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사랑과 희망의 인문학 강의
류동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단 하나뿐인 '진정한 나'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대인 관계마다 드러나는 여러  얼굴이 모두 '진정한 나'다. …… 분인(dividual)이란 대인 관계마다 드러나는 다양한 자기를 의미한다. (p13) …… 나는 분인의 집합체로 존재한다. 그것들은 모두 타자와의 만남의 산물이며,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다. 타자가 없다면 나의 다양한 분인도 없고, 요컨대 지금의 나라는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p127)

일본의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쓴 「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들입니다.  2015년의 대한민국이, 이 책 속 이 구절들에 대하여 이른바 일컬어지는 '사상적 의문'이란 걸 던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었지요. 하지만!!! --- 제가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이제까지 (명칭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마르크스주의"를 바라보았던 시선(視線) 속엔 갖가지 사상적 의심, 심지어 종교적 의문까지가 깃들어 있었었음을 이 책,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을 통해 창피한 감정, (이걸 왜 이제야 깨달은걸까?란) 안타까운 감정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까지의 저의 삶이 얼마나 단순했었던가를 반성하게 되었다는 것과 함께 털어놓을 수밖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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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적 본질은 각각의 개인들에 내재하는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이다.1"(p33)


마르크스의 (단지 경제학이라는 특정 학문에 한정된다라기보다는) 사상(思想) 역시 이처럼 ---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에서도 읽을 수 있었던, 바로 그 구절로부터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책으로부터의 많은 인용구들을 각주로 돌려놓았습니다. 부디 그들에게도 관심 가져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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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저자 류동민은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인간의 유적(類的) 본질은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데'(p52)있다라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바로 이 점,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 불가능하기에 노동자, 더 나아가 인간이 (필연적으로) 소외를 경험하게될 수 밖에 없다2는 결론이 나온다라는 것이지요.3 대체 왜 자본주의 하에서는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라 주장되어지는 것일까요?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4"(p109)


이 인용구는, "I am what I eat!"류의 rhetoric으로 표현되곤 하는, '나'라는 개인이 속해있는 환경으로써 '나'라는 존재가 정의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명제입니다.5 여기서, 물질적 환경이란 조건이 '나'라는 존재를 단지 물질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신적 본질까지도 규정하게 되어버린다는 점이 바로!!! '소외'를 가져오는 근본적 시작점이 되는 것이지요.6  "



【 물신7(物神),fetish 

"어떤 사람이 왕인 것은 오직 다른 사람들이 그를 받들어 신하로서 복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대로 그가 왕이기 때문에 자기들은 신하라고 생각한다.8"(p67)9

 

'수단과 목적의 전이(轉移)'가 초래하는 폐해(에 대하여는, 울궈먹어도 너무 울궈먹는 거 아니냔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여러 번 적었었으나 한번 더!) 는 '물신성'에서도 예의 그 진가(?)를 발휘하고 맙니다.

화폐가 화폐인 것은 원래부터 화폐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너도 나도 상품을 그것과 바꾸려 욕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신이 되어 버린 돈은 이제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손에 얻기 위한 수단이었던 돈이 그 자체로써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pp67-68) …… 화폐와 교환되었으므로, 즉 팔렸으므로 그것은 가치를 갖는 것으로 믿게 됩니다. 가치를 갖기 때문에 팔리는 것이 아니라 팔렸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pp131-132)

저자는 '정조(情操)를 지키기 위해 자결하는 것, 죽은 남편에 대한 성실의무를 다하기 위해 본능을 억압하고 수절하는 것'(p71) 등의 전근대사회를 지배했던 관습들이야말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물신이 되어 거꾸로 인간성을 억압하는 비극적 결과10라 적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단과 목적의 전이'는 비단 과거의 일들만은 아니지요. '제대로 가르치고 배웠다는 증거'로서의 시험성적이란 수단이 거꾸로 목적이 되어, '오직 시험결과만으로 배움의 성취도를 평가'하게 되는 작금의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이 그지같은 현실11은 또 어떻습니까.12 


​그렇다면 이러한 '소외'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극복되어질 수 있는 걸까요? 이 과정에 대한 오해야말로 --- 이제까지 제가 (그리고 어쩌면 '당신'도)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잘못된 시선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결정적 원인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 물질의 변화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즉 자신이 선택하느 상황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상황 하에서 만든다.13"(pp102-103)

여러 가지 사회적 관계의 총합으로 개인의 본질이 규정되지만,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개인이 모든 사회적 관계를 개인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없다는 점'(p109)이라는 것, 즉! ---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구조가 존재하여, 개개인의 행동반경의 상한과 하한을 제약한다라는, 쉽게 말해 '용이 개천에서 태어날 수는 없다'라는 구조 속 인간의 한계란 것이 명확하게 존재한다라는 겁니다.14 인간은 이, 마치 삼장법사의 손바닥과도 같은 이 한계를 과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걸까요?


