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진보 Real Progressive - 19개 진보 프레임으로 보는 진짜 세상
강수돌.구갑우.김상봉 외 지음 / 레디앙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보수주의자는 기존의 지배적 사유습성과 생활양식을 그대로 따르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의 삶에서 보수주의가 기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환경의 변화에 의해 강요당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모두 영원이 보수주의자로 살아갈 것이다. 보수주의는 특정한 계급의 독점적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다.

- 유시민 著, 『국가란 무엇인가』 중, 2011, 돌베개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기에, 게다가 '기존의 지배적 사유습성과 생활양식'을 벗어날 수 없었던 대학 1년생에게 '보수'라는 사고의 frame은 당연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보수'완 다른 방식의 사고체계, 이것을 '진보'라 부를 수 있다라면, 제가 처음으로 접했었던 '진보'는 바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내세웠었던 NL이었었지요. 학생운동이란 것에 발을 담그고 싶은 의도조차 없었었거늘 주워들은 바, 아무래도 NL의 터무니없는 주장들보다는 PD의 주장들이 그나마 현실합리적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만 예의! --- NL의 통진당은 박살이 나버렸고, 그나마 남아있는 PD 계열의 진보신당조차 이 놈의 현실정치 속에서 나름의 무언가를 하고 있다란 느낌을 그다지 강하게 주지도 못하고 있지요.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거기에 더해 이제까지 제가 가져왔던, 지켜왔던 사고(思考)와 생활방식이란 것이 혹 잘못 선택되었던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스스로 가지고 있는 요즈음이기에, 도대체 '진보'라는 사람들은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걸까하는 호기심에, '잘못된 첫 만남'일 수밖에 없었던 진보란 사고체계는 과연 어떤 삶을 우리에게 제시해줄 수 있는가하는 궁금증에 선택한 책이었습니다. --- 이 책 「리얼 진보」는 진보 신당 상상연구소가 펴낸 일종의 '대한민국 진보에 대한 안내서'이자 '자기 반성문'이더군요. 자! 스스로를 보수적이고 더욱 보수적이라 생각하는 제가 읽어 본 진보의 이야기는 과연 어떠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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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층의 이해관계에 맞추어서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자'(p63)는 정도로 보수(保守)를 정의한다면, 그러해봤더니 변하는 건 없고 예의 시간만 흘러가더라, 그러니 이젠 "현상을 까뒤집어보고 다른 각도에서 삐딱하게 바라보는"1 시도를 해보자, 그리하여 결국엔 "이미 신석기 말기부터 불평등해지고 전쟁을 다반사로 만들기 시작한 이 세상을 아주 근본적으로 바꾸어 보자는2"(p66) 궁극적 이상(理想)을 가지고 있는 진보(progressive) 혹은 좌파(left)적 사고(思考)는 뭔가 흠칫 주저하게 만드는 면을 가지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제까지 지켜왔던 사고와 생활방식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한 저에게 적잖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김상봉은 이 책에서 진보와 개혁까지를 명확하게 구분짓고 있습니다.3 현실 정치로 보자면 (이 책이 발간되었을 당시의) 민주당은 개혁적이라 불리울 순 있지만, '자본주의 극복의 의지'가 없다라는 점에서 진보는 아니다4라 주장하지요. 진보는 "시장 자본주의를 그 내부로부터 해체하고 사회를 인본주의적 원리에 따라 재건"(p56)하는 것을 (1차적)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목표를 현실에 실행했었던 '소련식 공산주의'가 실패로 돌아갔다 하여 이러한 목표를 "불온시하거나 불가능한 일이라 단정"(p55)하는 것은 지나치게 억울한 멍에다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지요. (김상봉은 '소련식 공산주의'를 자본의 독재를 당의 독재로 대치한 또 다른 억압의 시작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5) 하지만!!!


