감으로 느껴볼 수 있게 해줄 거라 확신합니다. 암튼!


  1. 박주영 作, 「고요한 밤의 눈」중 p36, 다산책방 刊, 2016.
  2. "유대교에서 7일 동안 지키는 일종의 삼우제 - 옮긴이'(p8)
  3. "당신의 부인이 외간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해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끔, 자신의 죽음이나 복권에 1등으로 당첨되는 경우를 생각하는 것처럼, 아내가 외도를 할 가능성도 아무런 실감 없이 머리를 스쳐가는 여러 생각들 중 하나일 수는 있다. 하지만 만약 그런 경우를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평소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p31)
  4. 가와무라 겐키 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중 p176, 오퍼스프레스 刊, 2014.
  5. "좋은 섹스의 정의에는 많은 요소들이 포함되겠지만 분명한 건 효율성은 절대로 그 안에 끼어 있지 않다"(p182)
  6. "사랑에 빠지면 모두 나르시시스트가 되기 마련이다. 우리도 우리 관계가 얼마나 친근하고 밀접한지에 대해, 우리가 유사 이래 처음으로 형성된 완벽한 연인이기라도 하듯 제멋에 빠져 끊임없이 지껄여댔다."(p24)
  7. "나는 할리우드 영화들이 애들의 시야를 왜곡시켜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인생이란 한 편의 거대한 로맨틱 코미디다. 귀여운 여자애를 만나기만 하면 그다음에는 모든 게 동화처럼 출려나갈 것이라고 믿어버린다."(p78)
  8.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소리 나지 않게 방귀를 뀌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소변을 볼 때 화장실 문을 닫지도 않을 것이다. … 아내는 남편의 농담을 듣고도 다른 이들처럼 웃어주지 않을 것이다. 아내는 밤에 친구들과 수다를 떠느라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질 것이고, 화장실 휴지를 갈아놓지 않았다거나 … 하는 사소한 이유 때문에 둘은 불같이 화를 내며 말다툼을 벌일 것이다. 각자 가슴속에 장부책을 숨겨두고는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한 방식으로 상대의 점수를 매길 것이다."(p25)
  9. "지금의 내 삶이라는 악몽을 꾸고 있는 다른 세계의 나는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중일 것이다."(p114)
  10. ​"우리는 손만 뻗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인생을 출발하지만, 우리가 잘못될 수 있는 수만 가지 가능성들을 조금이라도 의식할 수 있다면 감히 침실 밖으로 나설 용기조차 생기지 않을 것이다."(p395)
  11. "우리 모두 결혼생활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아프리카에 있다는 것을 아는 정도의 실감만으로 지껄이는 말이다. 그건 분명 비극적인 사실이긴 하지만 그런 일은 지구 반대쪽, 우리의 현실감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p23)
  12. ​"나는 긴 머리에 유행하는 옷을 입고 가죽 끈 팔찌를 하는 멋진 아빠가 될 것이라도 항상 생각해왔다. 손수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이들에게 고함을 지르지도 않으며, 놀이공원에 가서는 비싼 간식거리들도 모두 다 사주고, 아이들을 목말 태워 집으로 데려오는 그런 아빠 말이다. 나는 남편보다는 아빠로서의 내 모습을 그려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물론 논리상으로는 남편이 되는 것이 먼저였으므로 나는 어떤 여자를 아내로 맞을지 - 영리하고 분별이 있고 성격이 좋은 속옷광고 모델 - 생각해본 적은 있다. 하지만 내가 특별히 어떤 타입의 남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냥 결혼한 상태의 나, 그 정도가 다였을까?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벌써 거기에서 문제점을, 나를 향해 나부끼는 커다란 경고의 깃발을 봤어야 했다."(p195)
  13. 큰 딸 웬디가 초경을 하자, 아버지는 그녀를 데리고 병원에 갔었습니다. 그때 간호사가 웬디에게 탐폰 사용법을 알려주며 하는 다음의 말이야말로, '결혼'이라는 사회적·자발적 결합이 어떻게 '가족'이라는 혈연적·강제적 결합으로 변모되는지를 가장 간결하게 상징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 "놀랄 필요는 없단다. 얘야, 이것보다 큰 놈들도 그 안으로 들어갈 테고, 또 그보다 훨씬 큰 놈도 그 안에서 나올 테니까."(p126)
  14. "우리가 어렸들 때 아버지는 최고였다. … 하지만 우리가 머리가 좀 굵어지자 아버지는 우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텔레비전과 비디오 게임에 빠져 지내는지, 사지 멀쩡한 것들이 왜 그렇게 게으른지, 방하고 침대 꼬락서니는 왜 그 모양인지, 머리는 왜 그렇게 길게 기르고 꼴 보기 싫은 날염 무늬 티셔츠는 왜 그렇게 걸치고들 다니는지, 아버지는 당신의 자식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pp 99-100)
  15.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부모님을 보지 못할 때를 맞는다. 우리에게 남겨지는 것은 얼마간의 추억과 부모님 생전에 미처 그들고 풀지 못한 몇 가지 후회스러운 문제들뿐이다."(pp 55-56)
  16.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아무 의미 없는 섹스도 해보고 맥주 캔처럼 여자들을 차버리기도 하고 말이야."(p446) --- 이런 누나가 있었으면 남자의 청춘은 좀 더 즐거웠을지도. ^^;;
  17. "아버지가 그리워요"(p259) … "아빠가 보고 싶어"(p270) … "아버지가 정말 그립다"(p271)
  18. "사람들은 흔히 한 가지 현상을 가리키면서 그것에 모든 잘못된 일들의 책임을 돌리기 좋아한다. 비만인 사람들이 맥도널드가 그들을 뚱뚱한 돼지로 만들었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는 잘못된 수식이 쓰인 칠판을 지워버리듯 홀가분함을 느끼는 것이다."(p197)
  19. 작가는 이러한 것의 예로 "액션영화의 누드신"(p154)를 들고 있지요⁠. 하지만! --- 누드신은 '있으면 있는 대로 좋은' 것이 아니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20. ​"'좋은 연설은 여인의 치마 같다'는 옛말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만큼 짧아야 하지만, 주제를 덮고 있을 만큼은 길어야 한다는 뜻이다."(p316)
  21. 1970년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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