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아사다 지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펼쳐 일이십 페이지를 읽다 덮었고, 저 책을 펼쳤다가도 그리했으며 그렇게... 너댓 권의 책들을 처음 몇 페이지들만을 읽다가 덮었더랬습니다. 뭔가 마음이 불안해서일까요? 대체 왜 이런 건지요... --;; --- 그냥... 짧은 책을, 그것도 무거운 주제가 아닐 듯한 소설을 읽어보자!하여 펼치게 되었던 게 바로 이 책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였었습니다. 전 이 책이 여섯 개의 짧은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조차 몰랐더랬었어요. 만약 그렇다라는 걸 알았었다면, 단편보다는 장편 소설을 훨씬 더 선호하는 제가, 이처럼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선 결코 펼치지 않았었겠죠.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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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에도 막부 체제가 무너지고 메이지 시대가 열리면서 세상은 변혁의 물결에 휩쓸린다. 이때 단체로 갈 곳을 잃게 된 이들이 무가(武家) 사회를 지탱해왔던 '사무라이'들이었다. 갑자가 닥친 새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무엇 하나 갖추지 못했던 그들은 우왕좌왕하면서 제각기 관리, 군인, 상인, 농민, 심지어 막일꾼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갖가지 계층으로 흡수된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어제까지와 전혀 다른 오늘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격변과 혼돈의 시대를 부딪치고 넘어지며 달려간 사내들의 이야기이다. (pp251-252, <옮긴이의 말> 중)

​여섯 편의 소설들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주제를, 더 이상 잘 설명해낼 수 없을 <옮긴이의 말>입니다. 「종횡무진 동양사」에서 저자 남경태는 '근대화를 통한 부국강병'을 목표로 했던 메이지 유신은 한 마디로 혁명적인 것이었다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혁명 속에도 '일본의 정신 속에'라는 단서가 붙어있었다라 서술하고 있습니다만!!! --- 이 작품들의 저자 아사다 지로는 '일본의 정신 속에'라는 단서가 메이지 유신 속에는 '전혀 없었었다!'라 보고 있는 듯 합니다.  


메이지 유신은 '사무라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메이지 유신이 초래한 사회의 변화는 '세상에 변해가는 게 아니라 무너지는 것'(p27)로 받​아들여졌더랬지요. 너무도 급격히, 그리고 너무도 과격한 방식으로 변해가는 사회를 향해 사무라이들은 '무사의 목숨을 구걸'(p71)할 수 밖엔 없는, 사뭇 비참하기까지한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맙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러한 유신을 거부한 것으로는 그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비록 '무리(無理)가 도리(道理)를 망가뜨리고 있다'(p101)라 생각은 하였습니다만, '신국가 건설에 헌신하려는 마음'(p46)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너무도 급격하게 변해버린 '시대에 적응할 수 없었'(p48)으며 누군가에게는 '몸이 시대를 거부하는 것'(p46)일 뿐이었었죠. --- 서양의 태양력으로 인한 혼란, '사람이 고스란히 종이에 박혀 나오'(p47)는 사진이란 것에 대한 낯선 경계심, 느닷없이 등장한 '일주일이라는 시간 단위'(p48)등에 결코 쉬이 익숙해질 수 없었던 사무라이들은 그저 '지나간 무사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마음'(p53)만을 간직한 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는 나날을 보내'(p87)어야만 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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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영화를 정말 좋아해, 최소한 세 번은 봤었더랬습니다. 하지만!!! --- 그 영화 역시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전형적인 헐리웃의 공식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사리사욕'이라는 양념을 넣어 은연 중에 '개방'을 주장하는 개화파 쪽 인물들을 '악당'의 편으로 설정시켜 놓으니 당연히!!! 그 반대 편에 있는 '사무라이'들은 선역을 맡게 되며, 관객들을 그러한 설정으로 몰아 가둬두는 연출은 물론! 너무나도 탁월하지요. 허나... 바로 그 점에서 이 영화는 '너무도 단순하다'라는 평가를 벗어날 수가 없는 한계를 가지게 되는 겁니다.       


이 소설집(集)에 담겨 있는 여섯 편의 소설들을 읽으면서도 예의 그러한 (선과 악을 구분지어야 한다는, 뭔가 강박관념스러운) 편가름이 제 머릿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작동되어, (<라스트 사무라이>로 인해 '사무라이 정신'에 홀딱 반해버렸던 저였기에) 점점... 변해버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약자'로 그려지고 있는 그들, '사무라이'의 편에서 소설을 읽어나가게 되었더랬습니다. 이처럼 --- 이 여섯 편의 소설들이 담고 있는 '사무라이 정신 (= 무사도)'이라는 것을 향한 독자의 시선에 따라 이 소설집은 극단적인 호·불호를 달릴 수 있다라 생각됩니다. 심지어! (작가의 실제 정치적 성향이 어떠한지는 전혀 모릅니다만) 작가 아사다 지로를 '극우적 성향'이라 판단해버릴 만한 구절들도 보이구요. 하지만!!!

