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8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종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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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핑키님께서 읽으신 작가의 책』에서 --- 많은 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혹은 만나고 싶은 작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꼽았다 하더군요.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저에게,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단지 '4대 비극은?'류의 퀴즈를 위해서나 필요한 작가로만 간주되어왔거늘, 이제 책 좀 읽는다고, 대체 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면 어떤 작품을 썼길래?하는 호기심이 드디어/기어코 저로 하여금!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들 중 이 작품 『맥베스』​를 선택한 건, 별 이유 없이, 그저 얼마전 영화 <맥베스>가 개봉했다라는 뉴스를 보았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별 거 없죠? --;;) 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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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감록 】

'이제 조선왕조가 망할 것이고, 정씨 성을 가진 진인이 나타나 계룡산에 수도를 둔 새 왕조를 창건할 것이다'란 <정감록>의 스코트랜드 판이라 이 작품을 요약한다면, 예의 문학 비전공자의 무식함이란 소리를 듣게될 까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귀환하는 맥베스 앞에, 세 마녀가 등장하고, 그녀들은 맥베스를 향해 '글래미스 영주', '코더 영주', '장차 왕이 되실 분'이라는 세 가지의 칭호를 붙여 칭송을 합니다. 맥베스는 현재 '글래미스의 영주'이므로 1번은 맞는 것이었으나 나머지 두 가지의 호칭은 (그 순간까지만 해도) 그에겐 여전히 "남의 옷"(p24)일 뿐이었지요. 헌데 말입니다!

곧이어, 왕의 사자(使者)가 나타나 왕이 맥베스를 '코더의 영주'로 봉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겁니다. 이거 이거! --- 곧바로 맥베스에겐 무서운 야망이 생겨나게 되지요.

"두 가지 점괘는 맞아떨어졌구나(Two truths are told). …… 이 신비로운 유혹이 나쁠 리가 없다."(p24)

'괴상한 지식'(p20)으로 들렸던 마녀들의 말을,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이 '예언 같은 축사'(p20)라 말하며, 이내 그것을 아예 'truths'라 확정지어버리죠.1 이는 ---  정 처사라는 인물이 몇몇 신비한 경험을 겪고는 이를 '하늘의 뜻'이라 여겨 곧 태어난 자신의 아들이 <정감록> 속 '정 진인'이라 믿게 되었고, 그런 아버지의 굳건한 신념으로 길러진 소년이 일생동안 (착각 속에서나마) 황제(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라는 내용의, 이문열 作 『황제를 위하여』와도 상통되어지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황제를 위하여』에서 정 처사가 '황제'의 삶 자체를 설계하고 확정지어준 인물이었었다면2, 맥베스의 어슴프레 피어난 야망에 결정적으로 기름을 퍼부은 이는 바로 그의 아내였었습니다. 그녀는 막상 왕을 살해하고 왕좌에 오르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데 주저주저하는 맥베스에게 다음과 같은 독려를 해주지요.


당신의 천품, 지름길을 취하시기에는 너무나 인정의 달콤한 젖이 많으십니다. 당신은 위대해지기를 원하시며, 야심이 없으신 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조종할 사악한 마음이 없으십니다. 몹시 원하시는 것을 정당한 방법으로 이루려 하십니다. 잘못은 범하지 않으려 하면서 부당한 것을 바라십니다. 위대한 글래미스 영주시여, 당신이 원하는 것은, 만약 원한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일을 두려워하시면서 이대로 물러나지도 않으려 하십니다.(pp32-33)3 …… 발을 적시지 않고 물고기를 얻으려는 고양이처럼 살아가실 작정입니까?(p43)

"나의 여자의 마음을 버리게 하고 머리 꼭대기에서 발톱 끝까지 잔인한 마음으로 가득 차게 하라!"(p34)라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는 맥베스의 부인에게선 흡사 ('모든 여자, 모든 아내'를 대상으로 하는 표현이 아니라) 우리 사극의, 흔히 '왕의 첩'들에게서 보여지는 그런 이미지의 여성상이 보여지기도 합니다. 헌데 말이죠!!!



​【 Self-fufilling prophecy 】

결국 계획을 실행에 옮겼고, 그리하여 원하던 것을 어찌되었든 손에 넣었지만, 맥베스와 그의 부인에게는 뭔가 찜찜한 마음이 가시질 않습니다. 게다가(?) --- 이걸 '가시질 않았다'라 표현하는 것 역시 약간의 어폐가 있다 생각합니다.