이처럼 자본주의의 극복이 진보의 궁극적 목표는 아닙니다. 김상봉은 한국의 역사 속에서 기존 권력에 저항했던 대부분의 시도들은 단순히 기존 체제의 부정에서 끝맺음6되었었기에 성공할 수 없었었으며7, 이제 주어진 새로운 진보의 과제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더불어 사는 삶으로 이끄는 만남의 현실적 조건을 확대해 나가는 것8"(p51)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딱히 부정하고 싶지 않은 이상을 지닌 '진보'라는 것이 도대체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에선 일정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박상훈은 이를 ​"진보의 정치적 무능력'때문이라 단정짓고 있습니다.9 여기에 더해지는 손호철의 시각은 진보 정치인들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예의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지점을 향하고 있지요.

진보 진영은 구체적으로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관념적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관념성이 아니라 급진성이 문제라고 생각하여, 관념성을 그대로 둔 채 우경화하기에 바빴다는 점이다. …… 대중이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는지를 읽기보다 대중에게 강의식으로 설교하고 가르치려고만 한 것 같다.(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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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반성과 함께, 이 책은 대한민국의 진보(좀 더 좁게는 '진보신당')가 제시하는 현실적 대안들을 경제,의료, 교육, 복지, 통일, 그리고 환경 등의 분야에 걸쳐 보여주는 각론으로 넘어갑니다. 예의! ---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자'는 보수적 사고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 교육 부분의 대안들은 전혀 공감이 되질 않더군요. 솔직하게는 필자의 주장이 틀렸다!라 말하고 싶은 부분이 더 많았더랬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건강이 개인의 책임이라고 간주한다. 개인의 건강은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고, 아프게 되는 것은 개인이 잘못해서 그렇다고 인식하여,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개인이 상당 부분을 부담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 현대 의료는 건강하지 않은 원인이 개인의 위험한 행동에 있다고 강조한다. 보통 만성질환의 발병 원인을 개인의 흡연, 음주, 운동을 하지 않고 체중 관리를 게을리 하는 것에서 찾는다. 그래서 건강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당연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개인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깊게 파고들어 가다 보면, 건강과 보건의료는 개인의 책임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즉, 모든 사람이 건강한 생활을 원하지만, 삶의 무거운 고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건강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다. …… 만약 비난하려면, 삶의 조건을 동등하게 해 주어야 한다.(pp177-178)

관심이 없었었기에 낯설어졌고, 낯설기에 더더욱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진보'라는 것은 이처럼! (마르크스의 주장들이 알고보니 시뻘건 색이 아니었었듯) 이제까지 우리가 평범하게 생각해왔었던, 정치색이 옅은/배제된 책들 - 바버라 에런라이크 著 「노동의 배신10」과 조은 著 「사당동 더하기 2511」 - 에서도 볼 수 있었던, 낯익은 주장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뿐만 아니라!

'증세없는 복지는 없다'란 지극히 당연한 한 마디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유승민을 잘라낸) 현재 대한민국의 보수완 달리, "조세를 통한 복지가 한국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증세는 분명히 거의 모든 계층의 증세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pp207-208)라는 자명한 주장을 진보가 하고 있었다란 걸 새삼 알게 되었었지요. 그러나!

"진보의 힘은 현실성, 실현가능성에 있기보다 '진짜 진보'를 꿈꾸는 상상력과 용기에 있다"(p11)는 진보 스스로의 판단이 마치 자기충족(self-fufilling)되기라도 하듯, '증세를 통한 복지의 확대'라는 진보의 주장은 노동계의 분명한 반대로 인해 현실화되지 못하고 맙니다.12 이러한 '진보의 딜레마'는 비단 국가정책의 차원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예의 '진보의 딜레마'는 진보주의자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종이컵.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우회하는 기술적 대체물이다. 컵을 씻어야 한다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 씻어야 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여직원일수도, 후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수고를 고분고분 감내하려는 이들은 점차 적어질 것이고 이런저런 불만도 터져 나올 것이다. 그러면 '사소한' 문제로 갈등하기 싫은 공동체는 "돈도 얼마 들지 않는"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곤 한다. 돈이 많이 드는, 그래서 누군가의 일자리가 되는 해결책은 애초부터 고려 사항이 안 된다. 그러나 공짜는 없다. 그 비용을 치르는 것은 자연이다.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외면하는 순간, 울창한 산림을 잘려 나가기 시작할 것이다."(p288)13 

