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1990 - 우리가 열광했던 것들
김형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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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69년 생입니다. 대한민국의 정규 학제를 그대로 따랐더라면 88학번이 되어야 했었거늘, 고삐리 시절 그 놈의 소개팅하는 재미에 빠졌던 탓에 (그나마 저의 이력에 자랑스러움으로 기억되고는 있는 '종로학원'에서의) 재수를 한 89학번이 되었었지요. 그렇다보니! --- 한동안 유행했었던 단어인 '386세대'의 그야말로 끝자락엘 걸치게 되어버린 겁니다. 뭐 아무리 '386'이란 단어 자체는 그저 단순하기 그지없는 생물학적 조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그 단어가 가지게 된 사회적 의미의 거창함에 한 발 디뎌 이래뵈도 '나도 386 세대!'라 스스로를 규정짓기도 했었었... 거늘.

1990년대 --- 내게 있어 그 시기는 스무 살에서 서른 살까지의 인생 최고의 황금기였다. 앞길의 갈피를 잡지 못하던 대학생이자 새까만 훈련병이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거대한 사회의 부속품이자 회사의 말단이 되어 월급을 받아 가정을 부양하는 6년차 방송 PD가 되기까지의 짧지 않는 세월이었다. --- <머리말> 중

1970년 생이며, (아마도 빠른 70년 생인듯) 88학번인 저자 김형민의 1990년대는 그야말로 저의 1990년대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대한민국 남자의 20대를 인생에서 가장 길게/중요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두 가지라는, '결혼과 취직'의 대업을 저 역시 그 1990년대에 모두 이루어 냈었었으며, 예의 끝자락이긴 하나 '386 세대'라는 뭔가 비장함이 깃들어 있는 듯한 계층에 배정받았었기도, 허나 저의 개인적 1990년대는 그런 비장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었던, 그럼에도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황금기' 그 자체였었다라는 것에는 전혀! 이의가 없는 겁니다.

이처럼 1990년대에 대해 '개인적 추억'이라 불리울 것들은 많으나, '사회적 기억'은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한 저에게 --- 「그들이 살았던 오늘」, 「썸데이 서울」, 「삶을 만나다」 이 세 권의 책으로 저를 완전히 사로잡았던, '개인적 추억'으로부터 '사회적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 있어서만큼은 이제까지 제가 만나보았던 그 누구보다 탁월했던 저자인 김형민은 이 책 「접속 1990」을 통해 과연... 또 어떠한 '사회적 기억'을 보여주며 (전작들을 통해 그러했었듯) 저를 부끄럽게 해주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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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는 한 시대를 풍미한다 싶었던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철석같이 탄탄했던 것들이 짚단처럼 스러져갔던 '100년 같은 10년'이었다. 크게는 인류의 거대한 실험이었던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했고 30년 넘게 우리나라는 지배하던 군부의 그림자가 걷혔다. 또 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IMF 사태가 닥쳐 수천만 한국인들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위협했던 시기였다. - <머리말> 중

무거운... 이야기만을 할 것 같아 보이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 저자는 이 '한 시대를 풍미한다 싶었던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기술의 급속한 발전 속에 반짝했다가 스러져 간 비운의 기계나 물건'(p48)의 예로 삐삐와 PC 통신, 그리고 워드프로세서 등을 들고 있지요.


 제 삐삐 앞자리는 015였었습니다. 어느 날! 서울이 아닌 지역번호를 가진 전화번호가 찍히더군요. 전화를 했더만 낯선 목소리의 여자!가 받는거에요. 알고보니 --- 당시만 해도 전 몰랐었던, '삐삐팅'이었던 겁니다. 앞자리가 012였던 그 여학생이 015의 똑같은 번호에 삐삐를 쳐놓고 그 상대방과 통화하고 뭐 그런 거라더군요. 근데 골때렸던 건... 저에게 그 삐삐팅을 신청(?)해왔던 여자가 대전에 살고 있던 무려! 중딩이었다라는 사실. --;; '얘야, 오빤 대학생이고 대전에선 먼 서울에 산단다' (그러니 이런 거 연결되봐야 너랑 나랑은 뭐가 어떻게 될 수 없는 사이야. 어쩌냐?)는 저의 말이 그 중딩에겐 요새 말로 대박이었었나 봅니다. (아마도 쪼르르 모여 그 '삐삐팅'을 같이 했었던 걸로 생각되는) 옆의 친구들에게 이 오빠 대학생이고 서울 산대!라 자랑스레 말했던 그 아이에게 끝내... '그럼 공부 열심히 하고, 담부턴 이런 짓일랑은 절대 하지 말아라'라는 말로 그 앳된 환상을 무참히 박살!내주었었지요. 저에게 은근 잔인한 면이 있지않나 싶기도 합... --;;