맥베스는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 자신이 뭔가 능동적인 행동을 취하여야 겠다란 생각을 애초부터 가졌었던 건 아니었더랬습니다. '운명이 나를 왕이 되게 해줄 셈이라면 그렇지, 운명이 왕관을 씌워줄 것이다. 내가 서둘지 않더라도. …… 아무리 사나운 날이라도 때와 시간은 흘러간다.'(p26)에서처럼 (역자의 해설처럼 그에게 '왕이 되고싶다'란 야망이 이미 내재해 있었다고 한다해도 당장엔) 걍 흘러가는 운명에 그냥 맡겨볼 심산이었던 거지요. 그러는 와중에 부인의 독려가 곁들여져, 막상 모험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암살'이라는 능동적 행위를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에 조차 그에겐 뭔가 꺼림직한 마음이 여전히 가시질 않기만 한 겁니다.


만약 암살이 그 성과를 일망타진할 수 있고, 그 종언(終焉)과 더불어 대원(大願)을 성취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이 일격이 영원한 시간의 흐름인 이승에서 전부가 되고 종국이 된다면, 저승은 어떻게 되건 기꺼이 모험을 하리라. 그러나 이런 일은 반드시 현세에서 심판을 받는 법이다. - 누구에게나 피비린내 나는 악행을 교사하면, 인과는 돌아와 원흉을 쓰러뜨린다. 정의의 신은 공평하여 우리가 독살을 준비하면 그 독배를 우리 입술에 들이댄다.(41)

이러한 맥베스의 걱정이 현실이 된 것일까요? 왕위에 올랐지만 맥베스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4 그런 모습의 남편을 바라보는 부인 역시  자기가 원한 건 이게 아니었는데! 하며 짜증 만땅의 상황에 접어들게 되지요.

"아무 소용이 없다. 모든 것은 헛일이다. 소망을 이루어도 만족을 얻을 수 없다면 차라리 죽음을 당하는 편히 훨씬 편한 것이다."(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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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fufilling prophecy'라는 게 있습니다. (아주아주) 쉽게 말해, '(긍정적이건 부정적인 것이든) 그럴 것 같아!라는 예상이 든다면, 결국 그렇게 된다'라는 거지요. (물론 경제학에서의 '그럴 것 같아'라는 예상은 단순한 심정적 예상이 아닌, 충분한 논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겁니다.) '인과는 돌아와 원흉을 쓰러뜨린다'라는 맥베스의 '그럴 것 같아'나, '차라리 죽음을 당하는 편이 훨씬 편한 것이다'라는 맥베스 부인의 생각은 예의 그 'self-fufilling prophecy'의 범주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 왕이 된 맥베스는 자신이 죽인 덩컨 왕의 아들이 이끄는 편에 최후를 맞이하게 되며, 부인 역시 (아마도 자살인듯한) '죽음을 당하는' 최후를 맞게 되지요.5 헌데 말입니다!

자신의 부인과 자신의 최후를 앞둔 맥베스의 대처는 의외로 쿨합니다. 마치 이러한 결론을 어렴풋하게나마 예상을 하고 있었다는 듯, 그러니까 자신의 심정적 'prophecy'가 예의 'self-fufilling'될 꺼란 걸 이미 알고나 있었다는 듯 말이죠.


"그6언젠가는 죽어야 할 몸이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을 때가 한 번은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p166) …… "사람의 생애는 흔들리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자기가 나가는 짦은 시간만은 무대 위에서 장한 듯이 떠들지만, 그것이 지나면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가련한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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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감상문이라고 뭔가를 주저리주저리 써보긴 했지만 --- 이 작품이 재미있었니? 아님 뭔가 유익한 교훈을 얻기라도 했니?라는 질문에 긍정의 대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뭐 '나도 셰익스피어의 작품 하나 정도는 읽어 봤다구!'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정도? 하지만!!!

만약 제가 영문학을 전공했었더라면, 아님 영어를 무지무지하게 잘해 이 작품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었더라면 지금의 느낌과는 차원이 다른 감상문을 쓰게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확실하게 듭니다. 그게 왜냐하면 말이죠...

