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동서대전 - 이덕무에서 쇼펜하우어까지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한정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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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에서부터 '핵심 전략', '핵심 비결' 등의 단어를 대놓고 내세우는 이 책이,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있는 요즈음의 시류에 편승하려는 수많은 책들 중의 한 권일 뿐일지, 아니면 진정 우리가 원하는 글쓰기를 소개하고 있는 책일지에 대한 적잖은 호기심으로, 이 '벽돌'의 첫 장을 넘겼더랬습니다. 예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 책을 설명해주고 있더군요.


​이 책은 … 조선을 비롯해 중국, 일본 그리고 서양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장가 혹은 작가들이 선보인 글쓰기의 미학과 방법을 교차 비교해 살펴보면서 ①"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라는 문제에 대해 ②필자 나름대로 접근해 본 작품의 결과물입니다.(p5)


 【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

저자는 이처럼 책의 시작에 이 책이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라는 문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라 표현해놓았습니다. 이 구절은 신중히 읽어내지 않는 한, 이 책을 소위 말하는 '글을 잘 쓸 수 있는 테크닉'을 소개해주는 책으로 받아들일 충분한 소지를 가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러했었었. --;;) 하지만!


​이 책에는 '글을 잘 쓸 수 있는 길잡이'가 될 만한 내용은 담겨 있을지 모르겠지만 '글을 잘 쓸 수 있는 묘책이나 비법'은 없다고 하겠다.(p595)

기껏 벽돌 다 읽어낸다 싶은 시점에 가서야 저자는 이처럼 오해의 소지를 가지지 말라,라는 소개를 해주고 있지요. 하지만! --- 이 벽돌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만을 본다면 다분히 앞뒤가 다른 듯 볼 수도 있겠으나, 벽돌 전체를 차근차근 읽어낸 사람이라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라는 구절은 결국 저자의 표현인 "글을 잘 쓸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라는 것에 동의하게 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 필자 나름대로 접근해 본 】

​"눈은 스스로 볼 수 없다. 코는 스스로 냄새를 맡을 수 없다. 혀는 스스로 핥을 수 없다. 손은 스스로 잡을 수 없다. 오직 귀만은 스스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거울을 스스로 비출 수 없다. 저울은 스스로 저울질할 수 없다. 검은 스스로 공격할 수 없다. - 장조, <유몽영> 중 "(p486)

​이 당연한 듯, 하지만 대체 뭔 소리인지 정확히 알아챌 수 없는 문장에 대해 저자는 "이것이 존재해야 저것이 존재할 수 있듯이, 만물을 홀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 연관되어 있다"(p487)라는 의미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 책은, 2016년의 독자에게 17세기 중국 학자의 글을 이해하기 쉽게 해석해준다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그리하여 크게 보아 이 책 전체를 일종의 독후감 내지는 해설서로 이해해내도 무방하리라는 생각이 들기도하지만!


이옥의 글에서는 사물과 자아의 일체, 즉 주관적 일체감이라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요시다 겐코의 글에서는 사물과 자아의 구분, 즉 객관적 거리감이라는 특징을 엿볼 수 있다.(p472)

와 같은 저자의 주관을, 원문의 소개에 앞서 보여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만의 해석을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아놓고 있다라는 단점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이걸 왜 단점이라 생각하느냐하면 --- 예를 들어, 산더미만한 곡식낫알들이 앞에 있고, 이 낫알들을 키1로 일일이 걸러내 최종적으로 15톨의 곱디고운 낫알을 골라내었다 해보죠. 그 15톨의 곡식을 자랑스레 타인에게 보여주며, 이 15톨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미세한 낫알들이다,라 말한다해도, 우리는 우선 이 주장이 과연 옳은 것이냐라는 의문을 가져보게 될 겁니다. 그가 사용한 키의 구조와 내가 생각하는/사용하는 키의 구조가 다를 수 있기 때문/ 더욱 미세한 구조의 키가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엄청난 노력을 통해 걸러진 15톨의 낫알, 즉 그가 사용한 키의 구조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채 단지 결과물만을 보게되는 것과, 아예 처음부터 나는 이러이러한 구조의 키를 사용할 것이며, 그리하여 결국 어떤 형태의 낫알들이 남게 되는가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히! --- 똑같은 15톨로 결과지어진다 할지라도, 그 15톨을 바라보며 갖게되는 놀라움은 엄청나게 다른 강도를 보여주게 된다라는 점입니다. 이처럼!