상부구조물은 그 하부에 있는 구조, 즉 토대 없이 혼자서는 서 있을 수 없습니다. 토대가 무너지면 상부구조물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토대가 A에서 B로 바뀌면 그에 대응하는 상부구조물도 A'에서 B'로 바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세상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즉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마음먹기'가 어느 특출한 개인이나 철학자의 머릿속에서 스스로 만들어지는 생각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상식조차도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여기'의 물질적인 조건들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지요. 노예는 노예다운 생각을 할 수밖게 없으며 자본가는 자본가다운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독재자에 의해 정치적으로, 또는 종교적 신념에 의해 정신적으로 철저하게 통제된 체제에 어느 순간 균열이 생겨나고 결국에는 무너지는 것도, 그저 사람들이 생각을 고쳐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생각을 고쳐먹게끔 만드는 물질적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pp112-113)

이처럼 물질적 환경이 인간의 정신적 본질까지도 규정하고 있는 상황 하에서 '물질적 변화'는 과연 어떻게 사회의 토대를 바꿀 수 있는 걸까요? 토대가 바뀔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이 갖추어지기 전까지는, '생각을 고쳐먹은 누군가'가 제기하는 이 '문제적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는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그저 사회로부터의 왕따가 되고 맙니다.15 하지만!!!


"​①새로운 더욱 높은 생산관계를 그 물질적 존재조건들이 낡은 사회 자체의 품에서 부화되기 전에는 결코 대신 등장하지 않는다. ②따라서 인간은 항상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제기한다. 자세히 보면 과업 자체가 그 해결을 위한 물질적인 조건들이 이미 주어져 있거나 적어도 생성과정 중에 있는 곳에서만 출현하기 때문이다."(p239) -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 중.

①번과 ②번 문장이야말로, (우리가 잘못 배웠었기에 오해할 수 밖에 없었었던) '역사발전 5단계론'에 대한 마르크스의 본뜻을 담고있다라 생각됩니다. 이에 대한 마르크스 경제학자인 류동민 교수의 설명은 다음과 같지요. --- "인간은 항상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제기한다"는 문장의 의미를 글자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제기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해당 사회가 이미 일정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갖춘 수준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문제가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해결을 위한 과정이 진행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p241)

즉! 러시아라는 후진농업사회가에서 선도적 정치의식을 지닌 소수의 직업혁명가에 의해 시작되었던 20세기 '사회주의 혁명'과 그 실패를 가리켜 '마르크스 역사이론의 실패'라 규정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오해이며, 오히려! --- 마르크스 역사이론의 (정당한) 입증이라 평가받아야 한다라는 것이지요.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라는 것이 있다면, 그 또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하기 전까지는 성립하기 어려우며 우연히 성립하더라도 지속될 수 없습니다.(p121)


【 공산주의  

 

​존재론적으로 현실이 그러하든 그렇지 않든 많은 사람들이 당위론적으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 나아가 현실도 결국에는 당위를 향해 움직여 갈 것이라고 믿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16. 만약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현실은 물론 그렇지 않거니와 앞으로도 당위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회는 정상적으로 유지되지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p169) 

​제가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공산주의는,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란 역사의 발전과정을 기계론적으로 정의해 놓은 '역사발전 5단계설'이 거의 전부가 아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가설은 정말 유치합니다. 예의!!! --- 이는 소련이라는 특정 사회에 의해 의도적·자의적으로 변질된 마르크스의 사상이라는 것이 저자 류동민 교수의 주장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공산주의란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 현실이 이에 의거하여 배열되는 하나의 이상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을 공산주의라 부른다."(p248)

- 마르크스·엥겔스 共著, 「독일 이데올로기」중.

