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제가 이해하는 바의 이 작품은 그저 --- 여자'들'을 만났으며, 그 수많은 여자들과 어떤 방식/느낌의 섹스를 즐겼고, 왜 헤어졌으며, 그러면서도 거의 매 장면에서 술 마시는 장면의 묘사가 빠지지/빼놓지 않는, 경마에서도 곧잘 돈을 따는 운도 따라주는, 결정적으론 지독히도 강력한 성욕의 소유자인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의 그렇게 살아 온/살아가는 이야기의 반복일 뿐1입니다. 뭔가의 더를 찾아내려 해도 That' It!!! 이라 말한들, 이 책을 저보다 먼저 읽었던 누군가로부터도 오독(誤讀)이란 비난을 받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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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놀리는 건 아니지만 너무 만지고 싶게 생겼네. … 난 너를 만지고 싶어. 만지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러고 싶어."

- '기린(Kirin)'이 부른 노래 <Would You>의 가사 중.

(그리고 어쩌면 2016년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대부분 남녀의)속마음은 이러합니다. 방금 전 길을 걷다 마주쳐 바라보았던 여성에게서건, 며칠 전 버스 옆자리에 앉았던 첨 보았던 여자에게도, 아주 오래 전 내 앞에 앉아있었던 소개팅의 상대방에게도, 심지어 그렇게 만난지 몇 번 된 사이의 여자에게였더라도! --- 제 아무리 그녀들이 '너무 만지고 싶게' 생겼었다 했/하더라한들, '난 너를 만지고 싶어!'란 말을 죽어도 할 수 없었던 그때, 그리고 지금도 할 수 없는, 그저 마음 속으로만 '만지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러고 싶어'라 생각하다, 끝내 그 순간엔 만져보지 못했었고 '할 수 없지, 뭐' 그러했었던 세대와 문화에서 청춘의 시절을 보내었었던, 기질마저도 선뜻 그러해보길 주저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러다 어느덧 그것을 금(禁)하는 세상에 살게 되어버린 저와는 달리, 이 작품 속 누군가는, 그리고 누구보다 우리의 헨리 치나스키는!2

​"세상에 이런 아름다움이 있으니 우리는 그저 손을 뻗어 만지기만 하면 돼요."(pp24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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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간의 사랑은 시각과 후각에서 온다는데 여러분의 의견은?"

① '소개팅 시켜줄께. 어떤 스타일 좋아해?'란 질문에 외모에 대한 설명 대신 특정 향수를 사용하는 여자여야 해!라 말했었을만큼, (이성으로부터의) 후각에 매우 민감했었던/한 저이기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남아 있는 향수의 잔향으로부터 그 주인공은 어떤 여자일까,란 상상을 해보기도 하는 저이기에 --- 위의 질문에 당연히 후각이란 대답을 떠올렸더랬습니다만,

② 히가시노 게이고 作, 「비밀」이란 소설은, 그 줄거리만 들어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매우 뭉클한 감동과, '딸의 육체에 아내의 정신이 들어가 있다'란 말도 안되는 상황임에도 자꾸만 스스로를 거기에 대입시켜보는 생각을 해보게만 되는, 정말로 매력적인, 그야말로 작품(作品)인 소설이었지요. 이런 상황에서라면 남편의 성적 욕망을 걱정하는 (딸의 모습을 한) 아내의 배려(!)가 당연할 겁니다. --- 섹스는 말도 안된다라 말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말해주지요. "그럼 입으로 해줄께요."3

'부부간의 사랑'에는, 더 나아가 그냥 (요즘 시대의 흔한) 사랑에는 시각후각​,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촉각 뿐만 아니라 --- 미각 역시 매우매우 중요한 일 구성요소라 말한다한들, 최소한 변태자식~ 소리는 듣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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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고 싶게 생긴 이성' 앞에서 하는 혼자만의 생각에서조차 "너를 놀리는 건 아니지만"이란 전제를 깔아야 하며, "만지겠다는 뜻은 아니지만"이란 선을 그어 놓은 후에라야 비로소 "난 너를 만지고 싶어"란 생각이라도 할/해 볼 수 있는 우리에게 ---만난지 채 몇 분 지나지 않은 여성을 향해 "난 당신 보지를 핥고 싶어"(p43)"한번 합시다"(p242)와 같은 말을 선뜻 해내는 헨리 치나스키는 분명!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물은 아닐겁니다. 하지만! --- 그가 나오는 소설들을 읽다보면 웬지 헨리 치나스키에겐 그러한 감정의 표현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라 받아들여지며, 이는 결국 그는 그냥 솔직한 남자일 뿐이란 생각을 가지게 되어 버립니다. (그의 이야기 세 편을 읽고 나니, 마치 나도 모르게 빠져나와지지 않는 늪에 빠진 것처럼.)