이처럼 각종 대안들을 제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진보의 시각'으로 한국의 현실을 설명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러한 진보의 설명이란 것이 이제껏  제겐 비난의 대상이기만 했었던 현상들이, 단지! 저의 무지함으로 인해 비난의 대상이 되었었다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겁니다. 예를 들어 --- 위에서 증세를 통한 복지의 확대에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천명했던 민주노총의 경우, 왜 민주노총이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밖엔 없었었나 역시 진보의 시각은 다음처럼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지요. 좀 길지만 이를 인용해 보자면,


​노동자가 기업에서 받은 소득을 '시장임금'이라고 한다면, 사회에서 받는 보육료 지원금, 기초노령연금 등은 '사회임금'이라고 부를 수 있다.(p223) …… 2000년대 중반 한국의 사회임금은 7.9퍼센트이다. 우리나라 가구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가계 지출의 92.1퍼센트를 직접 시장에서 벌어야 한다14는 이야기다.(p226) …… 한국에서는 왜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갈등하는가? 다양한 사회,정치적 요인이 있지만, 사회임금이 전체 가구 운영비에서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원인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구조조정은 '가계 파탄'을 의미한다. … 최근 쌍용자동차 사태는 시장임금에만 의존해 사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구조조정에 취약한지, 이에 따른 사회적 가릉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낮은 사회임금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왜 초과 노동에 얽매이는지도 설명해 준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의 위기를 완화해 줄 수 있는 사회임금에 대한 기대가 없다. 일감이 있을 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어려움에 대비해 조금이라도 더 시장임금을 모아 두어야 한다. 종종 언론들이 한국의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임금 올리기에 몰두한다15고 비판하지만, 노동자들이 시장임금에 목숨을 거는 건 척박한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p227) ……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과도한 초과 노동, 격렬한 구조조정 비용은 역설적으로 낮은 사회임금에 대응해 노동자가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합리적' 경제 행위일 수 있다. 노동자 개인에게 이것을 탓할 수는 없다."(p228)

그럼에도 불구하고! --- 진보는 스스로의 희생까지도 전제한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취약한 한국의 공공 재정 건실화에 노동자들에게도 부과될 증세를 "상위 계층들의 누진적 조세 책임을 이끌어 내는 지렛대 역할"(p230)로써 받아들이자는 것이죠. (최소한 이 책을 통해 만나본) 대한민국의 진보가 그리 무책임하거나 과격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반대는 대안으로 조직되어야 하며, 대안으로 반대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는 대안을 만들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 되어야 한다."(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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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제가 소위 말하는 '촛불시위'란 것을 못마땅해했던 바로 그 이유를 이 책은 예의 (과거의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개혁세력의 명백한 실수라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 "요즘 오직 하나의 적이 문제라는 논리가 확산되고 있다. 그것은 이명박 정권을 파시즘, 독재,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하고 반대하기만 하면 한국 민주주의 과제가 일거에 해결될 듯 주장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악마화'라고 할 수 있다"(p88)는 이대근의 주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를 '악마화'하고 반MB를 '신성시'해 MB에 반대하는 것 그 자체가 '민주'고 '진보'라고 착각하는 추세가 생겨나고 있다.(p330)

란 손호철의 지적은 그야말로 제 속을 뻥!하고 뚫어주었을 만큼 저의 생각을 기가 막히게 문장으로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16 (여기에 더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여전히 높게 유지되고 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MB를 악마화해 MB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치를 너무 낮춰 놓은 데에 기인한 점도 크다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란 분석은 그야말로 Two thumbs up!을 아니외칠 수 없더군요.)