저자 류동민을 이를 가리켜 "현실에서 완전하게 달성될 수는 없으나 현실이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이념적 원형"(p249)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 '공산주의'란 이념을 (우리가 흔히 떠올리게 되는, 사유재산을 전면부정하는 그런 류의 가공된 시뻘건 이미지가 아닌) 현실의 변화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이 구성되어 가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그 연장선상을 따라가 보자면 뜻밖에도! '심지어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도 다양한 수준에서 현재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공산주의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을'(p250)수도 있다라는 것이 저자의 (반박할 수 없는) 주장이지요.

 

 

 

 


 

 

"공산주의는 단지 사적 소유(사유 재산)를 철폐하고 국가계획을 도입함으로써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질이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지는 상태, 인간과 인간의 충돌이 진정으로 해결되는 상태여야 하는 것입니다."(p265)



【 마르크스의 꿈 

​이 책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를 읽고 나니 결국!!! --- 마르크스를 '인간의 자기 소외, 더 나아가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 전체의 소외라는 불행을 어떻게 극복해낼 수 있는가하는 가를 말하고 싶었던 인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제시했던 해결책이 바로 '인간의 자기소외가 없는 상태'로 정의되는 공산주의라는 것이었지요.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란 표현이야말로 --- (자본주의 하에서) 아파하고 있는 우리에게 마르크스가 진작에 제시했던 하나의 처방전을 소개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위에 소개한 '소외, 물신, 공산주의'라는 개념들 이외에도 이 책은 '국가17, 종교18'등에 대한 마르크스의 사상과 대중의 오해를 소개 및 교정해주고 있습니다. 자! 이제 마르크스가 얼마나 인간의 소외 문제에 대하여 천착했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문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어찌보면 저 스스로의 공부를 위한 정리일 뿐인) 이 감상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마르크스라는 인물과 그의 사상에 대한 오해를 교정해주었을 뿐 아니라, 마르크스라는 인물을 사뭇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을 갖게 해주신, 이 책의 저자 류동민 교수님께 여전히 변함없는 감사의 말씀을 이 감상문에서도 역시 빼놓을 수는 없네요.  

​"네가 사랑을 알면서도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즉 사랑으로서의 너의 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네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너의 생활표현을 통해서 너를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너의 사랑은 무력하며 하나의 불행이다."(p260)

- 「경제학·철학 초고」중

▶ 짧은 한두 마디 : "난 아직 젊기도 하며, 또한 그 시절을 보낸 40대 중후반이기도 합니다!" --- '젊어서 마르크스에 빠지지 않으면 바보지만, 그 시절을 보내고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으면 더 바보'라 말한 칼 포퍼에게 건네는 나의 한 마디.

 

 


※ 반드시! 함께 읽어보길 권하는 책들

- 홍기빈 著,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 류동민 著, 「프로메테우스의 경제학


※ 읽어본, 류동민 교수님의 다른 책들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기억의 몽타주

 




 