● 5.25인치의 말랑말랑한 플로피 디스크를 들고 다니던 시절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그러다 등장한 작고 딱딱한! 3.5인치 디스켙은 그야말로 여러모로 새로운 세상이었었지요. 당시 조교들은 3.5인치 쓰는데, 교수님들은 여전히 5.25인치에 저장되어 있는 옛 데이터들을 쓰셨던지라 연구실에는 여전히 그 두 개의 저장장치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갖춰놓아야 했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골때린 추억이 하나 있으니 --- 지금 모 대학의 전자공학과 교수가 되어 있는 제 고등학교 동창 녀석이 했던 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 겁니다. 30MB의 하드용량을 지닌 컴퓨터를 하나 샀다 말했더만 그 녀석 감탄하며 말하길, '야... 그걸 언제, 뭘루 다 채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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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이 책을 통해 그 느낌을 공유하면서 '그땐 그랬지'라고 반추하면서 낄낄거리고 추억에 젖어 옛 친구들고 수다 떨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저자의 바램을 담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이제 "1990년대의 조각들을 오늘의 삶에 어떻게 가지고 갈지는 각자의 몫"에 관해 이야기해주기 시작하지요.



【 마광수 교수 구속


 1992년 10월 29일 마광수 교수는 '음란문서 제조 반포'혐의로 구속됐다.(p99)

마 교수님의 수업도 들어보았고, 화제/문제의 책이었던 「즐거운 사라」 역시 읽어보았었지만 그 분의 구속에 대해 그다지 진지한 생각을 해본 기억은 없습니다. 그저 강의 도중 담배를 피우던 모습에 놀랐었다라는 것 이외에는 수업도 그닥이었고, 「즐거운 사라」는 더더욱 별로였었다라는, 가끔 '장미 여관'근처를 지나갈 때에나 떠올려봤던 정도의 인물이었다랄까요?


저자는 뒤이어 갑자기 1990년대 대학가에 있었던 '규찰대'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저도 기억하고 있는, 교정 내에 유명했던 몇몇 으슥한 곳들을 둘러보며, 명목상으로는 불량 청소년들의 비행을 막기위함이라 했었었지만 기실은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는 커플들을 단속하려했던, 일종의 (질투심으로 무장된) 자율방범대 같은 것이었었죠.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묻고 있습니다.


규찰대는 그 청춘들의 '거사'를 굳이 방해하고 플래시를 비추며 "아저씨!"를 부르짖어야 했을까.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아닌데 '단속'의 대상이 돼야 했을까.(p101)

가수 전인권씨가 예전에 '나 혼자서 골방에 틀어박혀 대마초 피우고, 그 약빨로 곡들을 썼고, 대중들이 그 노래를 사랑하는데 왜 이게 죄가 되는거냐?'라 항변했었었지요. 개인 전인권의 이 말에는 틀림이 없다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약이라는 것의 (+)와 (-)를 집합적으로 따져보면 결국엔 '사회적 폐해'로 귀결되지요. 그러하기에 개인 전인권의 항변에는 틀림이 없다해도, '사회적 규범'은 그에게 잘못했다란 선고를 내렸던 겁니다. 그렇다면 '성매매'는 어떨까요? --- 최소한/이론적으로는/어쩌면 현실적으로도! '성매매'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사회적 폐해'로 귀결되지는 않을꺼라 생각합니다. 집합적 총합은 이론적으로는/어쩌면 현실적으로도! (+)이며, (악의적으로 AIDS 등의 성병을 옮기려 하는 극단적 경우가 아니라면) 그 어떠한 경우에도 최소한 (-)의 결과를 낳지는 않지요. 그렇다면 성매매에 대한 국가의 규제는 현대의 시각에서 과연 스스로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라 할 수 있는걸까요? 


국가 차원에서의 생산성 증가를 위해서 개인이 자신의 효용을 스스로 희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인간은 스스로 삶을 결정할 자유가 있으므로, 설령 그것이 자기 파괴라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국가가 직접 대상을 징벌해서 다른 사람의 후생을 증가시킬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식이라면 공부하지 않는 학생을 감옥에 넣거나 취미 생활이 지나친 회사원에게 벌금을 물리는 행동도 합리화될 수 있다. - 유시민 著 「경제학 카페」 중.