마녀 일동 : 예쁜 건 추한 것, 추한 건 예쁜 것. (p9)

맥베스 : 이렇게 음산하고도 좋은 날은 처음 봤어.(p18)

이 두 문장은 이처럼 한글로 번역되어 있으면 별 특별한 것이 보여지지 않는 문장들입니다... 만, 이것의 원문이 각각

"Fair is foul, and foul is fair"

"So foul and fair a day I have not seen"

이라면 확실히 그 감흥과 문학적 묘미는 달라지게 되는 겁니다.7 게다가 --- 이 작품의 희곡의 형태이고, 희곡이란 것은 글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시각으로 들려지고 보여지는 것에 더 중점을 둔 문학이라는 걸 생각해 본다면, 스코트랜드 엑센트로 발음될 이 모든 대사들을, 제 아무리 훌륭하게 한국말로 번역해 놓았다 해도 그 오롯한 감동과 재미가 전달되어질 꺼라고는 아예 기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작품이 재미있었니? 아님 뭔가 유익한 교훈을 얻기라도 했니?'란 질문에 긍정의 대답을 할 수 없었을 뿐이라 말하게만 된다라는 거지요.

문득! 앞서 읽었던 주제 사라마구 作 『카인』에서 그려지고 있는 여호와와 악마의 모습을 떠올려 주었던, 역자의 글을 마지막으로, '나도 셰익스피어의 작품 하나는 읽어봤다구!'가 (창피하게도) 이 독서가 지닌 유일한 현실적 선물이었던, 『맥베스』의 감상문을 마무리짓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는다'라 말엔 지극히 잘 들어맞는 선물이기에 나름 뿌듯하긴 하네요. (그래서 만족도가 4!!! ^^;;)


그들(마녀 세 사람)은 … 인간의 시기심 같은 것에서 생겨난 악의 화신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악을 직접 실천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마음에 악한 짓을 하도록 충동하는 일을 할 뿐이다. 그러니까 마녀들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죄악의 욕구(sinful desire)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마녀들은 맥베스에게 '원래 있지도 않은 악의'를 심어주기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맥베스의 기고만장한 마음속에 싹트고 있는 '분명한 악의'를 부채질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p180)


▶ 짧은 한두 마디 :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무엇'을 진실이라 믿게 하느냐/믿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  뭔가, 비슷한 느낌을 받게 해주었던 작품 : 이문열 作, 『황제를 위하여

 

 



 

  1. 『맥베스』와 연관되어지는 전작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오로지 이것으로 셰익스피어를 처음 만나 본 저로서는 맥베스에게 그러한 '야망'이 이미! 내재해 있었다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역자(譯者)는 '앞서 두 가지가 적중했다 해서 나머지마저 그러하리라고 믿는 수작이 무서운 야망의 반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p182)라 쓰고 있더군요.
  2. '정 처사의 꿈이 곧 황제의 꿈이었으며, 그 의지가 곧 황제의 의지였다. … 황제의 생각 한 갈래, 몸짓 하나가 정 처사가 설정한 삶의 범위를 넘어선 것은 없었다.' - 이문열 作, 『황제를 위하여』중.
  3. '(맥베스는) 섣부른 선심이 매사에 훼방을 놓아서 계획은 제법 세우지만 정작 실행하는 대목에선 충동적이며 맹목적이다.맥베스 부인이 금관을 쓰기 위해 남편을 충동질해 일을 저지르게 했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다만 맥베스는 성격상 우물쭈물하는 반면, 맥베스 부인은 단호하게 실천을 다그치고 나서는 여인일 뿐이다.'(p184) - <역자 해설> 중.
  4. "마음 편히 하루 세끼 식사마저 들 수 없고, 잠들면 무서운 악몽에 시달려 밤마다 고통받아야 할 정도라면 죽은 그자와 같이 된 편이 훨씬 나을 것이오. 우리가 편안히 잠들기 위해 편안히 잠들게 해준 것인데, 그런데 마음의 고문대(拷問臺)에 올라 이런 미치광이 같은 불안에 떨고 있어야만 하오?"(p91)
  5. 이 작품을 두고 '비극'이라 칭하는 것이 맥베스 부부의 '비극'은 아닐 꺼라는 생각을 하게는 됩니다. (그 내용을 제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역자 역시 "비극 『맥베스』는 이른바 '양심의 비극'이다"(p178)라 말하고 있구요.
  6. 자신의 부인.
  7. 물론 이것이 번역에 문제가 있다라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무리 해도 옮겨낼 수 없는 영문 자체만의 묘미가 있다라는 것일 뿐. :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면, 'milk of human kindness'를 '인정의 달콤한 젖'으로 번역한 역자를 무어라 할 수는 절대 없겠는, 단지 발음상의 rhyme과 같은 원작의 무언가는 분명 다른 언어로 옮겨질 수 없다란 한계가 극복될 수 있다란 건 전혀 바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을 뿐이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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