이 책은, 비록 책의 시작에 '필자 나름대로 접근해 본'이란 구절로 하여금 그 주관성을 미리 전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는 저자가 15톨의 낫알을 얻어내는 데에 사용한 '키의 구조'를 정확히 알 수 없다라는 점에서, 저자가 뽑아낸 15톨의 낫알에 대한 놀라움의 강도를 심히 저하시켜버릴 수 있다라는 커다란 아쉬움을 지니고도 있지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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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 책은 읽어내기에 상당히 재미있는 책입니다. 저자의 서술도 그러하거니와, 내용 역시 매우 잘 꿰인 구슬들처럼 전체적으로 상당히 아름다운 외양의 목걸이와도 같지요. 하지만, 이처럼 술술술 읽어내려가다보니 결국 남게 되는 건, 뭔가 좌절감스런 참담 밖에 없더군요. "다른 삶이었기에 그들은 다른 글쓰기를 해내었노라"라는, 「문장의 품격」이란 책에서 받았던 느낌이 훨씬 더 강해졌다3고나 할까요?

저자가 15개로 요약해 낸 이 책 속 문장가들의 글쓰기 특징을 다시 분류해 본다면 결국엔 '자기다움4, 자유로움5 그리고 자연스러움6'의 세 가지가 됩니다. 이 세 가지만 갖출 수 있다면 심지어 "이렇게 글을 써야한다고 덧붙이는 구성이니 논리니 문법이니 수사니 형식이니 하는 따위는 실상 부차적인 것에 불과"(p9)하다라 저자는 말하고 있기도 하지요.


【 자기다움 】

요즘의 청춘들이 '자기다움'을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낼 수 있는 글쓰기는 다름아닌 (참 이게 서글픈 현실인거지만) '자기소개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전 언젠가, (불법은 결코 아니었고, 일종의 observer쯤 되는 자격으로) 모 회사에 접수된 청춘들의 입시자원서 몇 백장을 대강이나마 읽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자기소개서'란 걸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제가, 타인이 쓴 '자기소개서'를 판단한다는 게 우스운 상황이긴 하지만 어쨌든, 요즘 청춘들이 어떠한 표현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가를 볼 수 있는 나름 흥미로운 시간이었었지요. 제가 그들의 당락을 결정하는 위치는 아니었었기에, 자기소개서의 내용이란 게 과연 당락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딱 봐도 대부분의 자기소개서(속 자신들의 소개)는 재벌들의 분식회계를 욕할 것도 아니다 싶을만큼 화려하고 다양했으나, 그 글을 통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파악이랄까, 더 나아가 믿음이랄까 같은 건 솔직히 말해 전혀 만들어내질 못하더군요.7 


"만약 그를 찾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글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비록 무쇠로 만든 신발이 다 닳아 구멍이 나도록 대지를 두루 밟고 다닌다고 해도 끝내 찾지 못할 것이다."(p83) - 이용휴 <혜환잡저> 중

즉,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자기다움'이란 바로 --- '나'는 '나의 글'로 표현되어야 한다라는, 뒤집어 말하면/그러하기에 '나의 글'은 반드시 '옳바른 나'를 표현하여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글'은 '말'보다 훨씬 유리한 도구이지요.)


