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울을 걷다
권기봉 지음 / 알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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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보다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근현대사의 현장을 찾아 다시 서울로 나섰다. 권력자의 시각이 아닌 이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우리들'의 입장에서 다시 서울을 걸었다. …… 익숙한 듯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낯설기만 한 곳을 걸으며 우리가 서울이라는 공간과 역사에 얼마나 무심한지 살펴보았다. …… 그렇게 다시 서울을 걸으며 깨친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모든 과거가 한결같이 '현재적'이었다는 점이다.(pp6-7)

'서울'이라는 공간, 그 공간 속에 위치하고 있는 역사와 역사적 장소들... 에 관한, 딱히 무어라 규정짓기 힘든 내용과 스타일의 책입니다. 잡문이라 하기엔 나름 가볍지 않은 역사성을 지니고도 있는, 그렇다고 학문적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개인적 주관이 많이 개입되어 있는 암튼 뭐 그런 애매한 성격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더군요. 그 중 논리의 전개가 신선!하다라 느껴졌던 두 섹션을 뽑아본다면...


【지하철 1호선】

1955년 최초의 국산 자동차 '시발始發'이 탄생한 이후, 급격히 늘어난 자동차로 인해 평균 시속 10킬로미터 안팎의 노면전차들이 오히려 교통의 장애물로 전락하게 되었고, 결국 1968년 11월 30일 자정을 기해 69년 9개월을 달렸던 서울의 노면전차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대중교통의 혼잡성이 문제로 대두되자, 그 대안으로 '지하철'이 등장하지요.


지상의 교통 혼잡을 위해 건설한 것이 비단 지하철만은 아니었으며, 당시 청계천이나 삼각지 등에는 차량이 허공으로도 달릴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로 고가도로도 건설되었습니다. 얼핏! '경제의 발전'이라 느끼는 것에 그칠 수 있는 이 모든 걸 저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해줍니다. --- "원활한 차량 소통이 먼저라는 '속도의 신화'에 정작 사람들은 도로 옆이나 땅속으로 밀려났고, 지상과 하늘은 온통 자동차들의 독차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 지하도나 육교라는 것이 언뜻 보면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놓인 것 같지만, 실은 차량 통행이 먼저니 보행자는 '그곳으로만' 길을 건너라는 무언의 명령에 다름없다.(pp23-24)"



【소공동 차이나타운】

박정희 정권 당시, 유독 화교들에 대해 가혹한 탄압이 있었었던 것을 저자는 중국인을 멸시하는 일본식 교육을 받아서(p43)일지도 모른다 추측하고 있습니다. 오래가진 않았지만 잠시나마 '양곡 절약'을 핑계로 중국음식점에서는 일절 쌀밥을 팔 수 없게 법으로 규정했던 적도 있었다더군요. 저자는 일반 짜장, 간짜장, 삼선짜장, 유니짜장, 유슬짜장, 쟁반짜장, 사천짜장 등 그 어떤 음식보다 다양하게 분화되어 발전해 온 수많은 짜장면들에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화교들의 고난과 눈물이 어려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러한 차별의 집행자라는 과거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과연 재일한국인에 대한 각종 차별을 규정짓고 있다라며 일본을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를 거쳐, 과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다문화 다민족'이라는 것이 사실은 사회적 소수자의 체념과 동화를 유도하는 용어(p49)로 통용되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마저도 비판하고 있지요. --- 이 부분은 진중권 교수가 「호모 코레아니쿠스」 지적했던 '한국인의 천민성' 혹은 「세상물정의 사회학」에서 노명우 교수가 언급했던 '대한민국의 성숙률'이 훨씬 더 체계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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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이 책에 나오는, 술자리 같은 데서 '너 그거 아냐?'식으로 말할 만한 혹은 잡학적 상식(?)에 도움될 만한 것들을 정리해 본다면.