'성매매'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도박이나 마약에 대한 국가의 간섭까지도 경제학자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바로 --- 이러한 간섭의 논리가 확대되어 가령 (일반적으로 몸에 좋지않다라고 인식되는) 콜라와 햄버거를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국가가 나서서 콜라와 햄버거 대신 몸에 좋은 채소와 과일만 먹고살라 강요하는 상황이, 많이 먹으면 살찌니 삼겹살에 비만세를 물리겠다는 상황이 결코 발생하지 않을꺼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몸에 해로운 것을 먹는다면 그를 아끼는 사람은 그것을 말릴 수 있을지모르나, 그렇다고 그것이 결코! 국가의 간섭을 정당화 해줄 수는 없다라는 거지요. 저자 김형민은 유시민이 했던 (다분히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위의 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관점이야말로 김형민이 보여주고 있는, 유시민이나 진중권과는 확연히 다른 성격의, 저를 뿅!!!가게 만들어 준 매력인겁니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는 그때껏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좋게 말하면 엄숙주의, 나쁘게 말하면 위선의 벽이 깨져나가는 과정이었다. …… 적나라의 물결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어떻게든 막아보겠다고 둑을 쌓고 수갑을 꺼내 들고 치도곤을 꺼내드는 사람들이 설치던 과도기이기도 했다. 그 서슬에 마광수 교수가 당했고 영화 <거짓말>과 <노랑머리>가 가위질당했으며 연극 <마지막 시도>의 연출자는 구속을 면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게 쥐면 쥘수록 새어나오는 모래처럼 사람들은 바뀌고 있었다. (pp101-103)

【 지존파와 증오 범죄


'지존파'가 저질렀던 범죄를 옹호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들 마음 속에 도대체 왜 그러한 증오가 생겨났었는가는 적어도 알아야하지 않겠냐란 말을 하고 있지요. '이미 벼랑 아래로 떨어져 올라갈 희망이 없어진 이들'(p151)이 지존파가 되었더랬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정반대편에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전국을 휘몰아쳤던 부동산 열풍으로 인해 탄생한 수많은 졸부들이 자리하고 있었었지요. : "천민 자본주의가 펼쳐보이는 화려함 앞에 가장 먼저 절망한 사람들은 졸부들의 반대편 극단에 선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의 가슴속에서 절망은 독기로 변한다."(pp148-149) 그리곤 이렇게 2015년의 우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경비원이라는 이유로 아파트 주민에게 온갖 설움을 다 당하고 그들의 행태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킨다는 것이, 결국 자기 몸에 불을 지르는 게 고작인 사회가 되었다. 그 분신 앞에서 아파트 주민들은 집값을 걱정하고, 자신들의 안전과 편리를 지켜주던 경비원이 3도 화상을 입고 누워 있는 병원을 찾는 이 없거나 드문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명백한 사실은 1994년 당시보다 불평등은 심해졌고 절망은 더 깊고 넓어졌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존파는 과거지사이기만 할까.(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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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독한 투쟁의 시대 】


비록! '386'의 끝자락이 마치 타고난 운명이기나 한 것처럼, 그 수없이 많았던 시위의 현장들 속에 단 한 번도 들어있지 않았던 1990년대의 저였었지만, 그런 저에게도 예의 1990년대는 '투쟁의 시대'로 각인되어 있기는 합니다. '개인적 투쟁'은 없었던, 오로지 '사회적 투쟁'만을 지켜보았던 저의 1990년대였었던 거지요.