"가면이나 거짓으로 꾸민 얼굴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생기 없는 죽은 얼굴이거나 가짜 표정일 뿐이다. 비록 추하다고 해도 생기 넘치는 자신의 얼굴이 그보다 몇 백 배 몇 천 배는 더 훌륭하다. 글의 문체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p661)

​이 '자기다움'과 관련지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차이와 다양성'이기도 합니다. 이덕무는 "글을 지을 때 역시 여러 상황과 경우 혹은 글쓴이의 수준과 자질에 따라 제각각 천변만환의 묘미를 갖출 수 있고 또한 갖추어야 한다"(p375)라 조언해주지요. 예를 들어,


(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제가 써놓은 독후감을 읽으며 '이건 참 독특한데!'라 자뻑하는 경우 말이죠. 그러했던 느낌을 제게 주었던 글인) 카린 지에벨 作, 「너는 모른다」을 읽고 써낸 저의 감상문과, 문학 전공자 혹은 심리학 전공자, 심하게는 경찰관이 읽고 쓴 감상문은 분명 다를 꺼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전(事前)적 작위가 아닌, 그저 경제학 공부를 오래했던 저였기에 그 소설을 읽고 이건 이런 구도의 소설이네,란 (어느 정도는 기계적 도식에 의한) 생각을 가졌던 것이고, 심리학 전공의 독자라면 또 다른 구도로 그 소설을 이해해내고 그 바탕위에 쓰여진 감상문을 만드어내겠지요.  


​"사유가 곧 표현이다. … 만약 누군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 언제 어느 곳에선가 - 반드시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p388)

이틀 동안 몇 백장의 자기소개서를 대강이라도 읽어보니, 이 글이 어느정도의 솔직함을 가지고 있는가는 정말 보이더군요. 자신을 소개하는 글인 '자기소개서'에마저 '자기다움'을 담아내지 못하는/않는, 이건 시대적 안타까움이 될 수도, 혹은 경박함이나 부정직함의 만연일 수 있다라는 점에서 느껴 본 첫 번째의 '좌절감스런 참담'입니다.



【 자유로움 】

"문장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뜻과 기운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p291) 

(제가 잘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요즘의 청춘들, 뭐 저 역시도 포함되는 요즘의 우리들에게 '글쓰기'란 것이 자기소개서나 블로그 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남기는 글 이외의 무엇이 있기는 할까요? 이 책에 등장하는 옛 사람들에게도 트위터나 블로그스런 글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8, 그것이 어떠한 형식과 길이를 지니고 있다할지라도, 글쓰기의 기본은 바로 "'자신에게서 나온 진실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글을 써야 한다'와 '무엇에도 얽매이거나 속박당하지 않은 진실한 마음과 감정으로 글을 쓰겠다'는 작가 정신"(p313)이어야 한다라 저자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천진한 마음과 순수한 마음은 가식이나 인위가 아닌 '진정성'을 공통분모로 삼는다. … 그것은 많이 배우고 지식을 쌓는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억지로 힘쓴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9"(p19) …… "어느 순간 -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 저절로 자신에게서 나온 느낌과 감정과 생각이 있는 그대로 글로 옮겨질 때 비로소 천연의 아름다움을 갖춘 지극한 문장이 된다. 따라서 세상에서 이른바 '이렇게 글을 지어야 맞다'라는 가르침은 모두 거짓된 견해이자 일종의 사기일 뿐이다."(pp45-46)




취직을 위한 '자기소개서'의 목적성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자신이 읽은 책의 감상문을 쓸 때조차 '서평 당선'이라는 특정 목적을 위해 그 형식과 스타일을 써내는 요즈음의 글쓰기를 보자라면, "명예나 출세에 속박당하거나, 권세나 이익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진실하고 솔직하게 자유롭게 표현하려면 무엇보다도 글쓰기에 '목적'이 없어야 한다. 목적이 있게 되면 반드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글을 인위로 짓게 되고 가식으로 꾸미게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p255)라는 명나라 말기 '공안파(公安派)'의 가르침이 2016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사뭇 받아들여지지 않는/받아들여질 수 없다라는, 그리하여 "할 일이 없어 무료하고 따분한 나머지 쓴 글"(p461)이란 의미의 '도연초(徒然草)'를 만나볼 기회가 적다라는, 그것을 스스로조차 써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라는 것이 바로 두 번째의 '좌절감스런 참담'입니다. 불 위에 기름 붓는 격인 다음의 문장은, '세상 밖 견문과 경험과 체험'을 쌓을 수 없는 저, 그리고 저의 아이 세대에게, 이 두 번째의 참담함에 더욱 아픈 바늘을 찔러주지요.