건너편에서는 옷차림이 말쑥한 여자가 페이퍼백 소설을 읽고 있었다. 치마가 허벅지까지 올라가 스타킹을 신은 허벅지 살이 훤히 보였다. 어쩌자고 저러고 있을까? 나는 신문을 들고 있었고 그 위로 그녀의 옷을 흝었다. 허벅지가 근사했다. 저 허벅지를 가질 사람은 누구일까? … 여자가 다리를 꼬니 치마가 좀 더 기어올라 갔다. 여자가 책에서 고개를 들었다. 신문 위를 넘겨다보던 내 눈과 여자의 눈이 마주쳤다. 여자의 표정은 무심했다. 여자는 치마를 끌어 내리지 않았다. 내가 보는 것을 알면서도.(p136)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이처럼, 남자이건 여자이건, 인간의 본능인 성욕(性慾)에 대해서만큼은 솔직합니다. 아마도 --- 신문 위로 힐끗 어떤 여성의 아름다운 다리를, 몸매를, 가슴을, 혹은 얼굴을 슬쩍 훔쳐보았던 경험이, 100%에 가까운 수준의 '대부분'의 남자들에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하여 어쩌면! 심지어는 '만지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러고 싶어'란 생각도 어쩌면! --- 위에서 묘사되는 헨리 치나스키를 '솔직하다'라 아니말할 수 없도록 작동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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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텀」의 옮긴이와, 「우체국」의 옮긴이 모두 헨리 치나스키를 묘사함에 있어  각각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인간'4'남성 중심적 인물'5이라는, 결국 남성 우월주의자를 의미하는 뉘앙스의 단어를 선택했더랬습니다. 이 작품 「여자들」속에도, 자신이 "사랑을 두려워하니까"(p90) 여자가 아닌 창녀를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헨리 치나스키의 고백이 등장하지요. 읽기에 따라선 얼마든지 그를 남성 중심적 인물로 생각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 「여자들」을 읽고 쓰는 독후감에서 전, 딴 건 몰라도, 헨리 치나스키가 남성 중심적 인물이란 생각에만큼은 명백한 반대의 의사를 표시하고 싶습니다. 그가 그토록 여자에 탐닉했던 이유는 바로 ---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여자를 끊임없이 갈망했다"(p109)였기 때문이죠.


이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얼마나 힘들었던가. 하지만 대개는 한 여자랑 헤어져야 다른 여자를 만날 수 있다. 여자들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그들을 맛보아야 하고, 그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도 남자이므로 남자들은 마음속에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자들은 애초에 알지 못하면 허구로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여자들을 탐구하고 그들 안의 인간을 찾아낸다.(p324)

물론 헨리 치나스키가 수많은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남자라면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6쾌락을 느꼈다고는 하나! --- "첫 키스, 첫 섹스는 언제나 극적이다. … 그다음에는 천천히, 그렇지만 반드시 모든 결점과 광기를 드러내게 된다"(pp105-106)라는 걸 경험한 그는, 그리하여 "연애가 틀어지면 진정으로 외롭고 미칠 것 같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낄 수 있고 마침내 자기 인생의 끝을 맞았을 때 무엇을 대면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p324)라 말하는 그의 바람(願)은 다름 아닌,


고통은 기이하다. 고통은 쾅 도착해서, 그래 그렇게 우리 위에 내려 앉는다. 고통은 실재이다. 그리고 구경꾼의 눈에 우리는 바보 같아 보인다. … 고통에는 아무런 치료약이 없다. 나의 기분을 이해해 주고 도와주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면.(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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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많은 여자를 필요로 할 때는 그 여자들이 다 쓸모가 없기 때뿐이다."(p417)


결국, 헨리 치나스키는 자신의 기분을 이해해 주고 도와주는 법을 알고 있는 한 사람(한 여자)을 찾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 소설의 1/4이 조금 지난 즈음 등장하는, 헨리 치나스키의 다음 독백이, 이 작품의 옮긴이에게서도 (「우체국」의 옮긴이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끝내 "과연 남성 중심적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할지 의문이 든다"(p424)란 고백을 이끌어낸 이 작품을 가리켜, "한 여린 남자의 사랑 이야기"라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용기를 제게 쥐어주었죠. 한 발 더 나아가!

"여자들에게 사정(事情)하고 사정(射精)하는 것 뿐"(p422)인, 이 작품 속 헨리 치나스키의 기행은, 그 스스로의 말을 빌어보자면 그저,


 

 

사랑이 올 때는 보통 이상한 이유 때문이었다. 사랑을 자제하는 데 지쳐서일 수도 있고, 사랑이 어디든 가야 할 곳이 필요하기 때문에 놓아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보통, 말썽이 따라오기 마련이었다.(p138)

저에게는, 어쩌면 당신에게도 따라오지 않았던 말썽이, 유독 헨리 치나스키에게만 지독히도 따라다녔기 때문이었다라는 변명을 해주게까지 됩니다. 그 말썽이 저를 따라오지 않았던 이유가, 따라올 수 없었던 이유는 어쩌면 --- 헤어지는 순간의 마지막 말로, 사실은 '우연을 가장해서라도 너를 만나게되는 순간을 꼭 만들겠어'라 말하고 싶었었으나, 하지만 끝내는 '우연히라도 길에서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정말, 아마도 굉장히 반가울꺼야'란 솔직하지 못한 말을 선택했었던, 그토록 스스로의 감정에조차 솔직하지 못했었던 저였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란 늦어도 너무 뒤늦은 후회를 하며 말이죠.



※ 읽어본, '헨리 치나스키' 이야기! : 팩토텀」 · 「우체국 

 

 

 

 

 

 



 

  1. 이 작품의 옮긴이 박현주 역시 "여성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이 소설에서 치나스키가 하는 일이라고는 여자들에게 사정(事情)하고 사정(射精)하는 것 뿐"(p422)이라 표현하고 있지요.
  2. 세실리아라는 이름의 여성이 한 말입니다만, 헨리 치나스키 역시 그녀의 이 말에 "당신 말이 맞소"라 맞장구를 쳐주었지요.
  3. 이 대사는 영화 <하녀>에서도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임신중인 아내 역의 서우가 이정재에게 이 말을 했었던 걸로.
  4. 석기용 譯, 「팩토텀」 p316.
  5. 박현주 譯, 「우체국」 p424.
  6. pp29-30에 등장하는 서술과 장면의 묘사는, 일종의 성교육 교재로도 훌륭하지 않을까 싶은 자세함을, 그리고는 끝내, '나의 현실에서도 이러한 배움이 진작에 있었더라면!'같은 부러움 어린 아쉬움을 자아내게 해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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