● 잠수교는 북한 폭격기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수면에 바로 붙어있는 한강 교량의 필요성에 의해 건설된 것.(p31)

● 도쿄에 있는 주일미국대사관 건물에 매혹된 교보생명 창업주가 설계자 미국인 시저 펠리에게 똑같은 모양의 건물을 지어달라 의뢰. 사실 펠리는 주일미국대사관을 설계하면서 일본 특유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마치 목조건축물인 양 건물 외벽에 갈색 타일을 붙였던 것인데, 그런 원래의 의도를 교보생명 창업주가 알았었는지의 여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1980년 크기만 다를 뿐 주일미국대사관과 거의 똑같은 모양의 광화문 교보빌딩이 완공되었고, 지방 주요 도시들에 들어선 교보빌딩들도 모두 그의 일란성쌍둥이 동생들 모습을 하고 있다고.(pp58-59) 

● 우리가 금을 '노다지'라고 부르게 된 건, 조선에 왔던 외국인 금광 개발업자들이 금맥이 드러날 때마다 "No Touch!(노 터치)"라 외친 데에서 유래했다고.(p128)

● 을사년에 벌어진 '을사늑약', 이 치욕스러운 사건이 얼마나 큰 충격과 아픔을 주었던지 이후, 스산하고 소름 끼치는 분위기를 "을씨년스럽다"고 표현하게 되었다라고.(p227)

● 한때 알려졌던 것처럼 장충체육관은 필리핀이 지어준 것이 아니라, 서울시가 육군체육관을 사들여 대대적으로 개보수하여 1963년에 한국 최초이자 최대의 실내 체육관으로 만들어 개관한 것.(p313)

● 1905년 러일전쟁 때 물갈이하는 장병들의 배를 확실히 지켜주었던 신약神藥이 있었는데, 러시아(露)를 정벌(征)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알약(丸)이라 해서 그 이름을 '정로환征露丸'이라 지었고, 포장지에 인쇄되어 있는 인물은 일본 육군의 초대 군의총감인 마츠모토 준의 초상이라고. 다만 한국으로 들어오면서는 정征이 아닌 정正으로 바뀌어졌다고.(pp33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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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라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며 사회경제적인 산물이다. 무엇을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할 것이며 무엇을 철거해도 좋은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그 시대의 권력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p6)

이 책의 저자가 박정희 대통령을 극도로 싫어한다라는 게 책 곳곳에 아주 널려 있습니다. 헌데 그 표현방식이 저의 생각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일례로...


장하준 교수는 「쾌도난마 한국경제」라는 책에서 "박정희는 자본가의 소비도 규제했습니다. 왜 그 시바스 리갈이라는 술 있잖아요? 박정희가 암살당할 때 마셨다고 해서 유명해진. 전 그 술이 엄청나게 좋은 술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영국에 가보니까 가장 싼 술입니다. 도대체 세계 어느나라에서 종신 독재자가 시바스 리갈을 마십니까?"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이 책의 저자는 "종신 집권을 가능케 한 '유신'이후 그가 실제 즐겨 마신 술은 막걸리가 아니라 서민들은 구경하기도 힘든 양주 '시바스 리갈'이었다(p191)"라 적고 있지요.


'서민들은 구경하기도 힘든'이란 표현을 틀렸다라고는 말할 수 없겠습니다만, (최소한 이 문제에 한해서만큼은) 장하준 교수의 스탠스에 서 있는 저로서는 이 서술이 의도적으로 사용된 '선동적'인 표현이며, 저자의 지극히 꼬인 감정의 표현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 김형민의 책들, 「그들이 살았던 오늘」 · 「썸데이 서울」 · 「삶을 만나다」 등에서는, 애초엔 저와 다른 그의 정치적 성향에 당황스러웠더랬습니다만 자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를 풀어놓은 글을 읽어보고는 그의 주장, 심지언 정치적 시각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적극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었지요. 물론!


그러한 경험이 지극히 특이한 경우라는 걸, 김형민이라는 사람의 생각과 글 또한 지극히 특별하다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러한 경험이 자주 일어날 수는 없겠습니다만... <지하철 1호선>에 관한 역사와 그에 얽힌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가는 이 책의 첫 장을 읽고는, 어쩌면! 오랫만에 그런 특별한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라 기대했더랬거늘!!!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 제게 드는 건 오로지 --- 이 책의 저자 또한 이 책에서 너무도 정치적이었으며, 몇몇 잡학적 상식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역사에 자신의 가치관을 대입시켜놓았다라는, 헌데 그 가치관이라는 게 제 고개가 언뜻 끄덕여지지 않는, 오히려 고개를 가로로 젓게만 되는 것들 뿐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네요. 다행히... 연필로 밑줄 친 부분이 거의 없기에, 알라딘 중고서점의 품에 넘겨도 아쉽지 않을/괜찮을 듯. --;;



※ 이 책을 읽느니...

- 진중권 著, 호모 코레아니쿠스

- 김찬호 著, 사회를 보는 논리

- 노명우 著, 세상물정의 사회학

- 김형민 著, 그들이 살았던 오늘

- EBS 著,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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