일단은 그처럼 (뭔가) 정치적인 관점이 아닌, 심지어! 제가 갖고 있는 '사무라이 정신'에 대한 은근한 호감까지는 모두 다 내려놓고 이 여섯 작품들을 바라본다면 결국엔!!! --- 어떤 사회적 현상에 대해 우리가 선(善)과 악(惡)을 구분해내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좀 더 좁혀보자면 '현재를 포함한 과거'와 '현재부터의 미래' 사이의 충돌이 벌어졌을 때, 우리의 시선은 과연 어느 곳을 향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무가(武家)의 첫째가는 도리는 스스로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다. 군인이자 행정관이었던 그들은 무사무욕(無私無慾)을 무사도의 으뜸 덕목으로 마음에 새겼다. 뒤집어 말하면 그것은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다. 무사(無私)이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계속해서 회의하는 자, 그것이 무사(武士)였다.(pp248-249)

여섯 편의 소설들 속에서 사무라이 출신의 등장인물들은 앞서 언급한 바처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질 못합니다. 적응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적응이 되질 않는 거였죠. 이런 상황에서 과연 그들의 선택은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여행이란 말이다, 결코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는 안 되는 거야."(p226)

 
   



 

이 한 마디 속에 작가 아사다 지로가 내놓는 해답이 들어있지요. --- '자신(들)의 존재마저 부정하는'(p100) 메이지 유신이었었지만 그들은 유신에 저항하지 않습니다. 적응이 되지는 않았지만 끝내!!! 적응해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지요. 버틸 만큼 버티고 나면 끝내 흘리게 된다는 새빨간 피눈물까지를 흘려가며, '결코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라 생각하는 그들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려 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목숨값으로 받아두었던 천 냥짜리 증서를 포기해야만 했었으며, 부모와 주군을 죽인 원수에 대한 복수마저도, 그리고 자신이 사무라이였었음을 마지막까지 상징해주었던 덧상투까지도 모두 버려가며, 사무라이들만이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시대의 울타리'(p180)을 뛰어 넘어, '사무라이의 시대 따위 잊어버리고 새 세상을 살'(p246)겠노라 노력했었던 겁니다. 바로 이 점!!!


 

 

 

그러니까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비난해야 하느냐의 여부를 반드시! 잘라내 버리고 이 소설들을 읽어야 하며, 무엇이 선(善)이고 무엇이 악(惡)인가에 대한 판단마저도 내려놓고 이 소설들을 읽어야 한다라는 겁니다. --- '백성이 안심하게 살게 해주는 기구야말로 국가라고'(p112) 믿고 있었기에 사무라이들은 "우리의 목숨, 이 나라에 바치지 않겠나"(p77)라 외쳐댔었던 것이었다라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사무라이의 국가는 그들에게 '세상의 변화'에 대해 설명해주지도 않았으며, 그들이 적응할 시간적 여유를 허락하지도 않았더랬지요. 바로!!! 이 환경, 즉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무라이들을 구태(舊態)라 탓할 것이 아니라, 변화 앞에 선 그들을 배려해주지 않았던 메이지 유신의 막무가내를 탓해야 한다는 것으로 전 이 여섯 편의 소설들을 읽었다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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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공존하는 사회의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사상1 은 결코 서양의 이념과 대립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경애해 마지않는 메이지라는 시대에서 역사상의 커다란 실책을 찾아낸다면 나는 일본과 서양의 정신, 새것과 옛것의 이념을 철저히 대립함으로만 취급했다는 점을 들겠다. …… 근대 일본의 비극은 근대 일본인의 교만 그 자체였다.(p249)

그러한 배려 없는 상황 속에서도 어쨌든!!! --- 그들, 사무라이들은 예의 '도망치지도 되돌아가지도 않고, 최선을 다해 모든 걸 마무리'(p247)해내었습니다. 이 과정을 작가 아사다 지로는 '썩 멀지않은 옛날, 갑자기 눈앞을 막아선 근대의 울타리 앞에서 주저하고 당황하면서도 어쨌든 그것을 넘어섰던 사람들의 고생담'(p250)으로 표현하며, 위에 인용해 놓은 구절로 이 책을 마무리짓고 있지요. 말 그대로 반하지 않을 수가 없는, 한 발 더 나아가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가 지니고 있는 한계를 정확하게 극복해내고 있는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의 역자는 이 작품들을 번역하면서 한숨이 터졌고, '좋아도 한숨은 터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p254)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저 역시!!! 이 책을 읽어가다 역자와 동일한 이유로 (정말로!!!)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던 부분들이 몇몇 있었었지요. 무사도(武士道)가 새로운 시대의 변화로 인해 사라져버려야만하게 되는 것을 가장 가슴 아프게 그려내고 있다라 생각되었던 <석류고갯길의 복수>라는 작품에 나오는, 두 부분을 인용해보는 것으로 이 감상문을 마치겠습니다. 이 구절들에서 왜! 좋아서 나오는 한숨이 있을 수 밖에 없었는지는 여러분이 직접!!! 이 작품들을 읽어보시면 자연스레 알게 되실 듯. --- 덕분에 다시 활기를 되찾은 듯한 저의 독서는 이렇게... 당연!!!한 순서로 작가 아사다 지로의 다른 작품, 「칼에 지다」로 가보겠습니다.


● 이 사내는 십삼 년 동안 원수를 찾았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나오키치는 깨달았다. 그는 함박눈이 내리는 사쿠라다 문 앞에 이제껏 우두커니 서 있었던 것이다. 걸음을 내딛지도 도망치지도 차라리 죽지도 못한 채, 히코네의 홍귤나무가 새겨진 가마 곁에 십삼 년을 서 있었던 것이다. 긴고의 손에서 놓여난 사바시 주베에는 눈길에 떨어진 핏빛 동백을 움켜쥐고 울었다. 자신도 그날부터 줄곧, 이 동백 울타리 밑에 앉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p198)


● 어쩌다보니 오늘 하루는 종일 눈물에 젖어 흘러가버렸지만 아내에게만은 눈물을 보일 수 없어 긴고는 일어섰다. ……긴고는 도망치듯이 술집을 나와 진창이 된 네거리를  울면서 내달렸다.(p201)

 


 

 

 

 

 

 

 

 

 

 

 



 

  1. 무사도(武士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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