지극한 경지에 이른 문장이란 "애써 그렇게 쓰려고 하지 않아도 그렇게 쓰인 글"이다. 웅혼한 문장 역시 그렇게 글을 쓰려고 인위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세상 밖 견문과 경험과 체험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웅장한 기운이 자라나고 탁 트여 막힘이 없는 기질이 길러진다. 그러면 그 기운과 기질이 자연스럽게 글에 들어나 애써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오히려 문장은 웅혼하게 된다. (318)


【 자연스러움 】

 "장주(장자)가 꿈속에서 나비10가 되었다. 나비가 된 것은 장주의 행복이다. 나비가 꿈 속에서 장주가 되었다. 장주가 된 것은 나비의 불행이다."(p486)

저자는, "글쓰기 철학고 미학의 궁극적인 경지는 '자득(自得)'일 수밖에 없다"(p596)라 말해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스스로 깨닫고 터득해 자신만의 글을 쓸 것인가'는 다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자기만의 몫"(p597)이라는 거지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자유로움'과 마찬가지로, 이 '자득의 글쓰기'란 것 역시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저로선 해낼 수 없는 것이 아닐까,하는 점에서 예의 세 번째의 '좌절감스런 참담'을 줍니다.


​"자득 … 이것은 배우고 익힌다고 해서 얻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위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오래도록 가슴속에 맺혀있던 것이 마치 홀연히 풀리듯, 마치 술에 취해 있다가 갑자기 깨어나듯, 마치 가득 찬 물이 별안간 터지듯' 깨닫거나 터득할 수 있을 뿐이다."(p634) …… "애써 억지로 글을 지으려고 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자칫 언어의 감옥에 구속당하기 쉽다. … 스스로 깨닫거나 터득한 것이 나를 찾아올 때까지 묵히고 기다리고 또 묵히고 기다려라. 그렇게 하면 비록 한 달에 겨우 한두 편의 글 밖에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마침내 '천뢰', 즉 가장 진실하고 자연스러운 글을 자유롭게 지을 수 있게 될 것이다."(p636)

하지만! --- "평범하고 소박하고 단순한 있는 그대로의 삶에 대한 기록 … 그저 자신들의 삶을 드러낸 것이 불과"(p498)한 글이라도/조차도 써내기 쉽지 않은 2016년의 대한민국 땅 위의 우리가 과연 '묵히고 기다리고 또 묵히고 기다린'다 하여/할지라도, 정녕 도돌이표로 장식되는 '평범하고 소박하고 단순한 있는 그대로의 삶에 대한 기록' 이외의 것을 써낼 수 있겠는가라는, 한숨 푹푹 나오는 의문 앞에서, 개인적으론 이 책의 명확한 (시대적·현실적) 한계를 보게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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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부정적인 느낌으로 감상문이 쓰여지긴 했습니다만, 앞서도 언급했듯, 이 책은 꽤나 재미있게 읽어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딱히 어렵다거나 꼬아쓰여진 부분도 없는, 옛 문헌/글들에 대한 일종의 쉬운 해설서쯤 된다라 할까요? 참으로 인상깊었던, 혹여 저 스스로의 독서에서 접해볼 수나 있을까, 쇼펜하우어나 루소, 호메로스 같은 작가들의 책 속 구절들을 포함해, 여러 명문(名文)들을 적어놓았습니다만, (다른 글들은 다른 곳에서 인용하겠노라는 욕심을 가진 채) '독서'에 관한 가장 인상 깊었던 세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감상문 마무리를 지어볼까 합니다.