​아무리 진보의 목적이 '인간답게 살기 위함'이라 할 지라도, 그리하여 "권력이 주어지고 말고 등등은 다 부수적 부분들"(p69)라 말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현실에선 엄연히 "정치가 필요하고 통치도 필요하며, 권력과 권위의 부여도 불가피"(p113)한 것이기에, 게다가 정당의 존재 이유가 '정권의 획득'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진보 진영 (구체적으로는 진보신당) 역시 선거를 통한 권력의 획득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요. 이 책은 이처럼 이제까지 대중에게 '강의식으로 설교하고 가르치려고만' 해왔던 스스로의 과거를 이처럼 철저하게 반성할 뿐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 대중교통 체계 개편 성과로 국가 운영을 위임받았듯이 진보 진영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당위적인 거시 담론보다 '지금 여기서' 진보적 모델 사례를 만들어 내 대중이 이를 체험하게 하는 일이다.(p238)

​라는 현실적 과제까지를 제시해놓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 앞으로 이렇게 노력할테니 우리를 좀 잘 봐달라!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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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의 사고(思考)와 생활방식에 근거한 (대략 지난 28년간의) 제 정치적 선택이 과연 무언가 변화 혹은 발전을 이루어냈느냐란 자문에 '그러하다'란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 그 사고에 변화를 주어보자는 시도, 그리고 그에 근거한 현실에서의 정치적 선택을 한번쯤은 시도해봄직하지 않나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생각의 변화와 정치적 선택의 변신이 지금 당장, 혹 저의 생애에서 확실한 '다름의 결과'를 보여주진 못할지라도, 그리하여 또 하나의 '대략 28년 이후'에 (제가 살아있다면) 또 다른 혹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질지라도, 종원군의 세상에서만큼은 최소한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실제 액셀레이터를 밟고 달리는 즐거움은 종원군 세대가 누릴지라도, 최소한 시동은 걸어놓으려는 노력! 이것만큼은 아비된 마음으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기에 말이죠.

 

▶ 짧은 한두 마디 : '나'에게! 이런 책을 읽게 만들어 준, 그리하여 새로운 선택에의 시도를 결심하게 만들어 낸 현 정권의 놀랍기만 한 class!!!

 


※ 본문에서 언급된 책들의 감상문

- 조은 著 「사당동 더하기 25

- 허태균 著, 「어쩌다 한국인


 