  1.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중 여섯번째 테제.
  2. "오랫동안 열정적으로 추구하던 목표를 이루지 못하였을 때,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관계의 총체 중에서 어느 한 측면을 잃게 됩니다."(pp36-37)
  3. "마르크스와 주류경제학의 차이라면,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언제가 일하는 것을 싫어하느냐하는 물음에 어떠한 대답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p53) …… 마르크스가 다루는 것은 노동력의 매매 과정입니다. 즉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것은 노동자이고 권력은 그 노동력을 사줄 자본가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본질적인 문제는 '파는 순간'의 얘기가 아니라 '팔고 나서'의 얘기라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른바 자유무역론자들은 다른 상품이나 노동력이나 별로 차이가 없는 똑같은 상품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파는 순간'과 '팔고 나서'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노동력과 다른 일반적인 상품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마르크스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p145)"
  4.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 중.
  5. "마르크스의 사상은 인간이 하나의 동물적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먹고 마시며 살아가느냐 하는 특정한 생활양식,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느냐 하는 생산양식이 우리의 삶, 나아가 우리의 사고방식까지도 규정하게 된다는 것, 이 점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야말로 마르크스의 공헌이라 할 수 있습니다."(p63)
  6. "노동의 개념을 정신적 활동으로까지 확장한다면, 인간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사유조차도 자신의 독립된 사유로 만들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독립적인 하나의 존재가 되는 셈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정해 놓은 사유의 방식에다 자신의 사유를 끼워 맞추는 사람은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스스로의 힘으로 주체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는 하나의 독자적인 인격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p64)
  7. ⁠"사람은 나면서부터 유한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갖지 못한 모든 미덕을 완전하게 갖춘 존재를 갈망하며 상상했습니다.…… 신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믿음만으로는 충분한 위안이 되지 못합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돌이나 나무를 쪼아 신의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물건으로 만들어진 신, 즉 물신=페티시fetish입니다."(pp65-66)
  8. 「자본론」 1권 중.
  9. "권력을 갖는 자는 실상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권력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비로소 권력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의 인정이 일상화하면,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의 권력이 스스로의 내적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 반대로 권력에 지배당하는 이들은 스스로가 그 권력을 부여한 원천임을 깨닫지 못하고 일상적으로는 권력을 두려워하고 그에 기꺼이 복종합니다."(p69) --- 얼마 전 읽었던 에티엔 드 라 보에시 著, 「자발적 복종」의 명쾌한 요약!
  10. ​"화폐는 원래 상품의 가치를 나타내기(represent)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든 상품은 그것과 교환됨으로써만 가치가 있음을 입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 모든 것은 가치가 없습니다. …… 마찬가지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결혼이나 성교가 이제는 그것으로 표현되지 않는 모든 사랑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에 이릅니다."(pp178-179)
  11. "마르크스는 경쟁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의식을 낳으며 결국 현실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 경쟁은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필요한 것인데, 거꾸로 경쟁을 거쳤으므로 성과 역시 틀림없이 좋을 것이라는 식의 뒤집어진 의식이 생겨나곤 하는 것이지요. 또는 성과가 좋지 않은 것은 경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현상 때문에 정작 내재되어 있는 현실의 문제를 왜곡하거나 은폐하기까지 합니다."(pp159-160)
  12. ​"흔히 말하는 '역사는 민중의 힘으로 발전한다'는 명제는 피지배자들의 저항이 임계점에 이르러 권력의 물신성을 깨뜨리는 순간에 성립하는 것입니다. 독재자들의 동상이 거리에 내팽개쳐지는 장면들은 바로 권력의 본질이 물신성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 (또한) 정조나 순결과 같은 개념 대신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것은 물신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pp70-71)
  13.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중.
  14. "마당쇠나 언년이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의식을 결코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노예는 스스로 노예됨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에만 고통스러운 삶을 그럭저럭 견딜 수 있기 때문이지요.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즉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순간, 노예는 개인적인 삶을 견디기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배제당하게 될 것입니다."(p112)
  15. 저자 류동민은 1990년대 초반, 성의 자유라는 문제를 제기했던 마광수 교수를 일례로 들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성의 자유라는 문제가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사회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그가 제기했었다"라는 것이지요.
  16. (일반적으로 어떠한 특정) 명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존재론적 측면과, 비록 현실은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규범적으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적 측면입니다. 앞의 것은 흔히 'sein의 문제'라고 부릅니다. 현실이 '그러하다'라는 뜻입니다. 뒤의 것은 역시 독일어로 'sollen의 문제'라고 부르는데 …… '마땅히 그러해야만 한다'는 뜻이지요.(pp168-169)
  17. "국가가 무색무취한 중립적 실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환상입니다. 마치 국가대표 축구팀이 외국 대표팀과 일대일로 맞붙는 A매치 경기를 볼 때처럼, 국가가 동질적인 하나의 실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것은 국가가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일 따름입니다. 국가기구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국가라는 이름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는 끊임없는 견제와 토론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럴 때에만 국가가 공공의 명분으로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pp208-209)
  18.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의 환상적 행복인 종교의 폐기는 바로 인민의 현실적 행복에 대한 요청이다. 인민의 상황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라는 요청은, 이 환상을 필요로 하느 상황을 포기하라는 요청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그 기원에서 본다면, 종교를 자신의 후광으로 삼고있는 간난의 삶에 대한 비판이다."(p206)- <헤겔 법철학 비판>의 서문 중 : 권력의 소유자가 신격화되고 정확하게는 물신이 되면, 그 앞에 엎드리는 이들은 현실의 불확실성과 미래의 불투명성 때문에 생겨나는 고통을 권력의 소유자에게 맡겨 버림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권력에 대한 복종이 그저 환상이라고 깨우쳐 주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이해하고 그에 기초하여 극복을 도모할 때 비로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종교비판은 그러므로 종교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모든 물신과 환상에 대한 비판입니다. 동시에 그것들을 낳을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먼저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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