● "소년의 독서는 마치 구멍을 통해 달을 엿보는 것과 같다. 중년의 독서는 마치 마당 가운데서 달을 바라다보는 것과 같다. 노년의 독서는 마치 누대 위에서 달을 구경하며 즐기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일은 모두 과거에 경험한 것들의 얕음과 깊음을 돌아본 것으로, 그 얻은 것이 얕은 것과 깊은 것이 될 뿐이다."(p488) - 장조, <유몽영> 중


● "독서한 것을 다시 생각할 때에야 비로소 독서한 것이 자신의 것이 된다. … 끊임없디 독서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이 읽어도 자기 속에 남아 있지 못하고 대개는 잃어버리고 만다.11"(p650) - 쇼펜하우어, <인생론> 중

​그러나! 이 책 속 그 어느 구절보다 저의 마음을 확! 끌어당겼던 구절은 장조의 <유몽영> 중에 나오는 --- "천하에 서책이 없다면 그만이겠지만, 서책이 있다면 반드시 읽는 것이 마땅하다. 술이 없다면 그만이겠지만, 술이 있다면 반드시 마시는 것이 마땅하다."(pp488-489)였었었네요. 이 구절은, 제가 좋아하는, 맥주 마실 수 있는 서점 <미스터 버티고>에 현판에 새겨 걸어놓아도 좋을 듯. ^^


※ 이 책을 읽고 읽어보면 더욱 멋지게 이해될 듯한 책들 :

- 안대회 著,문장의품격, 휴머니스트 刊, 2016.

- 안소영 著, 「책만 보는 바보」, 보림출판사 刊, 2005.

 

 

 

 

 

 

 

 

 

 



 

  1. "곡식 따위를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 - <네이버 국어사전>
  2. 이 책에서 저자가 골라낸 가장 곱디고운 낫알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무목적성·주관성·일상성·다양성·개방성·독창성·참신성·기궤성·미시성·무한성·불온성·진정성·다원성·혁신성"(p6) - 책의 시작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 15개의 낫알은 예의 p6에서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지요.
  3. "그 이유는 이덕무가 스스로 지은 '영처고자서'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이 글을 읽으면 글쓰기에는 기술과 방법 이전에 반드시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p18)
  4. "자기 자신만의 글을 쓴다는 것"(p6)
  5. "무엇에도 얽매이거나 속박당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읽ㄱ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자유롭게 쓴다는 것. … 오직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묘사하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면 될 뿐."(p7)
  6. "억지로 지으려고 하거나 애써 꾸미려고 하지 않으며"(p8)
  7. 어떤 지원자는 자신을 '맥주같은 사람'이라 표현했더군요. 맥주만 마셔도 시원할 뿐만 아니라, 소주와도, 위스키와도, 심지어 사이다와도 잘 어울리는 존재라면서 말이죠. 잘 모르겠습니다. 공적 문서인 입사지원서의 '자기소개서'에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 건지. 암튼 뭔가 절묘한 표현이긴 하네, 하며 기억엔 남더라는... --;;
  8. "5.7.5.의 음율을 지닌 17자로 되어 있는 짧은 시"(p96)인 일본의 하이쿠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사물을 관찰하다가 느끼고 깨달은 것을 소재와 주제로 삼은 글을 즐겨 썼던 이옥"(p441)의 <백운필>등이 그러하지요.
  9. 이덕무의 이 표현이 '많이 배우고 지식을 쌓는 것, 억지로 힘쓰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단지 그것들만으로 '진정성'이란 것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10. "아무 것에도 방해받거나 구속당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인간 세계와 자연 만물을 유영하고 다니는 그 자유분방한 영혼"(pp485-486)
  11. "다시 말해 독서란 자기 사상을 만드는 에너지의 공급원으로만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독서라는 에너지를 바탕 삼아 자기 사상을 만드는 것, 그것만이 참된 독서법이다."(p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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