  1. 목수정 著,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중 pp289-290.
  2. "지금까지 '평화'라는 것은 이상(理想)으로 가끔 언표될 수는 있었찌만 실재(實在)한 적은 없었습니다. 전쟁이 아니면 전쟁 대비가 인간 사회의 '통례'가 됐습니다. ……평화는 여전히 꿈으로 남아 있고, 그 꿈을 버리지 않으려는 좌파들은 늘 '비현실적'이란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pp65-66)⁠⁠
  3. 김상봉은 '제3의 길' 노선 역시 진보라 불러울 수 없다라 주장하고 있지요. --- "'제3의 길'론자들은 우리 시대 지구 자본주의의 현실에 기존의 진보적 성취들, 즉 복지국가 등을 적응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금융화, 지구화는 결코 되돌리거나 가로막을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며, 이제는 복지 제도도 시민들이 시장 경쟁에 뛰어들도록 준비시키는 데 주된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p32)
  4.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진보'였는가>라는 장(章)의 필자 이대근 역시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①"한국에서는 자유주의 세력(liberal)과 진보 세력(progressive , left)을 뚜렷이 구분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극우 세력이 김대중 정부를 ‘진보 좌파’라 몰아 대고, 노무현 정부가 별다른 진보적 프로그램 없이 ‘진보’를 자처하면서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둘은 엄연히 그 기본 가치와 관점, 철학이 다르다.(p87)"
    ②"친노 세력은 노무현 정권의 성격을 진보로 재평가하고 있지만, 근거가 없다. … 친노 세력은 노무현 정권의 실제 정책보다는 그가 당초 목표로 제시했지만 실현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국가 운영 구상을 근거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노무현 정권 평가에 오류가 나타난다. … 노무현 정권을 진보 정권으로 규정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로 고통받았던 서민들을 희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진보적인 개혁을 포기하고, 그로 인한 실망이 깊어져 보수 헤게모니가 확산되게 기여해 놓고 퇴임 이후 진보주의를 연구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서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친노 세력이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기 위해 진보 노선을 내세웠다는 것은, 이명박 정권 반대의 올바른 방향은 역시 진보적 대안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p96)
  5. "어느 누구, 어떤 집단도 그리고 무엇을 빙자해서건, 개인을 도구화해서는 안 된다는 명확한 자각이 없을 때, 정치는 쉽게 집단의 힘으로 개인을 억압하거나 약탈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새로운 진보는 그런 집단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정치 문화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어야 한다."(pp44-45)
  6. "지금까지 진보 운동은 자기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이었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저항해서 권리를 찾았고, 제3세계 민족들은 제국주의자들에게 저항해서 권리를 추구했고, 여성은 남성이 지배하는 지배하는 사회에 저항해서, 그리고 모든 소수자 운동은 다수 혹은 사회 주류에 저항해서 자기의 권리를 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보 운동이 벽에 부딪혀 온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내적으로 보자면 바로 그 이유, 즉 권리가 운동의 궁극적 목표가 되었던 데 있다. …… 단순히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그것을 되찾으려 하는 운동이 진보 정치 운동이라면 그것은 당파적인 계급 투쟁을 벗어나기 어렵다. 참된 진보 운동은 권리 찾기 운동이 모두를 위한 것일 때 정당성을 갖게 된다. … 따라서 참된 진보 정치 운동이란 어떤 특정한 계급이나 집단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권리 찾기를 뜻하는 바, 이런 문맥에서 보자면 진보 정치 운동이 추구해 온 정의란 어떤 사람도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고 모든 사람 사이에 권리의 균형이 이루어진 상태이며, 평등이란 모든 사람이 동등한 기준에 따라 권리를 행사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처럼 진보 운동이 모든 사람을 위한 운동이라는 것이야말로 그것의 대중성을 담보하는 근거이며, 진보 운동의 현실적 힘도 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pp57-58)
  7. 이러한 문제점은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다라 오건호는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노동운동 진영은 국가와 자본을 향한 요구 투쟁에 집중해 왔다. … 그러한 방식에만 의존하는 것은 운동의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p239)
  8. "정치란 참된 자유와 만남이 실현된 나라를 향해 현실 국가를 끊임없이 지향하는 활동"이다.(p44) - 진보신당 강령 중.
  9. "필자는 우리 사회의 진보파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무능력에서 비롯된 바 크다고 생각한다. … 대다수 진보파들은 민주주의와 대중정치를 이해하고 그것에 적응하기 보다는 기존의 자신들이 견지했던 이념의 언어로 현실을 재단하고 대중을 계도하려는 태도가 강했다."(p103)