명지대생 강경대가 전경들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다는 기사를 보았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 밖에도 참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분신이나 투신등의 죽음으로 당시의 사회에 저항을 했었었지요. 당시에도 그러했었고, 사실은 지금도 그들의 그러한 (방식의) 죽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 김형민은 매우 간명하게 그들이 그런 방식의 죽음을 택했었던/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리고 그러한 방식의 죽음들이 남겨놓은/가지고 있었던 아쉬움들을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1988년 이전까지 분신 내지 투신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노동자 전태일처럼 살아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보아도 소용이 없을 때 …… 막다른 골목에서 대답없는 세상을 향해 내지른 절박한 외침이었다. …… 하지만 1988년 이후 양상은 조금 달라졌다. …… 그들은 사람들의 분노와 의기를 일깨우고자 한 '선도적인 결단'으로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 그 잔인한 봄, 강경대를 필두로 죽어간 생명은 열 손가락을 훌쩍 넘어섰다. …… 땅을 치도록 억울한 일은, 그렇게 제 몸을 까맣게 태우며 죽어간 이들이 무시무시한 고통을 감수하며 외쳤던 주장들이 대중들로부터 멀어진 가장 큰 이유가 그들의 죽음이었다는 것이다. 죽음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그들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에 동화되기보다는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 자체에 겁을 먹었고 몸서리를 쳤다. …… 학생들의 순결한 희생은 '순번 정해놓고 유서 대신 써주며 몸에 불 싸지르는' 공포의 화신들로 낙인찍히기 시작했다. …… 그 봄을 생각할 때마다 지금도 가슴이 내려앉는 이유는 하염없는 죽음 때문만은 아니다. 폭력에 맞선다는 믿음이, 목숨을 내놓고 지키고자 했던 신념이,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화석화되는 과정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봄이 더욱 참담하게 스러진 것은 정권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치와 자신들의 논리와 자신들의 믿음으로 쌓아올린 울타리를 이미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 그 봄을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질문이 많다.(pp225-229)

1990년대의 투쟁엔 이처럼 목숨을 내던지는 '죽음'이라는 극단적 방식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이문옥, 윤석양, 이지문 등의 '양심선언' 역시 당시의 사회를 향한, 그들의 인생을 건 투쟁이었었지요. --- 김형민의 책에 대한 감상문을 쓸 때면 매번... 인용문이 많아지게만 됩니다. 저자에 대한 저의 애정, 부러움, 못미침... 그 무엇으로 해석하여도 모두 다 정답!이기만 한 이유 때문이라 이해해주시길.


최소한 1990년대 초반의 한국은 1980년대 초중반의 한국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아니 달라 보였다. 그 시대는 쓰레기를 민주화라는 양탄자 아래 죄다 놓은 채 애써 깔끔한 척하는 방과 같았다. 이를 모르는 체하거나 정말로 모르는 사람들이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는 가운데 쓰레기는 양탄자 아래에서 온존하고 있었다. 이때 용감하게 양탄자를 들추며 여기에 쓰레기가 있다고 부르짖는 용자(勇者)들이 등장했다. 우리는 그들의 외침을 '양심선언'이라 부른다. …… 20년 후 오늘의 역사가 어처구니없는 도돌이표를 그리고 있다고, 1990년대 줄줄이 이어졌던 양심의 결단으로도 바뀌는 건 결국 없지 않냐고 한탄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탄식 앞에서 고개를 저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했을 수 있지만 그들 덕분에 우리는 여기까지라도 온 것일 테니까.(pp23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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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얻을 것은 변명이 아니라 교훈"(p244)라 말하고 있는 저자 김형민의 글들을 너무도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움 깃든 창피함을 매번 느끼게만 됩니다. 똑같은 시간을 걸어왔었던 저자와 저이거늘1 --- '사회적 기억'이 아닌, 단지 '개인적 추억'으로만 간직해내고 있는 1990년대를 이렇게 그려내고 있다라는 것이, 또한! 그 1990년대라는 과거로부터 2015년의 현재를 이처럼 끄/꼬집어낼 수 있는 그의 시선이 너무도 부럽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말로 솔직하게 말하자면 : 1990년대 뿐만이 아닌, 현재 이전의 모든 과거에 대해 과연 '나'의 삶은 얼마나 치열했었으며 또한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감동스러운 것이었던가에 대한 자문에 대해 저 스스로도 부끄러운 대답을 할 수 밖엔 없기 때문일 겁니다. (이건 절대... 뭔 립서비스스런 겸손 같은게 아닙. --;;)


이전에 읽었던 「썸데이 서울」이나 「삶을 만나다」등의 책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출판사에서 발행되어서인지 그리 오래 전 책도 아니건만 이미 절판이 되어있더군요. 김형민의 글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정말로 안타까웠더랬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이번 책은 그래도 몇년 새 사라져버릴 출판사는 아님이 확실해보이는 곳에서 출간되었다라는 게 어찌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이런 팬으로서 정말... 둘이 만나 술 한잔 나누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불끈! (행여라도 그런 자리가 생긴다면, 왜 '우리가 열광했던 것들'이 이 책의 부제가 되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엔... 당췌 어울리지가 않거든요. --;;)



※ 읽어 본, 그리고 강추!하는 김형민의 다른 책들 : 그들이 살았던 오늘」, 썸데이 서울」, 삶을 만나다


 



 

  1. 바로 이 점이 '창피함'을 만들어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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