  10. "자기중심적인 중산층 특유의 시각으로 이들이 주거 문제를 접하는 방식을 보고 있자니 돈을 불합리하게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알고보니)가난한 사람들만 아는 절약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이 수두룩했다. 아파트를 구할 때 지불해야 하는 한 달치 집세와 한 달 집세에 상응하는 보증금이 없으니 결국 일주일 단위로 방을 빌리면서 엄청난 방세를 내야 한다. 가전제품이라고는 끽해야 전열기 하나밖에 없는 방에서 살아야 한다면 콩 스튜를 잔뜩 끓여 냉동시켜 놓고 일주일 동안 먹는다는지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주로 패스트푸드나 핫도그 또는 편의점에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스티로폼 용기에 담긴 수프 같은 걸 사 먹게 된다. 의료보험에 들 형편이 안되니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없고,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약도 구할 수 없고, 그러다 결국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11. 금선 할머니 가족이 빈곤 문화 때문에 빈곤해졌다고는 할 수 없다. 적어도 그들 가족의 빈곤의 출발선은 아니다. 빈곤의 출발선을 할머니로 삼을 경우 할머니의 생활 양식에는 빈곤 문화로 꼽히는 절제 없음, 알코올 중독, 게으름 …… 심지어 성적 문란 그 어느 것 하나도 해당되지 않았다. 할머니의 빈곤의 시작은 한국 전쟁이었고 월남해서 집도 남편도 없는 상황에서 세 살, 여덟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혼자 생계를 해결해야 했던 스물여덟 살의 여성 가장에게 아무런 '과부대책'이 없었을 뿐이다. …… 아무리 일을 해도 돈을 모울 수 없었다. 할머니 자녀들은 특별한 범죄를 저지르지도 요령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빈곤 문화'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생활양식이 나타났다. 이들은 부모 대에 왜 월남해야 했는지에 대해 물어 본 적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 이를 역사의식의 결여라고 한다면 역사의식의 결여다. …… 결혼할 나이가 되어 여자를 보았는데 결혼식 올릴 돈이 없어 동거부터 했다. 혼전 임신해서 아이를 낳는, 이른바 미래에 대한 계획 부족이라는 '빈곤 문화'는 이들 계층에서는 일상적이다. 즉각적인 욕망을 지연할 동기 부여에 약하다고 빈곤 문화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당연히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청소년들은 가출, 성적 문란은 일상화되고 알코올 중독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나타난 빈곤 문화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할머니 가족뿐 아니라 사당동과 상계동에서 만난 가난한 가족들의 생활양식은 모두 가난의 원인이라기보다 가난의 결과였다. …… 이러한 빈곤 문화가 이들 가족을 빈곤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빈곤함이 그리고 빈곤의 재생산 구조가 이들 삶의 조건이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가난의 조건에 대한 보이지 않는 구조를 이들 가족이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체현하고 있다. …… 오스카 루이스의 <산체스네 아이들>의 서문에 '가난이란 어떤 적극적 의미까지 가지고 있어서 빈민들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구조이자, 방어 기제이다. 간단히 말해서 가난의 문화는 유난히 견고하고 지속적이며 대대로 전수되는 생활양식이다.'"(저자는 이를 '가난이 낳은 가난'이라 표현하고 있지요.)
  12. "조세를 통한 복지를 위해서는 민주노총 사업장의 노동자도 당연히 더 많은 근로소득세를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정규직 노동자가 조금 더 부담하고 사용자와 국가가 더 많이 부담하여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원하자는 아주 미약한 '사회 연대 전략'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거부했다. 민주노총은 위원장이 나서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민주노동당은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되었는데도 민주노총의 공개적 반발에 이 사업을 전혀 추진하지 않았다."(p211)
  13. 예전에 나무 젓가락을 두고 저와 와인매냐님이 나누었던 농담스런 대화가 떠오르더군요. '환경 보호'를 위해 젓가락질을 잘 못함에도 불구하고 나무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와인매냐님의 말에, 전 '경제 성장'을 위해 나무 젓가락을 사용한다라 응답했었었지요.
  14. "반면 OECD 회원국의 평균 사회임금 비중은 31.9퍼센트로 우리나라의 4배, 스웨덴은 48.5퍼센트로 6배에 달한다."(p226)
  15. "노동자들이 우선은 정규직 고용을 선호하지만 나중에는 비정규직이라도 좋으니 계속 '고용'되기를 바란다는 사실 … 생계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노동의 인간화나 경영의 민주화를 이루는 주체로서 모습을 더는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노조 또는 노조의 대의원들은 일자리를 유지하고 일거리를 더 많이 확보하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p259)
  16. 이와 관련하여선 허태균 著 「어쩌다 한국인」에서도 동일하게 지적되고 있었었지요.
    ① "설사 기계나 시스템의 잘못이라고 밝혀져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찾는 데 더 집중한다. 만약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날씨가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 문제를 일으켰다면, 그것을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한 사람을 찾는다."(p178)
    ②"우리의 분노는 나쁜 놈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놈이 충분히 처벌받는 것을 보면 정의가 실현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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